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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4

2부 6편-팡창, 지옥과 연옥

 산책을 마치고 집에 왔더니 하얀 방역복을 입은 방역요원들이 집 앞에 있다. 

나를 잡으러 온 저승사자 같았다. 내가 감염자로 확진되었으니 지금 수용 시설로 가야 한다고 했다. 2020년 1월 코로나라는 단어가 세상을 검은 구름으로 덮을 때부터 중국은 감염자를 수용시설로 데리고 갔다. 그 안에 14일 동안 수용하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아 집으로 돌려보냈다. 우리가 제일 무서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은 수용시설로 끌려가는 것이다. 봉쇄 기간 수용시설로 갔던 다른 외국인들이 올린 영상이나 사진은 보는 자체만으로 끔찍했다. 벌겋게 달궈진 칼은 보는 것만으로도 뜨겁고 아프다. 수용시설 영상과 사진이 그랬다. 그 벌겋게 달궈진 칼이 지금 나를 찌르려고 한다. 


 나는 외국인이다. 

집 안에서 격리하게 해달라고 했다. 안 먹힐 거라는 것을 알지만 순순히 끌려갈 수는 없다. 내 요구는 당연히 묵살된다. 빨리 짐 싸서 나오라는 다그침이 싫다. 검사 결과는 맞냐는 내 말에 단호하게 맞다고 한다. 믿을 수 없다. 나를 더러운 물건처럼 멀리 한다. 

 집 안에 들어가 물건을 챙긴다. 한 달에 한 번씩 한국, 중국 오고 갈 때는 항상 여행용 짐을 싸 놨는데 3년 동안 한국을 못 가면서 여행용 짐을 싸지 않게 되었다. 뭘 싸가지고 가지 막막했다. 그동안 팡창에 끌려갔던 사람들이 올렸던 영상과 글을 봤지만 내 일이 되자 그동안 봤던 기억이 하얘졌다. 

 옷 몇 가지, 세면도구, 노트북, 수건을 챙겨 캐리어에 담고 나왔다. 내게도 방역복을 입으라고 한다. 나는 내가 감염되었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 어떤 증상도 없다. 열도 기침도 안 하는 내게 감염자 굴레를 씌운다. 하얀 방역복을 입자 온몸이 답답하다. 방역복에 방진마스크에 페이스실드를 씌우고 똑같은 방역복장을 한 방역요원들과 봉쇄 50일 만에 아파트를 나온다. 봉쇄가 풀려서가 아니라 감염자가 되어.. 



 문화 대혁명 때, 지주, 지식인들에게 반동분자 팻말을 목에 걸고 마을 안을 끌고 다니며 조리돌림을 했다. 

지금 나는 감염자라는 팻말을 걸지 않았을 뿐, 내게 돌을 던지고 욕하는 사람들만 없을 뿐, 순식간에 사회에서 격리되어야 하는 불순분자가 되어 끌려가고 있다.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팡창에 가서 검사해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 지금 팡창 간다고 여기저기 연락해 소란과 걱정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내 실수였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 

 작은 미니밴에 나 혼자 탔다. 다른 사람들과 접촉하면 안 된다는 뜻이겠지 

덕분?에 나는 잠시나마 창 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상하이 시내는 전쟁터 같다. 곳곳에 바리케이드와 차단펜스가 쳐져 있다. 나를 태운 방역 차량도 통행증을 몇 번 제시해야 한다. 아, 여권을 챙겨 왔어야 했다. 순간 여권을 안 가지고 왔다는 생각에 안 그래도 더운 방역복 안으로 땀이 흐른다. 이제 내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한국인이라는 것을 증명해 줄 수 있는 수단이 없는 것이다. 


 2시간을 갔을까… 상하이 시내를 벗어나 시골로 가고 있다. 휴대폰으로 위치를 찍어보니 상하이 근처에 있는 섬으로 가는 것이다. 이름만 들어봤지 가 본 적이 없는 섬이다. 놀러도 못 가본 섬에 지금 감염자가 되어 끌려가는 것이다. 달리는 차 안에서 갑자기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든다. 팡창에 가면 코로나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팡창생활 때문에 힘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 데 아는 게 병이다. 


 소독약 냄새가 심해지는 것으로 팡창에 다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나콘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나를 잡아먹으러 기다리는 입 속으로 들어간다. 겹겹이 쇠가시가 막힌 철조망과 차단벽으로 둘러싸인 거대한 팡창이 보인다. 묵직한 철문이 열리고 팡창 안으로 들어간다. 나는 여기서 살아서 나갈 수 있을까 하는 공포가 왈칵 덮쳐온다. 차 문이 열리고 오징어게임에 나오는 게임진행요원 같은   하얀 방역복에 페이스실드를 착용하고 있어 누군지 알 수 없는 방역요원이 따라오라고 한다. 


  나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 놓인 조립품처럼 순서대로 코로나검사를 받고 물품을 받았다. 

플라스틱 바구니에 안대, 귀마개, 화장지, 비누, 치약, 칫솔, 마스크, 1회용 장갑, 개인 수저가 들어있다. 안대와 귀마개를 보는 순간, 나는 빛과 소음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임시 수용 시설은 돔 형태이다. 둥근 돔 지붕 아래 침대 수십 개와 칸막이가 나란히 놓여 있다. 

어떤 수용 시설은 칸막이도 없다고 하는데 여긴 칸막이라도 있다. 이걸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불쌍했다. 내 인권은 대한민국 여권 안에나 있다. 그나마 외국인이라고 중앙이 아닌 맨 구석에 자리를 배치해 줬다. 이것도 다행이고 고맙다고 생각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나란히 늘어선 침대는 멀리서 보면 관처럼 보인다. 감염자들끼리 모아놓으면 이 안에서 다른 질병이 안 생길까.. 오로지 상하이 시 지역에 코로나 감염자만 없으면 된다는 절대 목표 하에 실제 상해시에 속하지만 행정구역은 장쑤성江苏省인 섬에 감염자를 가둔다. 


 나는 아직도 내가 감염자라고 믿지 않는다. 침대는 길이 2미터 넓이 1미터 싱글침대였다. 어디서 구했을까? 수용시설 전용으로 하루에도 몇 백개 침대를 만들어낼 수 있는 이 나라 제조능력을 의심할 필요가 없다. 인공산과 섬도 만들고 인공비와 눈을 뿌리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누가 덮었을지 모르고 소독과 세탁은 제대로 했을까 의심스러운 침구에 그나마 부직포로 된 이불싸개를 주었다. 부직포라고 해도 거의 면에 가까운 촉감이라 다행이다. 수용시설은 24시간 불을 끄지 않는다고 들었다. 


 어느새 저녁이 되었고 침대마다 도시락을 가져다준다. 봉쇄 이후 처음으로 재료 걱정, 물자 걱정 안 하고 밥을 먹게 되었다는 사실에 어처구니를 찾고 싶다. 밥은 밥이다.  따뜻한 하얀 쌀밥에 야채 반찬 2개와 무슨 고기인지 모르는 고기가 들어있다. 야채 반찬 2개만 살짝 골라 먹고 도시락을 휴지통에 넣었다. 한국에 있는 가족, 회사, 상하이와 베이징에 있는 지인들에게 팡창에 왔다고 연락했다. 상하이사무소와 본사에도 연락했다. 여기 신호가 안 좋아 회사 업무를 집에서처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알려줬다. 지인들은 영사관에 연락해 보겠다고 했다. 연락해도 소용없다는 것은 내가 더 잘 알지만 예의상 감사하다고 했다. 

 단, 한 사람 민혁에게 알리지 않았다. 비행 중이거나 아니며 격리시설에 있거나 답답한 정도만 다르지  힘든 상황 속을 헤매고 다니는 사람에게 내 걱정을 얹어주고 싶지 않다. 형준에게 문자가 왔다. 상하이 생활 정리하고 한국으로 오면 어떻게냐고..  그 순간에 그러겠다고 말할 뻔했다. 

 3년 내내 하루도 쉬지 않고 매일 코로나검사에 부분적 봉쇄와 이동 통제, 사회적 거리 두기에도 지쳤다. 코로나가 발생하고 난 후, 늘 언제든지 감염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아슬아슬했다. 이미 봉쇄 40일을 넘게 버텼고 아버지가 돌아가셨어도 한국에 가볼 수 없던 내게 더 이상 쓰라릴 것도 아플 것도 없다.


 이렇게 된 이상, 봉쇄 끝까지 버티겠다고 했다. 설마, 죽기 전에는 끝나겠지 하는 나의 희미한 희망은 진해지지 않았고 정말로 내가 죽어야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몰랐다. 나 말고 다 중국 사람들 같았다. 도시락을 먹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다들 도시락을 다 비운다. 여기서 자야 한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지만 바뀌지 않는다. 

 양치질도 하고 싶고 세수도 하고 싶다. 샤워실과 화장실은 따로 조립식으로 분리해지어 놓았다. 샤워실 문 앞에 긴 줄이 서있다. 이 공간에 수용한 사람들 수는 세어보지 않아도 100명은 될 것 같은데 샤워실은 5개였다. 남녀 구분이 없다. 샤워실 위는 뚫려있어 하얀 김이 피어오른다. 누군가 샤워하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물은 나올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줄 서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되지만 입을 떼기도 싫다. 줄 서서 자기네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들으니 이 사람들은 팡창에 온 것은 체험학습이라도 온 걸로 생각하나 보다.


 30분을 서 있었을까.. 내 차례가 되었다. 샤워실 문을 여는 순간, 바닥과 벽에 여기저기 붙은 머리카락과 각질, 허연 때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내가 뭘 기대했던 건지.. 호캉스를 온 것은 아니지만 캠핑장 수준 샤워장 정도는 될 거라는 생각을 했던 나는 10년을 중국에서 살았지만 아직 중국을 모르는 순진한 바보였다. 샤워기를 트니 차가운 물이 졸졸 나온다. 조립식 샤워시설에서 정상수압을 기대한 내 어리석음.. 간신히 세수와 손발만 씻고 나왔다.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가기가 무섭다. 설마 재래식은 아니겠지. 화장실에 문은 있을까… 중국여행을 하면 시골동네, 오지마을도 많이 가보고 작은 시골 마을버스 터미널에 문 없는 화장실부터 온갖 화장실을 다 가봐 다른 한국 사람들보다 중국 화장실에 내성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팡창 화장실은 두렵다. 화장실은 그나마 팡창에서도 바깥쪽 구역에 있었다.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어 다행이다. 팡창에 오니 삶에 대한 기준이 낮아진다. 남녀 화장실이 따로 있다는 당연한 사실에 고마워하니 말이다. 상하이 봉쇄는 내게 겸손과 만족을 가르쳐 주나 보다. 

 화장실 문을 여는 내 손은 떨렸다. 변기에 분변, 생리혈과 머리카락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고 그나마 물도 내리지 않아 오물이 가득했다. 이 화장실을 내가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은 지금 명백하다. 간신히 화장실을 사용하고 물을 내리려 했다. 조립식 화장실이라 수압이 낮아 물이 잘 내려가지 않는다. 오물이 쌓여 있는 이유였다. 화장실에서 나와 내 침대로 돌아와 손 세정제로 손을 닦고 물티슈로 한번 더 닦는 내 손등에 눈물이 떨어진다. 왜 내가 있어야 하는지 알 수 없다. 


 3년 내내, 중국이 제로코로나 한다고 보여준 놀랍고 창의적 정책들은 때론 경이롭기 할 정도였다. 웬만한 정책 변화와 강화에 이제 어느 정도 면역이 되었지만 오늘 하루 너무 지쳤다. 24시간 전등을 켜 놓긴 하지만 밤 9시가 되자 조도를 조금  낮춘다. 파티션 넘어 중국 사람들이 동영상을 보면 낄낄대는 웃음소리가 송곳처럼 귀에 꽂힌다. 이 상황에서 웃는 사람이 있다.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다. 침대에 누우니 스프링이  배긴다. 수용시설 침대에서 시몬스침대 같은 편안함을 기대하면 안 되지 다시 한번 ‘서영아, 정신 차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잠을 잘 수가 없다. 여기저기 낮은 소리로 동영상 보는 소리와 팡창생활을 생중계하는 전화 통화 소리, 게임기 소리가 윙윙거리며 벌처럼 팡창 안을 날아다니고 있었다. 나도 같이 뭘 틀지 않으면 미쳐 버릴 것 같다. 


뒤척이다 옆에 누가 서있다. 

민혁이었다. 


아니 어떻게 여기 왔어요.

서영 씨 만나러요. 일부러 감염되었어요.

아니, 그렇게 하면 어떻게 해요. 같은 시설로 온다는 보장도 없는데요. 비행은 또 어떻게 하고요. 

그동안 3년 동안 나도 지쳤어요. 코로나 걸리면 6개월 동안 비행 못 하니까 한국도 갔다 오고 좀 쉬려고요. 우리 여기서 같이 나가요.


민혁 말에 나는 애기처럼 큰 소리로 울음을 터트렸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민혁 앞에서 큰 소리로 울지 못했는데.. 그동안 쌓인 슬픔과 고통이 한 번에 터져 엉엉 울었다. 울지 말라고 안아주는 민혁을 있는 힘껏 꼭 끌어안으며 입을 맞추었다. 눈물이 입 안에 흘러 들어와 짠맛이 느껴졌지만 민혁과 입맞춤은 달콤했다. 우리는 서로 더 깊숙이 혀를 밀어 넣으며 키스했다. 


갑자기 밝아졌다. 

아침 6시라고 실내조명 조도를 높인 것이다.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밝아진 실내를 둘러보니 스프링 배기는 침대 위에 부직포로 싼 이불을 덮고 팡창 안에 누워있는 내 현실은 그대로였다. 그렇게 보고 싶었던 민혁은 오지 않았다. 올 수도 없다는 것을  잘 알지만 보고 싶고 그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봉쇄 시작하면서 전쟁터에 혼자 버려진 내 손을 잡아준 민혁이 있어 덜 무서웠는데 이제 진짜 포탄이 던지고 하늘에서 폭격이 떨어지는 전쟁터에 나 혼자 있다. 


 이 상태로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다. 아침을 가지고 온 방역 요원에게 상하이영사관에 연락해 달라고 했다. 나는 대한민국 국민이고 범죄자가 아니니 인신구속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네가 대한민국 국민인 것은 맞지만 감염자인 것도 맞기 때문에 우리는 검사해서 코로나 바이러스가 나오지 않아야 내보내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검사를 믿을 수 없다고 했다. 나는 아무 증상도 통증도 없는데 어떻게 감염자이냐고 했다. 감염자라는 보이지 않는 낙인이 내 이마 위에 주홍글씨 낙인보다 선명하고 깊게 찍혀있다. 누구도 지워줄 수 없다. 


 주변에 있는 다른 중국 수용자들은 조용히 주는 밥 먹고 영상 보고 자고 놀다가 또 밥을 먹고 화장실과 샤워실을 잘도 간다. 나는 식사를 거부했다. 먹으면 화장실 가야 한다. 차라리 굶는 게 낫다. 화장실을 가지 않기 위해 물도 최소한만 마셨다. 한국 본사와 상하이 사무소와 연락을 했지만 그들도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했다. 빨리 나아 이 수용소에서 나가라고 한다. 


걸린 적이 없는데 어떻게 나을 수 있을까? 조지프 헬러 소설 <캐치 22>가 생각난다. 미친 군인은 전역신청을 할 수 있다. 전역신청을 한 군인은 미치지 않았다. 


결국 전역하지 못하고 계속 군대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조항, 캐치 22


나는 여기서 나가려면 코로나가 완치되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코로나에 감염되지 않았다. 

그러니 나을 수가 없다. 

래서 나는 여기서 나갈 수 없다. 


하루 종일 먹지 못해 기운도 없는데 눈물이 나온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나는 단식을 시작했다. 식사를 거부하는 내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끼기 시작한 방역요원들이 자꾸 와서 밥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여기서 내보내 주지 않으면 식사를 거부하겠다고 했다. 이러지 말라는 방역요원에게 나는 내게 이러지 말라고 했다. 여기서 나갈 수 없다는 것과 내보내주지 않으면 밥을 먹지 않겠다는 내 의지는 서로 등나무과 칡뿌리처럼 엉켜 나를 조여들고 있다. 어제는  백 년보다 긴 하루였다면 오늘 밤은 천년보다 긴 하루 같고 내일은 만년보다 더 길 하루가 될 것이다. 기운이 없다. 물과 차만 마시고 있다.


민혁이 옆에 와서 내 손을 잡고 나가자고 했다.

비행기 몰고 왔으니 같이 타고 한국으로 가자고 했다. 

“정말요” 

너무 기뻐 벌떡 일어났지만 내 옆에는 수용시설 파티션만 서있다. 꿈이었다. 


 팡창에 끌려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화장실에 가야 했다. 아무리 안 먹어도 기본대사는 하고 있으니까 어지럽고 울렁거리지만 화장실을 가야 한다. 지옥문을 여는 것처럼 싫었지만 화장실문을 열어야 했다. 화장실에 쭈그려 앉아 보는 내 소변에 웃음과 울음이 동시에 흘렀다. 화장실에서 내 침대까지 걸어오는 그 짧은 길도 힘들었다. 어디 붙잡을 수 있는 벽이나 지팡이라도 있으면 좋겠다. 다들 잠자고 있어 조용한 수용시설 안에 나만 깨어 있다. 이 밤도 지나면 내일 밤도 다를까.. 변하지 않은 사실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뭘까.. 


 내 로스쿨 때 여자친구 살해 의대생 사건 케이스 스터디를 했었다. 의대생이 경동맥을 찔러 여자친구를 살해했던 사건이었다. 팡창에서 살아 못 나가면 죽으면 나갈 수 있을까?

내가 챙겨 온 파우치 안에 작은 가위가 있다. 비행기 기내에도 가지고 탈 수 있게 끝이 둥글게 처리되어 있어 엑스레이 보안 검색도 통과가능하다.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그 가위였다. 날카롭지 않게 둥글게 처리되어 있는 가위로 찌를 수 없다. 침대 프레임 사이에 좁은 틈이 있다. 가위 한쪽을 거기에 넣고 분지르려고 했다. 힘이 없네… 평소에는 그리 좋았던 독일 쌍둥이 제품의 단단함이 지금은 원망스럽다. 침대 프레임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페인트 코팅이 되어 있는 침대 프레임에 가위가 깎여질 리가 없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도 없지만 할 수 있는 것도 없다. 파우치 안에 클립이 하나 있다. 휴대폰 유심을 바꿀 때가 가끔 있어 항상 넣고 다니는 것이다. 클립 끝은 뭉툭했다. 그 클립을 가위 날에 대고 문지르기 시작했다. 이건 가능했다. 클립으로는 깊게 혈관을 자를 수 없다. 로스쿨 다닐 때, 자살로 위장한 살인사건 스터디 할 때 나왔던 내용이다. 며칠 전 나왔던 과일 통조림이 생각났다. 다들 후루룩 잘도 먹던 과일통조림.. 캔을 따니 뚜껑을 분리했다. 끈적한 과당이 묻은 캔 뚜껑으로 얼마나 깊게 내 혈관을 자를 수 있을까.. 주저흔만 남을 수 있다. 캔 뚜껑 하나 더 해 2개를 합치니 단단해졌다. 그 끝을 가위로 갈았다. 나를 살려줄 사람도 없지만 죽여줄 사람도 없다. 누가 내 경동맥을 그어줬으면 좋겠다. 끌려올 때, 챙겨 온 약 중 스틸녹스가 있다. 엄마가 우울증으로 처방받아먹는데 과다복용할까 걱정되어 2020년 춘절에 갔을 때 몰래 가지고 왔다. 엄마의 과다복용이 걱정 돼 가지고 온 스틸녹스를 내가 먹게 될 줄 엄마는 모르겠지.. 스틸녹스 20알은 일주일도 넘게 먹지 않았던 내 식도를 비집고 간신히 들어간다. 위에 들어간 약에 토할 것 같다. 어지러움이 혈관을 타고 뇌로 향한다. 시야가 흐려지며 벽과 바닥이 빙빙 돌기 시작한다. 캔 뚜껑을 가지고 샤워실로 갔다. 나는 혈관이 잘 보인다. 빙어 같다고 가끔 놀렸다. 하나 둘 셋, 한 번에 그어야 한다. 

나는 혈관이 잘 보인다

살이 찢어지는 통증과 피는 약하게 흘러나왔다

머리끈으로 겨우 팔뚝 위를 묵고 샤워호스를 틀었다


쿵, 내 의식도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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