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부모님과 나

여행의 의미

by 하루향기




큰마음을 먹고 부모님을 모시고 일본 홋카이도 여행을 다녀왔다. 언 20년 만에 함께 떠나는 여행이라 기대도 되었지만 안 싸우면 다행이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부모님과 아이들의 취향이 달라서 어디에 장단을 맞춰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도 되었다. 예측할 수 없는 시간이 내 앞에 놓였지만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즐기기로 마음먹었다.


걱정과 달리 조그만 트러블도 없이 모두가 웃으며 행복하게 다녀왔다. 무엇보다 4일 동안 부모님과 동고동락하며 일상 속에 파묻혀 잊고 지냈던 부모님의 매력을 알아차린 게 이번 여행의 큰 수확이었다.


엄마는 여행 내내 일행 중 선두그룹에 계셨다. 뒤꽁무니에 계신 아빠와 중간쯤에 선 우리 가족을 뒤로하고.

이번 여행 때문에 마을에서 배우고 있는 민요와 취타대와 무용 진도를 놓쳤다고 안타까워하셔서 남일 같지 않았다. 12월에는 베트남으로 취타대 공연을 하러 떠나신다니 놀라울 따름이었다. 엄마는 늘 배움에 열성이셨다. 일을 다녀와서 파김치가 되셨어도 배우러 나가셨다. 우리 남매들은 엄마의 그런 모습을 보며 왜 그리 피곤하게 사냐고 좀 편하게 사시라고 타박했었다. 그리 열성을 다하시더니, 엄마는 제주 민속민요 무형문화재가 되셨다. 내가 찾던 프로 자기계발러가 바로 옆에 있었다는 걸 왜 미처 몰랐을까...?


아빠는 늘 일행의 마지막에 계셨다. 감상적인 아빠는 사람들을 관찰하며 유유히 걸으셨다. 옆에 있는 일행에게 어디서 왔냐고 묻고, 묻지도 않은 여행 소감을 말씀하시곤 했다. 아빠의 눈에 특별해 보이는 일행 분의 삶을 상상의 날개를 펼치며 이야기하는 모습에 사춘기 손자마저 웃음 짓게 했다. 손자 손녀들에게 오글거리는 자작 삼행시를 읊어주셔서 옆 자리 승객마저 풋~ 웃음을 터뜨리게 하셨다. 평소에도 아빠는 문학소년 같은 멘트를 자주 날리시는 분이다. 아빠가 작가였다면 문학 소설을 쓰셨을 것 같다.


일상을 뒤로하니 모두가 가벼워졌고 묻혔던 부모님의 개성이 확연히 보였다. 자기계발러 같은 엄마와 문학소년 같은 아빠 사이에서 자라며 스며들 듯 무형자산을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성장하려고 애쓰는 나, 사람들의 내면에 관심이 많은 나, 오늘도 글이란 걸 써 보려고 낑낑대고 있는 나에게 이유가 있다는 걸...


멈추니 비로소 보였다. 고향에 내려가서 부모님을 뵈는 게 효도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우리는 손님이었다. 엄마는 매 끼니를 준비하시느라 분주하셨고 아빠는 손자 손녀들을 위해 이벤트를 준비하시느라 바쁘셨다. 일상을 멈추고 홀가분해진 부모님과 함께 한 여행길은 나에게 기대 이상의 의미와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부모님은 장거리 이동을 하는 게 조금 힘들다며 앞으로 해외여행은 두세 번이면 끝날 것 같다고 하셨다.


행복하기도, 뿌듯하기도, 먹먹해지기도 한 여행의 나날이었다.

keyword
이전 06화나의 어린 시절 여름향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