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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 Oct 23. 2024

2부 5편-다시 혼자

 소꿉놀이같은 동거를 하던  우리 둘은 이제 신혼부부같다.

14층 내 방에서  하늘이 보인다. 우리는 봉쇄되어 있지만 하늘을 봉쇄되지 않았다. 하늘 보며 일을 하려야 할 수 없으니 좀 늦게 누워있던 아침, 나는 민혁 가슴을 손가락으로 꼼지락거리며 만지고, 민혁은 내 어깨를 모스 부호처럼 톡톡 치는 장난을 하며 누워있는 시간은 몰디브 해변에서 풀빌라에 누워있는 것 같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냉장기와 정수기 모터가 다시 도는 소리에 우리는 벌떡 일어났다. 휴대폰부터 충전했다. 그동안 끊겼던 외부와 연락을 시작했다. 형준에게도 문자를 보내니 전화를 한다. 여전히 나를 걱정하는 사람, 고맙지만 이제 더 이상 우리는 부부가 아니다. 

 휴대폰은 며칠 동안 받았던 문자와 메일을 덤프트럭 레미콘처럼 쏟아낸다.문자 더미 속, 제일 내 가슴을 사시미 칼 들고 후민 것 같은 소식은 엄마가 알려준 아버지 부고였다.  내게 아버지가 있었다. 너무 어렸을 때, 나를 떠나 기억할 수도 없었던 사람 부고가 봉쇄된 상하이 속 내게 왔다. 아버지는 엄마와 너무 일찍 만나 헤어졌다. 내가 기억할 수 있을 때, 아버지는 이미 없었다. 그런 아버지도 아버지이다. 슬픈 감정이 나를 베고 있다. 

 나는 베란다 창턱에 앉아 멍하게 창 밖을 바라봤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여기서 나갈 수도 돌아올 수도 없다. 안방에서 나가지 않는 내 눈치를 보며  민혁은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현관문이 닫히는 소리에 나는 나가지 말고 나 좀 위로해 달라고 소리치고 싶기도 했고 민혁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 

 식탁에는 민혁이 차려놓은 밥상이 있었다. 해는 지고 있었다. 집안을 조금씩 어둠이 물들이고 있고 내 감정도 슬픔으로 물들고 있었다. 베란다 창턱에 앉아 어두워져 가는 하늘을 본다. 오늘 아침, 민혁과 함께 누워 바라본 맑고 파랬던 하늘을 지금 아버지 죽음에 눈물 흘리며 혼자 바라본다.  현관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지만 문을 열어줄 기운도 정신도 없다. 민혁이 현관 비번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베란다에 앉아있는 내게 민혁이 조심스레 다가왔다. 


무슨 일 있어요.


뭐라고 답할까… 나하고 지금 법적으로 상관없는 내 아버지가 죽었다고 말해야 하나… 

민혁에게 심적 부담과 나를 위로해야 하는 의무를 주고 싶지 않다. 민혁은 나를 안아주었다. 눈물로 범벅된 내 입술에 민혁 입술이 닿았다. 우리는 강한 입맞춤을 하며 서로를 안았다. 

가장 슬픈 날, 내 옆에 있는 사람, 불륜이니 윤리는 그런 것은 70㎡ 안에는 없었다. 


민혁이과 나란히 누워 있어 품에 안겨 있으니 조금씩 풀려가는 먹먹한 슬픔은 민혁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다시 먹먹해졌다. 내게 안 들리게 세탁기가 있는 베란다에 나가서 받았지만 그러기에 내 청력은 너무 좋았다. 


비행 스케줄 나왔나요. 

응. 그래요.


민혁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야죠. 주민위 같이 가요.


 봉쇄 전, 우연히 사놨던 라면 3개 중 하나가 남아있었다. 

남은 라면 1개를 민혁 가방에 넣었다. 우리 둘 중 한 사람 살아남아야 하나면 그건 민혁이다. 민혁은  아내와 아이들이 있으니까 그가 살아남길 바라며 넣었다. 불안한 이 상황에 옆에 있어준 그에게 하나 남은 라면을 넣었다. 

 내 아버지 죽음의 슬픔은 나만이어야 한다. 민혁에게 말하지 않았다. 알든 모르든 할 수 있는 것은 없으니까요. 울고 있던 나를 안아주던 민혁은 회사 전화를 받고 나갔다. 언제든지 다가올 거라고 알고 있던  올 수 있는 이별 앞에 당당해야 하는 것 아닌가…


 민혁도 봉쇄 공간을 옮겨 다닐 뿐, 봉쇄 속을 헤매고 다니고 있다. 같이 아파트 정문까지 갔다. 우여곡절 속에 받은 출입증으로 민혁은 봉쇄된 아파트를 나갈 수 있었다. 민혁이 이 회사 차를 타고 멀어지자 나는 간신히 집으로 돌아왔다. 한국에서 내 생물학적 아버지 부고가 왔지만 나는 갈 수가 없고, 봉쇄 40일을 함께 했던 민혁마저 떠나는 지금, 나는 우주를 떠다니는 먼지 같았다. 아버지 장례는 그나마 코로나로 돌아가신 게 아니라 잘 치렀다고 했다. 내가 선택하지 않았던 아버지는 내가 선택할 시간 없이 내 곁을 떠났다. 


 민혁이 떠난 자리는 컸다. 둘이 같이 앉던 식탁도 혼자 쓰려니 최후의 만찬에 나오는 12명의 사도와 예수 그리스도가 앉아도 될 만큼 길게 크게 느껴진다.  민혁이 쓰던 작은 방에 들어가니 모든 흔적이 너무 말끔히 걷어진 게 약 올랐다. 나를 대한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일주일이 지났고 코로나 검사와 자가 진단 키트 검사는 하루에 2번씩 이어진다. 

코로나 검사를 받기 위해 태어난 피동체 같다. 회사 일은 계속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했다. 아침에 일어나 민혁이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며 노트북을 여는 순간이 그리웠다. 

 아파트 단체방에서 공구가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한 박스씩 구매를 해야 나처럼 혼자 사는 1인 가구는 구입량이 너무 많았다. 한인 단체방에서 다른 사람들과 나누기로 하고 공동구매를 했다. 징동에서 물건을 시키면 시간이 오래 걸려 그렇지 배달이 가능했다. 

 구호품으로 나오는 중국 야채들을 요리해 먹기 위해 중국 굴소스와 간장도 샀다. 공동구매로 생선도 박스로 샀다. 냉동생선이긴 하지만 봉쇄 후 처음으로 생선도 먹게 되었다. 장어도 공동구매가 가능했다. 장어를 샀는데 같이 곁들여 먹을 초생강이 없다. 생강을 얇게 편을 떠 초생강절임도 만들었다. 봉쇄상황에서 못할 것이 없다. 

 봉쇄가 길어지며 아파트 안에서 창조경제가 생겨났다. 이발사다. 보통 한 달에 한 번씩 이발을 해야 하는 남자들 머리는 덥수룩해진 지 오래였다. 내 앞 머리도 잘라야 할 때가 지나 눈을 자꾸 가린다. 화장대 구석에 굴러다니던 핀을 찾아 앞머리에 핀을 꽂았다. 80위안이라는 싸지 않은 돈을 받았지만 이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아파트 1층 현관에서는 동네 아줌마들끼리 서로 머리를 잘라주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만두를 만들어 파는 사람도 나타났다. 만두는 만들려면 손도 많이 가고 재료 준비도 많이 해야 한다. 와인 같은 알코올도 이제 공동구매가 가능해졌다. 와인을 사볼까 했지만 6병을 사야 해 포기했다. 다들 왜 봉쇄되어 있는지 잊고 아파트 안에서 삶을 즐기고 있다. 


 헬싱키에 갔던 민혁이 어렵게 인편을 통해 호밀빵, 치즈를 보내왔다. 빵을 받는 순간, 억눌렀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눈물 젖은 빵이 이런 의미는 아니겠지만 나는 민혁이 보내준 빵을 눈물에 적셔 먹었다. 봉쇄 생활을 처음부터 나 혼자 했으면 민혁의 빈자리가 없었을 것이다. 덜 힘들었을까, 더 힘들었을까?


 사회적 제로코로나라는 새로운 기준이 나왔다 감염자가 나오면 상하이가 아닌 다른 지역 수용시설로 보내면 상하이에는 감염자가 없으니 제로코로나를 달성할 수 있다는 신박한 정책이 실행되었다. 제로 코로나를 하기 위해서 이 나라는 못 할 게 없다. 이때만 해도 내가 수용시설로 끌려갈 줄 몰랐다. 

 매일 아침마다 자가 진단키트로 코로나 검사를 해 아파트 단체 앱에 올려야 했고 매일 저녁이면 관리 사무소 앞에 설치된 검사소에 가서 코로나검사를 받아야 했다. 어떻게 가둬 놓아도 감염자는 계속 나왔다. 감염자가 나오면 그 동 전체를 봉쇄했다. 14일 동안 그 동에서 추가감염자가 안 나와 봉쇄를 풀어줬다. 

아파트 동끼리 돌아가며 감염자가 나왔다. 봉쇄해도 감염자가 나오는 것이 택배 같은 외부 접촉이라고 그나마 공동구매와 간간이 배달되던 택배도 막을 것 같다는 소문이 돌았다. 관리사무소 앞 검사소에서 검사받고 아파트 안을 몇 바퀴 돌고 집으로 돌아왔다. 


 민혁과 같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매일 민혁이 생각나고 그리웠다. 내가 사는 아파트는 홍차오 공항에서 가까웠다.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봉쇄 기간 동안 볼 수 없던 비행기 이착륙을 요즘 간간이 보인다. 민혁이 한국에 전세기를 몰고 갔다 온다고 했다. 화물기인 줄 알고 

“저 좀 캐리어에 넣고 화물칸에 좀 실어주세요.”  했다. 


민혁이 모는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가고 싶다.

민혁은 이번에 카고Cargo(화물기) 가 아니라 팩스Pax(여객기)야 했다. 

잠깐 우리는 웃었다. 


언제 민혁이 모는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그날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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