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안나 Oct 23. 2024

2부 3편-상하이의 배신

평소에 남들은 나를 친절한 서영 씨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 중국 생활에 도움을 줘 그런 별명이 생겼다. 본사에서는 내 눈치를 봤지만 나는 형준의 흔적이 있는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로 가는 것이 좋았다. 한 달 만에 베이징 생활을 정리했다. 십 년을 다닌 베이징 산우회에서 많이 아쉬워했다. 베이징 생활을 풍요롭게 해 줬던 것은 매주 가는 산행이었다. 산행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산우회에 진심이었던 내가 상하이로 가기로 결정하자 베이징에서 상하이로 갔던 회원들에게 연락 왔다. 2016년 이후, 한국 기업들 상황이 안 좋아지며 이미 상하이로 회사와 사업장을 옮기는 회원들이 많았다.  


서영 씨, 상하이로 온다면서요.~


상하이에 대해서 여행자 수준의 정보만 있던 내게 먼저 상하이로 간 산우회 회원들은 큰 도움이 되었다.

 상하이로 와 처음으로 열린 환영모임에서 민혁을 만났다. 베이징에 있을 때, 몇 번 산행에 나오기는 했지만 민혁은 말이 없었다. 내가 로스쿨 다니면서 한마디도 안 하고 조용히 고개 숙이며 다녔던 것처럼 그도 말이 없었다. 남들보다 큰 키는 눈에 띄었다. 나도 민혁도 서로에게 한 번도 말을 하지 않았다. 다시 만난 민혁과는 별말 없이 눈인사만 하고 헤어졌다. 집을 구하고 베이징에서 가지고 온 살림과 가재도구를 정리하느라고 정신없었다. 


10년 동안 익숙하게 살았던 베이징과 상하이는 달랐다. 베이징은 교민들 90%는 왕징에 모여 산다. 모든 생활이 왕징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상하이는 베이징에 비해 교민들이 사는 지역도 흩어져 있다. 베이징과 다른 상하이에 적응하느라 바빴다. 베이징 동계올림픽으로 강력한 코로나 방역정책으로 온통 통제천국일 베이징과 달리 상하이는 자유로울지 알았다. 베이징에서는 코로나 감염자가 한 명만 나와도 한 구区를 다 봉쇄했는데 상하이는 그 아파트만 봉쇄하는 핀셋봉쇄를 해 역시 합리적이라는 생각에 상하이가 좋아지려고 했다. 베이징을 떠나 상하이로 온 내 선택에 만족해하고 있을 때, 상하이에서 코로나 감염자가 늘고 있다는 소문이 검은 안개처럼 상하이를 덮고 있다. 스멀스멀 코로나 감염자는 걷잡을 수 없이 늘고 있다. 


 아파트 출입자통제 한다고 출입증을 만들러 가는데 민혁에게 전화가 왔다. 자기가 사는 아파트가 봉쇄되어 당장 갈 곳이 없으니 잠시만 있을 수 있겠냐는 전화였다. 순간, 어떻게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누구를 가리고 배제할 순간이 아니다. 같이 베이징에서 산에 다녔던 민혁이 곤란하다는 데, 오라고 했다. 우리가 한 달 넘게 아파트에 갇힐 거라는 것을 몰랐다.  회사 차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민혁을 만났다. 통행증을 받고 나니 긴장이 풀리고 배가 고프다. 민혁과 같이 편의점에 가서 맥주와 먹을 것을 사 오며 순간 살짝 행복하다. 누군가 같이 물건을 사러 가는 순간이 좋다. 민혁과 맥주를 마시며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군인이었던 아버지와 음대 나온 어머니 이야기에 주눅이 든다. 민혁은 아버지의 폭력성을 이야기했다. 나는 아버지가 없다. 화제를 바꿔 공통 주제인 베이징 이야기와 산 이야기를 하고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해 투덜대다 살짝 취했다. 정리하며 설거지를 하는 나를 민혁이 등 뒤에서 안는다. 우리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 나도 모르게 나를 안은 민혁의 팔을 푼다. 형준과 이미 헤어졌지만 법적으로 혼인 관계를 정리하지 못했고 민혁도 유부남이었다. 명색이 변호사인 내가 어쩌자는 거지..


다음 날 아침, 민혁은 말은 안 했지만 갈 만한 곳을 못 찾고 있는 듯하다. 여기저기 봉쇄 저글링하는 상하이에서 우리 집에라도 편하게 있으라고 집 비밀번호를 알려주고 금요일이라 가벼운 마음으로 출근한다. 층 현관문을 밖에서 쇠사슬로 잠가 놓았다. 우리 아파트가 봉쇄되었다는 통지문이 붙어있다. 11층에 사는 집주인에게 문자를 보냈더니 우리 아파트를 전수 검사해서 확진자가 없으면 2일 뒤에 봉쇄를 풀어준다고 한다. 가지가지한다. 코로나 정책에 관한 한 중국의 창의력은 정말 기발하다. 얼떨결에 민혁이도 같이 갇힌 것이다. 2일 정도면 베이징 산우회에서 캠핑 갔다고 생각해자고 했다. 

단체방에서는 상하이가 봉쇄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무슨 소리야, 어떻게 상하이를 봉쇄해 


다들 그렇게 이야기했다.


상하이는 바다로 나간다는 동사 上海가 도시이름인 명사가 된 도시이다. 상하이를 봉쇄하면 중국을 봉쇄하는 것과 같다.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온라인에서 떠돌고 있었다. 중국 제로코로나 정책이 3년째 되어가니 별 이상한 소리와 억측이 난무한다. 

이미 제로코로나 정책으로 형준과 헤어지고 상하이로 온 내가 받을 피해와 고통이 더 있을까.. 크라켄(덴마크 전설에 나오는 괴물)처럼 봉쇄가 다가오는 상하이에 혼자 있는 게 두렵다. 하루만 자고 다음 날 다른 기장 집이나 숙소로 가려던 민혁이 같이 있는 게 좋다. 


이런 내 마음을 상하이가 알았을까.. 몰라줘도 되었는데..


이틀 뒤 풀리기로 했던 아파트 봉쇄는 풀리지 않았고 2022년 4월 1일, 상하이 시 전체가 봉쇄되었다. 상하이를 봉쇄하고 군부대를 투입할 거라는 이야기도 단체방에 올라온다. 지금까지 전혀 서로 다른 인생을 산 민혁과 나는 졸지에 70㎡ 아파트에 갇혔다. 


남편 하고도 같이 산 적이 없는 내게 민혁과의 동거는 낯선 도전이다. 다행인 것 둘 다 많이 먹지 않는다는 냉장고를 채워 놓고 사는 편이 아니고 열었을 때 비어있는 냉장고를 선호했다. 그날그날 사서 정리하거나 며칠 내 소비할 수 있는 만큼 생활하던 내게 상하이 봉쇄는 혹독했다. 민혁은 냉장고에서 꺼낸 얄팍한 재료로 신기하게 두툼한 음식을 만든다. 우리 둘 다 서로가 더 먹기 바라며 음식을 양보한다. 상하이 항구에는 물품을 실은 컨테이너선들이 몰려서 입항을 기다리고 있고, 상하이 시 경계에 식료품을 실은 화물트럭이 들어올 수 없어 야채와 고기들이 썩고 있다. 중국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상하이에 사는 우리가 먹을 것과 생활 물자를 못 구하고 있다는 사실이 코미디가 아니라 현실이라는 게 더 웃기다. 


단체방에서 정보를 수집하는 것도 아파트 안 한인들과 교류하는 것은 나의 몫이다. 혼자 부기장을 데리고 영어로 독립적으로 일하는 민혁보다 중국어로 일하며 평소에도 수많은 고객사를 다뤄 온 내가 나았다. 가장이 된 기분이다. 흙수저 산 게 이럴 때, 도움이 되는구나.  나는 고기를 먹지 않지만 민혁을 위해 고기를 구하고 싶다. 1월에 베이징에서 먼저 상하이로 내려왔던 사람들과 집에서 간소한 집들이를 했다. 한국식으로 잘 풀리라는 화장지를 사 왔고 비데가 있던 우리 집에 화장지는 충분히 있다. 아파트 단체방에 올려 화장지를 주고 만두와 햄으로 바꿔왔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는 기분이다. 


내 거 주면 니 꺼 줘 


민혁과 나는 집안일을 분담했다. 

낮에는 온라인으로 근무하는 나를 위해 민혁은 작은 방에 있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되었지만 상황은 같지 않다. 중국 제로코로나 방역 정책은 수시로 바뀐다. 바뀌는 정책을 따라가는 것은 100M 달리기처럼 숨찼다. 하루 24시간 중 23시간은 집안에 있는다. 6개월마다 메디컬체크를 해야 하는 민혁의 체력 관리를 위해 달리기라도 같이 하자는 제안을 했지만 사고를 쳤다. 아파트 한 바퀴도 못 뛰어보고 발목을 삐었다. 발목이 휘청하는 순간은 통증이 심하다. 간신히 아파트 화단에 앉는다. 초저녁 어스프레 했던 어둠은 점점 먹물처럼 번지고 있는 밤, 발목을 민 통증에 고개를 숙여지고 눈물이 나온다. 어렸을 때부터 발목을 습관적으로 삐었다. 삐는 순간, 인대가 늘어나며 아프다. 걷다가 내가 넘어지면 엄마는 놀랬다. 엄마에게 난 아프다고 하지 않았다. 괜찮다고 항상 말하면서 제대로 치료받지 않았고 내 발목은 점점 불안정해졌다. 삶 자체가 아픈 엄마에게 내가 아프다는 말하며 더 아플까 봐 봐 말하지 않았다. 엄마와 혼자 살면서 나는 울지도 아프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내가 울고 아프다고 하면 사람들이 나를 싫어할까 겁났다. 항상 생글생글 웃으면 사람들이 좋아했다. 그렇게 나는 남들에게 미움받지 않고 살았다. 아픈데 슬픈데 말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는 것이 습관지만 속으로 아프고 슬프다. 

한동안 괜찮았던 발목을 다치니 그동안 표현해보지 못했던 아프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저 멀리 뛰어오는 민혁이 보인다. 큰 키로 성큼성큼 뛰어와 넘어진 나를 일으켜 준다. 순간, 한 번도 본 적 없고 만난 적 없는 아버지가 생각난다. 아버지 보호와 애정을 받아본 적 없는 내게, 나를 일으켜 주는 사람이 있는 거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하라는 그 말에 처음으로 아프다고 말했다. 


같이 집으로 돌아가 민혁은 구급용품 상자에서 압박 붕대를 가지고 와 빠르고 단단하게 감아준다. 그 손을 잡고 싶다. 전에 나를 안았던 민혁 팔을 풀어버렸지만 이번에는 내가 그 팔을 잡는다. 작은 방으로 가겠다는 민혁에게 가지 말라고 하며 한 침대에서 처음으로 같이 잔다. 손만 잡고 잤지만 이미 나는 그날 마음속으로 민혁에게 안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