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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타향살이란...

떠나보니 보이는 것들

by 하루향기 Oct 03.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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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새벽부터 비상에 걸려 사무실로 나가는 바람에 일찍 잠이 깼다. 덕분에 이른 아침부터 스타벅스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샐러드를 먹으며 책을 읽는 호사를 누렸다. 긴 연휴를 끝으로 다시 타향살이를 시작하며 홀로 카페에 앉아있는 시간이 달달하게 느껴졌다. 이곳에선 아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머리를 못 감아도 화장을 안 해도 자유롭게 다닌다. (근데 카페에서 직장에서 함께 독서모임 활동을 하고 있는 멤버분을 만났다. 이리 반가울 수가..!) 고향에서도 잘 차리고 다니진 않았지만 이방인이 된 지금이 한결 가벼워진 게 사실이다.


 고향에서 연휴를 보내다 떠나올 때쯤 부정적인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다. 시아버지께서 약주를 드시고 아이들에게 평소보다 장난스러운 스킨십을 하는 것도 왠지 거슬리고 홀로 자유롭게 다니시는 시아버지와 달리 다리가 불편해서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께서 쓸쓸해 보이고 걱정이 되었다. 제주에 내려갔을 땐 두 분 다 변함없으신 모습에 그저 반가웠지만 짧게나마 일상을 함께 하다 보니 귀에 거슬리고 눈에 띄는 행동이 보이기 시작했다.


 인천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보다 뒤늦게 출발한 큰오빠와 부모님 사이에 작은 마찰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손도손 아침밥을 함께 먹고 웃으며 인사하고 나왔는데 어느 순간 분위기가 반전된 건지 안타까웠다. 막내딸인 나보다 책임감이 무거운 큰오빠는 부모님과 현실적으로 대화를 나누면서 가끔 갈등이 생긴다. 시골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부모님의 생각은 틀에서 벗어나지 못할 때가 많은 터였다. 휴가에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피곤함 속에 사소한 말 한마디가 불티가 된 것 같다.


 누군가는 묻는다. 그 좋은 제주에서 나와서 왜 타향살이를 하고 있냐고. 육지에서 살다 제주로 터전을 옮기거나 한 달 살이를 하는 사람에게는 제주는 온전한 휴식의 공간일 수도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제주는 일상과 현실의 공간이었다. 좁은 지역사회라 마음을 산만하게 하는 일이 어쩔 수 없이 일어난다. 지연과 혈연으로 맺어진 관계 속에 살펴봐야 하는 경조사도 많고 양가 부모님께 도움도 받지만 관심도 드려야 한다. 친구 모임과 남편으로 연결된 지인 모임으로 보내는 시간도 만만치 않다. 온전히 내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았다. 혼자만의 시간과 장소로 가면 유별난 사람으로 비치기도 해서 새벽시간을 찾았던 것 같다.


 제주의 자연환경은 또 얼마나 다채로운가. 봄이면 만물이 소생한다. 남들 따라 고사리라도 꺾으러 가야 할 것 같다. (실제로 동네 미용실은 고사리 철이 되면 한가해진다.) 여름이면 바다로 풍덩 뛰어들어가진 못해도 해변에 발이라도 담그러 가야 할 것 같다. 가을은 또 어떤가. 바람에 흩날리는 억새 물결 따라 마음이 흔들리고 단풍놀이도 가줘야 할 것 같다. 겨울에는 노랗게 익어가는 귤밭과 새하얗게 눈 덮인 한라산에 마음이 또 일렁인다. 가볼 곳도 가야 할 곳도 많고 계절과 날씨의 변화가 다채로워 감정의 낙폭도 크다. 자연 속에서 충만함을 느끼고 자연을 활용하고 즐기며 살기엔 너무나 좋은 환경이지만, 일과 육아를 하며 또 뭔가 읽고 쓰고 싶은 욕망이 꿈트리고 있던 나란 사람에게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족하게 느껴졌다.


 도시생활은 늘 자연을 향한 갈증을 불러일으키지만 대신 내 삶에 일관성과 균형감을 주는 것 같다. 비가 많이 오지 않고 날씨의 변화가 크기 않기에 감정 변화도 적다. 가족과 지인들과 물리적으로 차단되다 보니 관심을 나누거나 돌아보아야 할 곳도 눈에 띄게 줄었다. 뭔가에 집중하고 지속하기엔 더할 나위 없는 환경인 셈이다.


 연휴를 마치고 타향살이를 시작하면서 또다시 가벼워졌다. 타향살이는 때로는 외롭지만 또한 자유롭기도 하다. 이 또한 떠나보니 깨달은 소중함이다. 이런 감정을 느끼는 나 자신이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나의 빈자리를 누군가는 채워주기에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잘 지내길 건강하길 소망하며... 감사함을 담아...

제법 쌀쌀해진 가을날 더 열심히 책을 읽고 글을 쓰기로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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