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by 재아

바람은 풀을 흔들고, 나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바람이

여기 멈춘 나를 스쳐

이름 모를 풀을 흔든다


바람에도 무게가 있다

먼 곳의 한숨이

오늘의 풀잎을 움직인다


풀은 모른다

바람의 길이를


나도 모른다

그리움의 시작을


바람은 지나가고

풀은 고요해진다

마음의 떨림만

늦게 가라앉는다


어디선가

내 목소리도 바람이 되어

너의 머리카락을 스칠지 모른다.


‘바람은 풀을 흔들고, 나는’ 이 작품은 나의 첫 시집 "그래서, 그렇다"에 수록된 그리움, 이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담겨있는 시다.


솔직히 말하면 억수로 보고 싶은데 우린 헤어졌고, 잘 가라며 쿨하게 잊어주겠다고 했다. 새로운 만남이 올 거라는 믿음과 설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쿨하지 못했다. 여전히 그의 향기가 섞여 있는 일상 속 헛헛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 이 시였다.


그런데 이 작품을 좀 더 그럴듯하게 포장하면 어떻게 될까? "자연과 인간 정서의 교감을 섬세하게 그려낸 서정시로, 변주의 기법이 잘 어우러져 있으며 구체적 이미지를 통한 추상적 정서의 형상화, 절망에서 희망으로의 정서적 여정이 현대인의 그리움과 상실감을 보편적으로 형상화했다"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같은 작품, 전혀 다른 해석의 표현. 하나는 날 것의 솔직함이고, 다른 하나는 세련된 포장지다.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포장한다. 슬픔을 '성장의 과정'이라 부르고, 실패를 '값진 경험'이라 말한다. 이별의 아픔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정리'라고 표현한다. 이런 포장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견딜 수 없는 현실을 견딜 만하게 만들어주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준다.


하지만 포장에만 익숙해지면 우리는 진짜 자신을 잃어버릴 위험이 있다. 내가 정말 무엇을 느끼고 있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게 된다. 포장된 언어에 갇혀 진짜 마음은 숨 막혀 질식해 간다.


내 시의 진실은 간단했다. 보고 싶다는 것, 쿨하지 못하다는 것, 헛헛하다는 것. 그런데 이것을 '서정적 형상화'나 '정서적 여정'이라는 말로 덮어버리면, 그 생생한 아픔이 희석된다. 물론 그런 해석도 틀리지 않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삶 자체가 하나의 편집 과정이다. 같은 사건을 두고도 우리는 서로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실연을 당한 사람 중 누군가는 "운명적인 사랑을 기다리며 성숙해지는 시간"이라고 말하고, 다른 누군가는 "그냥 차였을 뿐"이라고 말한다.


어느 쪽이 맞을까? 둘 다 맞고, 둘 다 틀리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관점들 사이에서 균형을 찾는 일이다. 너무 포장에만 의존하면 현실감각을 잃고, 너무 날것의 감정에만 머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바람이 풀을 흔드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계속 흔들린다. 그 흔들림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도 있고, '혼란'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둘 다 맞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 자체를 인정하는 일이다.

결국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성이라는 나침반이다. 포장과 해석이 필요할 때와 날것의 진실이 필요한 때를 구분하는 감각 말이다.


일을 할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일상을 살아갈 때도 우리는 늘 선택한다. 어떤 렌즈로 세상을 바라볼 것인지, 어떤 언어로 내 경험을 표현할 것인지. 그 선택의 순간마다 진정성이라는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면 된다.


내 시에서 진정성은 "억수로 보고 싶은데"라는 솔직한 고백에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감정을 바람과 풀이라는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도 또 다른 진실이었다. 포장과 날것이 공존하는 지점, 그곳에서 진짜 이야기가 시작된다.


바람은 계속 불 것이고, 풀은 계속 흔들릴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흔들림 사이에서 나만의 삶을 찾아갈 것이다. 포장하지도, 포장을 거부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삶을.


그것이 바로 우리가 삶이라고 부르는 것의 진짜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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