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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예린 Sep 14. 2024

사랑한다는 말은 곧 살아간다는 것 (1)

사랑하는 마음 없이는 살 수 없었을 고등학교 2학년


1학년을 마치고 2학년으로 올라가던 그해 겨울방학은 정말 '본격 고등학생'의 느낌이 물씬 났던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좀처럼 끝나지 않아 답답했고, 수학은 어지간히 어려웠고, 새 학기가 설레기보다는 두려웠습니다. 저는 '성적을 올려야 한다'는 것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거기서부터 느껴지는 압박감은 질색했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 대해서 생각해 볼 때 처음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오늘 침대에 누우면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던 저의 모습입니다. 부족한 스스로가, 수학을 못하는 제 자신이 너무 미웠던 밤들이 있었습니다. 고작 과목 하나—가만, 그렇지만 고작이 아니었는 걸요. 인정하기는 싫지만 대한민국에서 ‘대학 잘 가려면’ 수학을 잘해야 유리한 거, 모르는 사람도 없잖아요.



따지고 보면 공부하는 게 스트레스가 되는 것은 입시를 준비하는 고등학생에게는 너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그렇고요. 차라리 공부하는 것만 힘들었다면 그나마 괜찮았을지도 모르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2021년까지만 해도 첫 학기는 격주 등교였고, 2학기가 되어서야 매주 제대로 등교를 할 수 있었습니다. 조금씩 모든 것이 원래의 궤도를 찾고 있는 것 같았지만, 생각해 보면 이때가 오히려 저에게는 더 큰 감정 기복과 실제적인 어려움을 마주하면서 지내야 했던 시기였습니다. 1학년 때 자존감이 한 번 꺾이고 나서부터 그 자존감을 되찾는 것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마치 한 번 다친 곳을 다음에도 다치기 쉬운 것처럼, 괜찮다가도 꺾이고 잘 지내다가도 움츠러드는 것이 그때 저의 마음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고작 신입생 때의 살벌했던(?) 프레젠테이션 수업에서 생긴 좋지 않은 기억이 제 마음을 완전히 다 꺾어버리지는 못했고, 따라서 저는 여전히 심화해서 공부한 내용을 가지고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제가 새로 알게 된 것을 친구들에게 어떻게 재미있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설레어하던 것이 당시 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성과’는 시험 점수와 등수였고, 이런 지표들은 자신감과 직결되는 문제였죠. 숫자에게는 분명 그럴 자격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표에 찍히기만 하면 저를 참 어정쩡한 사람으로 만들기 십상이었습니다. 그런 생각들을 극복하는 데에는 조금 더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시기는 인간관계의 측면에서도 저에게 가장 어려웠던 한 해였습니다. 관계성에 있어서의 불안함이 제 개인적인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쳤고, 소폭일지언정 상승세를 이어가던 성적이 유일하게 떨어졌을 때도 2학년 2학기 때였습니다. 이제 와서 자세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으므로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만 누구누구와 어울리며 소속감을 느끼는지는 꽤 중요한 문제였다는 것—학창 시절에는 ’소속되어 있는 그룹‘ 같은 것이 확실하게 구분되는 편인데, 저는 반에서 대부분의 친구들과 잘 지내면서도 아주 딱 붙어서 어울려 다니는 친구는 없었다는 것, 그래서 못 지낸 것까지는 아닌데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외롭다고 느끼기도 했었다는 것 정도는 이야기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누구에게 아쉬운 소리 하는 것은 저에게 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나도’. 나도 같이 가자, 나도 같이 하자—그런 간단한 말도 쉽지 않았죠. 아무래도 그건 여러 차례 전학을 다니면서 생긴 버릇 같은 것이었던 듯합니다. 적어도 학교에서만큼은 누군가에게 지나치게 기대지 않는 것, 혼자 잘 적응하는 것, 정을 너무 많이 주지 않는 것.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한 본능에 더 가까웠을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선을 긋고 사는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튼, 당시에는 홀로서기의 경험들과 그 과정에서 생겨난 나름의 독립심이 오히려 저를 더 위태롭게 몰고 갔던 것 같습니다. 겉보기에는 괜찮았지만 속은 문드러지기도 했었던 2학년 첫 학기였으니까요. 여름이 다가올수록 더 힘들어했습니다. 내신 성적도 쉽게 오르지 않았고,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고, 1학년 때와는 다른 결의 어려움이었기에 또 다른 느낌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만 같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지만 그런 방황하는 마음을 딛고 일어나고자 2학기 학급 부회장 선거에 나갔습니다. 감사하게도 많은 친구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요. 그것이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갔던 선거였고, 실시간 줌으로 했던 선거 중에서는 제가 기억하는 마지막 선거였습니다. 개인적으로는 고등학교 생활에 있어서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이기도 했습니다. 믿어주어 고마운 마음에 반드시 보답하고 싶었고, 쉽지 않은 고등학교 생활 속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친구들의 곁을 지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고 싶었고,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당시 저에게는 ‘성적과 관계없이 나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이 필요했습니다.


부회장이라고 하는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았지만 꼭 지키려고 했던 루틴 한 가지는 있었습니다. 1학기 부회장이 종종 올려주던 알림장을 이어받아 매일 학급 카톡방에 과제나 준비물, 수행평가 관련 안내사항을 정리해서 올리고는 했었는데, 그럴 때면 저는 꼭 뒤에 몇 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일부러 더 밝게, 따뜻하게 말하려고 노력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듣고 싶은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환경이, 대학을 위해 치열하게 살아야만 하는 시간들이 너무 팍팍하다고 느꼈었거든요. 아직도 메모장에 남아있는 그 알림장 내용을 삭제하지 않고 가지고 있습니다. 몇 마디 안 되는 이야기에도 고마워해주고 또 공감 해주던 반 친구들의 다정함이 아직 남아있는 탓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그때 다시금 느꼈습니다. 나는 내 언어로 누군가를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다정한 마음들을 간직하고 싶다고, 나는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까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숫자로 나타나는 지표 너머의 사람이 되고 싶었고,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럴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자신감을 회복하면서 2학년을 마무리할 즈음에는 스스로를 존중하는 방법을 어렵게나마 다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시험에서 서술형을 망했고, 체육 시간에 배구 수행평가도 잘 풀리지 않아 기분이 참 안 좋았던 날이었는데, 같은 반 친구의 다정한 쪽지에 감동받고 행복해진 어느날.

여담이지만 오랜만에 알림장 기록을 다시 들여다보니 12월 13일에 올렸던 알림장에는 이런 시를 같이 첨부해서 올렸었네요.

너의 총명함을 사랑한다
너의 젊음을 사랑한다
너의 아름다움을 사랑한다
너의 깨끗함을 사랑한다
너의 꾸밈없음과
꿈 많음을 사랑한다

-나태주, <너를 사랑하는 나의 맘>





2학년 2학기. 또 하나의 지각변동이 찾아왔습니다.

저희 학교는 모든 학생들의 기숙사 생활이 원칙이었는데, 학기마다 방을 바꿨거든요. 그 말인즉슨 룸메이트가 학기마다 바뀌었다는 뜻입니다. 당연히 여름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되었을 때에도 제 룸메이트가. 바뀌었겠죠. 다른 반 친구였는데, 새로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애는 자기만의 확실한 공부 계획을 가지고 자퇴를 선택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 대단한 친구였습니다. 저라면 그러지 못했을 텐데. 그 용기가 멋있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가지고 있지 못했던 확고한 목표 의식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그 친구가 자퇴한 뒤로 저는 남은 학기 내내 방을 혼자 쓰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방을 혼자 쓰니 편하다고 생각하기도 했었습니다. 원래 기숙사생이라면 룸메이트가 하루 정도 외박 나갈 때 느끼는 달콤한 자유를 조금씩은 갈망하면서 사는 법 아니겠어요. 하지만 편한 것은 잠시 뿐, 시간이 지날수록 방에 있는 시간이 오히려 외롭게 느껴졌던 것이 사실입니다. 아무래도 날이 쌀쌀해져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네요. 누구랑 전화하고 싶을 때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것, 혹은 혼자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라면 장점이었을까요.

그래도 혼자 쓰는 2인실은 어쩐지 텅 빈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고2는, 뭐랄까요. 고달팠습니다. 어떻게든 숨을 쉴 틈을 만들어주는 것이 스스로에게는 더없이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도서관을 자주 갔죠. 도서부이기는 했지만 코로나 때문에 통 등교를 못 하니 도서관을 갈 일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었는데, 2학년 2학기부터는 책을 빌려 보러 종종 도서관에 갔습니다. 아직도 그때 읽었던 책들의 이름이 생각납니다. 김초엽 작가의 <지구 끝의 온실>, 정혜윤 작가의 <슬픈 세상의 기쁜 말>, 최은영 작가의 <밝은 밤>, 정세랑 작가의 <시선으로부터> 등등. 좋은 문장들이 나오면 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던 것도 이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독서는 저에게 현실로부터 살짝 도피할 수 있는 탈출구였고, 사실은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꽤 괜찮은 취미였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살다가 되려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되찾았던 즐거움이었습니다.


마음을 주는 일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었고 또 건강한 일이었습니다. 책을 읽고, 블로그도 이때부터 시작하고. 애정을 주는 일들을 하나씩 늘려갔습니다. 공부하기만 해도 벅찬데 좋아하는 일이나 찾아다녔다니—이렇게 생각하셔도 어쩔 수 없습니다. 그 당시의 저에게는 학교에서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였으니까요. :)




2학년 때는 여러모로 마음이 참 어려웠는데, 아마 그 근본적인 이유는 제가 스스로를 사랑해 주는 방법을 잊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감정에 조금 더 잘 휩쓸리고, 그러면서도 현실을 살아야 해서 허우적대던 고등학생 하나였을 뿐입니다. 지금은 아는 것들을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함께할 사람들은 내 모습이나 성과와 무관하게 끝까지 함께해 준다는 것, 숫자로 이루어진 지표로 나를 판단할 사람이라면 끝까지 곁에 있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 연연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사람은 누구나 감정 기복이 있기에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것 등등.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사랑하는 방법을 한 번 잊었던 덕분에 다시 ‘찾을 수 있었다’는 것이고, 거기에 주체성이 부여되었다는 것이겠죠. 그리고 정말 감사하게도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 스스로에 대한 감정도 좋은 쪽으로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대상이 내가 되었든 남이 되었든, 사랑할 줄 아는 것은 얼마나 중요한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살아간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2학년은 힘들었을지언정 저에게 온통 성장이었고, 나중 가서는 열심을 다해 고등학교 시절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의 두 번째 해에 관한 이야기는 하고 싶은 말이 많아서 유독 할 말을 골라내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통틀어 제일 힘들었던 시기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제일 사랑했던 시기이기도 합니다. 아직 하고 싶은 이야기가 수두룩하지만 분량을 생각해서 이쯤 하겠습니다. 사랑했던 만큼 애정을 담아 계획에 없던 회차를 집어넣어 다음주까지 2021년 이야기를 조금만 더 해보도록 할게요!



마음을 담아,

2024.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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