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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sa Jun 11. 2024

찔끔 눈물이  났다


33.          




  무심한 계절은 제 시간표대로 달려갔다. 어느새 여름이 무르익었으나 연이는 딸과의 냉전으로 여전히 힘겨운 나날을 지내고 있었다. 지만의 노력이 닿지 못하는 세상, 포성 없는 전쟁은 아직 겨울 한가운데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만큼 엄마에 대한 실망이 컸을까?’ 생각하는 연이.  ‘얼마나 산다고 자식들에게 불편을 끼칠까, 차라리 내가 포기하고 말아야지.’ 생각하다가도 실망할 지만이 떠오르면 그럴 자신이 없어졌다. 살아갈 날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일 분 일초가 아쉬운 지만 지순한 사랑을 연이는 지켜주고 싶었다.  


  어수선산란하게  잠을 설치고 화장실에 다녀온 연이가 다시 침대로 기어오르다 모서리에 아픈 무릎이 닿았다. '흔들'  중심을 잃었다.


  '쿵, 아악'.

 참을 수 없는 허리 통증에 땀이 흥건하고 현기증 마저 느꼈다. 통증을 이겨보려 앙다문 입술사이로 비린 맛이 올라왔다. 한참 동안 바닥에 누웠다. 통증은 그대로였다. 아무리 조심조심 움직여도 결국 일어날 사고는 터지고 만다. 젠장.

선재 가족이 모두 며느리 친정으로 출국한 다음 날에 사고를 쳤으니 결국 연락할 곳은 딸 밖에 없었다. 휴대폰지갑에 연결된 줄을 잡아당겼다. 줄이 길지 않았다면 꼼짝없이 죽은 목숨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한기를 느꼈다. 새벽 두 시 선영의 번호를 찾아 눌렀다.    

      

   “ 이 시간에 무슨 일이세요?”

   “ 근무 중이니, 엄마 침대에서 떨어졌어. 허리가 많이 아프네, 움직일 수가 없어.”

   “ 머리는 안 부딪쳤어요? 의식은 잃지 않았고요? 금방 앰뷸런스 보낼게요”

         

  선영의 다급한 몇 마디가 연이에게 위로가 되었다. 연이는 겨우 손을 뻗어 침대 옆에 있는 고무줄 치마를 당겨 아주 천천히 꿰었다. 고통의 시간은 길고 길었다.

딸이 앰뷸런스 기사에게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 주었는지 삑삑 소리가 나고 경비실 안 씨와 함께 바퀴 달린 들것을 가지고 두 남자가 들어왔다.  선임자로 보이는 남자가 연이의 상태를 살핀 후 당직의 와 통화했다.

다른 남자는 연이에게 정맥주사를 연결하고 주사기에 약물을 정맥으로 천천히 주사했다. 진통제였던 것 같다. 숨쉬기도 어려웠던 통증이 진정되는 느낌이 들었다. 앰뷸런스는 사이렌을 울리며 새벽 속을 달렸다. 새벽을 깨우는 민폐녀가 되었다고 자책하는 연이, 허리통증보다 곧 마주 할 딸이 더 불편했다.


응급실에 도착하니 바로 병동에서 근무하던 딸이 내려왔다. 연이는 딸에게 걱정이나 끼치는 스스로가 한심해 선영을 마주 보지 못했다. 선영은 젊은 의사에게 고진선처를 부탁했다. 친절한 의사가 딸을 알아서 인지 환자라는 호칭대신 ‘어머니’라 부르며 안심하라고 했다. 요추에 압박 골절이 생겼다고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연이는 입원했다. 통증을 조절해 주는 주사 덕분인지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잠이 들었다.     


  

엄마에게서 오는 새벽전화는 항상 사고가 난 후라서 휴대폰에 번호가 뜨자마자 급히 통화연결을 했다. 낙상이라니 골절과 혹시 모를 머리손상이 염려되어 몇 마디 물었다. 통화 내용으로 짐작컨대 요추 골절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서둘러 응급실에 출동 요청하고 야간 원무 팀에 수속을 부탁했다. 병동에서 연실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응급실 차트에 연이 이름이 올라온 것을 확인한 선영이 당직의 에게 전화해서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선영도 나이가 있는지라 병원을 그만두고 싶은 유혹을 여러 차례 느끼면서도 아직 일을 계속하는 것은 엄마 때문이 컸다.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고위험군에 속한 엄마가 항상 걱정스러웠고 그나마 능력 없는 자신이 힘이 되려면 현직 간호사라도 유지해야 했다.


냉전 중 임은 중요치 않았다. 큰 사고가 아니길 바라며 이송 전에 진통제 맞고 출발할 수 있도록 부탁하고 서둘러 응급실로 내려갔다. 곧 도착한 엄마는 그 와중에도 외출복을 입고 있었다. 머리에 충격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해서 일단 안심하고 검사를 지켜봤다. 압박골절은 언제든 발생할 수는 있어서 평소 주기적으로 골다공증 체크와 주사로 예방했지만 낙상은 골절을 피할 수 없다.  압박골절 수술은 간단하지만 엄마 나이에 수술은 언제나 큰 위험이 따른다. 특히 파킨슨병에 따라오는 치매를 촉진하기도 하여 세심한 간호와 관찰이 필요하다.

딸을 믿어서 인지 엄마는 곧 안정을 찾았고 잠들었다.

선영은 밤샘근무가 끝나자마자 수술환자의 보호자 역할을 시작했다.    

       

  

압박골절은 뼈 성분의 의료용 시멘트를 척추에 넣어 고정하는 것이라고 했다. 연이는 한잠 자고 일어났을 뿐인데 수술이 끝났다고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움직이기 어려운 통증도 견딜 만했다. 주렁주렁 달린 주사들이 혈관을 타고 들어갔다. 아래가 불편하다 느꼈다. 소변 줄이 끼워져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지만에게 연락해야겠다 생각이 들었다. 베개 옆에 놓인 전화를 들어 지만의 번호를 찾는데 휴대폰이 부르르 떨었다. '백지 만 어르신' 반가운 지만의 이름이 화면에 나타났다.    


   “ 허리 수술 했다면서요? 괜찮아요?”  목소리만으로도 지만의 다정한 염려가 느껴졌다. 찔끔 눈물이  났다.       


  연이가 잠든 사이 선영이 원장에게 연락했고 곧 지만에게 전달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괜찮다는 말을 해야 하는데 목이 잠겨 말이 나오지 않았다. 수술로 인한 금식으로 입이 바짝 말라있었음을 그제야 인식했다. 겨우 괜찮다는 한마디를 하고 아쉽게 전화를 끊었다.

선영이 문에 기대어 한심하다는 듯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것을 연이가 그제야 보았다. '아  정말 싫다 이 상황.' 연이는 창이   쪽으로 꼼짝할 수 없는 몸 대신 고개를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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