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투른 동거는 이제 익숙한 소꿉놀이가 되었다. 민혁은 있는 재료로 어떻게든 뭔가 만들어냈다. 칼질도 빠르고 프라이팬도 잘 사용한다. 혹시 군대 취사병 갔다 왔냐고 물었더니 공군에서 비행기 닦았다고 농담한다. 그래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고했다. 매일 같이 눈 뜨고 민혁이 내려주는 커피 (잘 내리지는 못했지만 민혁이 내려주는 것만으로 향긋한) 마시는 아침이 행복했다. 봉쇄가 준 유일한 선물이었고 민혁이 떠난 후, 내게 다가올 끔찍한 시간 오기 전, 폭풍전야 같은 평온한 일상이었다.
아파트 주민위에서 구호품을 주기 시작했다. 우리 아파트에 처음 민혁이 온 날, 대약진 운동 때, 인민공사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제 공통 취사하니 집 안에 있는 솥,그릇,수저 등 철기는 다 녹여 쇠로 만들라고 했던 이야기..쌀을 쪼아먹는 참새 잡다가 병충해가 창궐에 식량부족으로 2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굶어 죽었던 바보짓, 코로나 바이러스 잡겠다고 사람들을 가두고 굶기다 구호품을 주고 있는 바보 같은 짓을 하고 있는 지금은 1958년이 아니라 2022년이다.
먹을 것이 이미 바닥나고 간신히 하루 최소 대사량 유지할 정도로 먹던 우리에게 아파트 주민위에서 주는 구호품은 도움이 되었다. 손질하지 않은 생고기가 통째로 나오거나, 태어나서 처음 보는 낯선 야채들과 마주하고 민혁과 머리 맞대고 소곤소곤 만들어 가는 과정은 즐거운 놀이였다.
본사에서 긴급구호키트를 구해 보내주었다. 대기업은 어떻게든 물자를 구해 주재원들과 직원들에게 보냈다. 봉쇄가 되어도 돈의 힘은 통했다.
내 의지였든 아무도 원하지 않았든 민혁은 나와 같이 있고, 비행이 배정되면 바로 떠나야 한다는 것을 둘 다 알고 있다. 6개월 동안 이착륙 3번을 안 하면 비행을 할 수 없는 것이 기장의 숙명이자 의무이다.
아파트 안으로 전기를 공급하던 장치가 고장나며 정전이 되었다. 봉쇄에 정전에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은 지금 다 일어나는 것 같다. 내가 연락을 할 수 없다는 것보다 민혁이 연락을 할 수 없는 게 불안하고 불편했다. 집 안에는 와이파이가 없으면 휴대폰이 안 되었다. 건물 밖으로 나가면 휴대폰 사용은 가능했지만, 곧 배터리가 떨어질 것이다. 당분간 연락이 안된다고 회사와 가족과 연락하고 민혁이 같이 아파트 계단을 걸어 14층까지 걸어왔다. 둘이 같이 손잡고 올라오는 동안, 힘들지만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행복했다. 정전되어 좋은 것은 지긋지긋한 무한루프 같은 코로나 핵산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것이었다. 외부와 단절된 채, 냉장고도 정수기도 멈춘 아파트 안에서 이틀을 보냈다.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 삶이 힘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도 더 힘든 상황도 있다는 것을 상하이가 가르쳐준다. 굳이 알려주지 않아도 되는데…
중간에 간신히 생수 6병을 구했다. 생수병을 들고 낑낑대며 아파트 안을 걸어오는 나를 기다리던 민혁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누군가 나를 기다려주고 내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행복했다. 그 날 밤, 정전으로 모든 빛과 봉쇄로 모든 소리가 멈춘 밤에 우리는 처음으로 서로에게 서로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