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모든 벽이 다 하얗다.
벽만 보고 내가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혹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을까? 몸을 일으켜 봤지만 사방 하얀 벽은 역시 수용시설이었다. 어딘지 모르는 방으로 옮겨졌다. 내 왼쪽 팔 상처는 드레싱 되어 있었고 오른팔에는 수액이 꽂혀 있었다. 수액에 붙은 라벨에 포도당, 단백질, 비타민이 들어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죽고 싶지 않았다. 이 수용시설에서 나는 죽고 싶지 않다. 살려고 내 팔을 그었다.
위세척을 했는지 내가 입고 옷에는 하얀 거품이 말라붙어 있었다.
수액양으로 봐서 1시간도 더 걸리겠다. 수액이 조금 더 빠르게 나오게 조정하고 다시 누웠다. 몸 안에 흘러들어오는 수액이 내 몸을 흐르면서 그동안 굶었던 장기에 영양분을 넣고 있다. 다시 깜빡 정신을 잃은 건지 잠을 잔 건지 모르겠다. 눈 떠 보니 수액을 다 맞았나 보다. 내가 가지고 온 캐리어와 가방도 같이 옮겨줬나 보다. 방 안에는 별도 화장실과 호스만 달려 있지만 샤워기도 있다. 하나도 기쁘지 않다. 내가 원한 것은 독방이 아니라 여기서 나가는 것이다.
가방을 열어 휴대폰을 꺼냈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보려고 했다. 신호가 없다. 데이터를 차단했구나. 영리하다. 외국인이 내가 여기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 외부로 나갈 수 없게 데이터를 차단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어디인지 모르겠다. 휴대폰 데이터가 없으니 위치를 알 수 없다. 여기서 내가 스스로 죽어도 그들이 나를 죽여도 아무도 모른다. 이제 눈물도 안 나온다. 나는 왜 여기에 갇혀 있는 것일까.. 숨 쉬고 살아는 있지만 혼자 어딘지 모르는 곳에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실제 감염자가 아닌데)라는 칼을 쓰고 갇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방역요원이 문 밖에 밥을 놔두고 갔는지 문을 똑똑 두들기고 갔다. 늘 똑같은 밥이다. 밥과 볶은 야채, 무슨 고기인지 모르는 고기볶음이 들어있다. 수액을 맞아 그런지 배는 안 고프다. 밥을 그대로 문 밖에 놔두었다. 여기서 내보내 주지 않으면 굶겠다는 내 의지를 다시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게 문 밖에 도시락은 놓였다 치워지고 버티겠다는 내 의지도 의식 속에서 흔들리고 있다.
독방에 나를 가둔 후로 더 이상 코로나 검사를 하지 않았다. 며칠이 지났을까 휴대폰 데이터가 없으니 날짜가 헷갈리려고 했다. 물만 마시고 있는 내 체력과 정신력도 이제 없다. 지쳐 잠이 들면 방역요원이 들어와 수액을 놓았다. 어떨 때는 수액 놓는 것을 느끼고 깰 때도 있지만 가만히 있었다.
그들은 나를 죽이지 않고 나도 나를 죽이지 않는 타협점이 생긴 것이다.
독방 안에 작은 창문이 있다. 밖으로 볼 수 없게 비닐로 차단해 놨다. 비닐을 찢고 싶었다. 도시락에 나무젓가락이 같이 나왔다. 나무젓가락을 분질러 비닐을 찢기 시작했다. 어찌나 두꺼운 비닐을 여러 겹 대 놨는지 겨우 작은 구멍 하나 낼 수 있었다. 작은 방안은 급하게 만든 임시시설이라 페인트와 본드냄새가 폐를 찌른다. 작은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깥공기에 정신이 들면서 눈물이 맺힌다.
창 밖으로 보이는 외부에 뭔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진다. 작은 구멍을 조금 더 찢어 바깥을 더 보려 했다. 정확하게 보이지 않았지만 방역요원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다바이大白들이 파도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상하다는 생각에 방문을 열었다. 그동안 잠겨 있던 방문이 열린다. 방문 밖에 사람들이 웅성이고 있다. 상하이 봉쇄가 끝났다는 것이다.
2022년 6월 1일,상하이 봉쇄가 풀렸고 수용 시설에 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며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봉쇄가 끝났다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상하이 봉쇄가 끝났다고.. 어리둥절하다. 내 휴대폰을 보니 이제 신호가 잡힌다. 중국 시아오홍슈小红书와 도우인抖音에 상하이 봉쇄가 끝났다는 소식들이 올라오고 있다. 2달 넘는 봉쇄와 2주 넘게 나를 가두던 격리시설 수용이 풀렸다. 어지럽다 못해 토할 것 같다. 나를 가두는 방역요원도 이제 없다. 나는 캐리어와 가방을 끌고 수용시설에서 걸어 나왔다. 끌려 들어왔던 길을 걸어서 나가고 있다. 수용시설 바리케이드 철문을 나가야 한다. 그전에는 방심할 수도 안심할 수도 없다. 다른 수용자들도 나가느라고 철문 앞은 북적였다. 사람들에게 밀려 걸어 나왔다. 철문 앞이다. 이제 한 발자국만 더 나가면 된다. 그 한 걸음 걷기가 너무 힘들었다. 지속된 단식으로 내 몸에 남아있는 것은 여기서 살아나가겠다는 집념과 제로코로나 정책에 대한 미움과 원망만 있다. 철문을 나왔지만 나를 기다리는 것은 없었다. 어딘지도 모르는 이곳에서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민혁과 나는 64일 동안, 장소는 다르지만 봉쇄된 채로 보냈다. 상하이 봉쇄는 끝났지만 아침저녁으로 끝없이 이어진 코로나 검사에 대한 고통과 격리시설로 끌려갔던 끔찍함은 지금 내 혈관을 타고 흐르고 있고, 중국 제로코로나 정책은 달라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