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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어린 시절 여름향기

여름은 늘 그렇게 싱그럽다

by 하루향기


나의 어린 시절 여름은..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파란 하늘에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초록 초록한 멀구슬나무에 왕매미가 열을 지어 앉아 울어 젖히는 소리가 가득한 풍경이다. 긴긴 여름방학 동안 아빠가 만들어주신 매미채를 들고나가, 매미를 잡고 다시 풀어주고, 때로는 매미를 괴롭히며 놀았다. 개학을 하고 방학 숙제를 제출했는데, 선생님이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그림도 매미, 글짓기도 매미. 온통 매미네!"


매미소리가 가득한 여름이었지만 여름은 우리 가족에게 한창 바쁜 시기였다. 기다리던 여름방학이 와도 해수욕장을 구경하기는 힘들었다. 여름철은 당근 씨앗을 파종하는 시기라, 부모님께서는 연중 가장 바쁘셨다. 때로 반갑지 않은 손님인 태풍이 마을을 휩쓸고 지나가면, 애쓰게 싹을 틔운 당근 새싹이 물에 잠겨 버렸다. 집안 분위기는 순식간에 먹구름이 되고, 가족 모두가 다시 파종을 하러 밭으로 향했다. 제주도가 고향이지만 수영을 못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하다.


여름에도 집과 밭을 들락거리며 바쁘게 보냈지만 그 속에서 소소한 즐거움도 있었다. 부모님이 수박 한 통을 사 오시면 작은 오빠와 경쟁하듯 맛있게 먹고, 소독차가 마을을 찾아오면 낯선 향기에 이끌려 하얀 연기 속으로 신나게 내달았다. 동네 어귀에 봉숭아 꽃이 몽글몽글 피어나면, 꽃을 짓이겨 손에 물들이고, 꽃씨를 퐁퐁 터뜨렸다. 밤에는 갈천이나 삼베로 된 이불을 휘감고 모기장 안에서 뒹굴뒹굴하며, 오싹한 납량특집 드라마를 보곤 했다.





지금은 도시에 살고 있지만, 어렸을 적 여름날의 향기가 종종 느껴진다. 매미 소리가 들려오면 나무 밑으로 가서 매미가 있는지 들여다보고, 우연히 집안으로 곤충이 들어오면 다칠세라 조심스레 밖으로 내보내준다. 태풍 소식이 들려오면 발을 동동 굴렀던 부모님과 땡볕에서 구슬땀을 흘렸던 나의 모습도 생각도 난다.

저녁 무렵 여름밤 풀향기가 느껴지면 오빠와 왁자지껄 떠들었던 추억들에 잠기기도 한다. 길가에 핀 형형색색의 여름꽃을 보면 절로 멈춰 서서 들여다본다. 나도 모르게 어린 시절의 여름향기를 쫓게 되는 것 같다.


여름은 늘 그렇게 싱그러운 추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오는 8월 휴가철에 고향에 내려가면,

아이들과 풋풋하고 싱그러운 여름철 자연의 향기를 듬뿍 느끼고 돌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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