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바닥 염증으로 인한 강제휴식 2일 차에 돌입했다. 가만히 있는 게 체질이 아니기에, 제한된 조건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을 해가고 있다. 글을 쓰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뭘 더 할 수 있을 건지 생각한다. 발전적인 것 이외에도, 인생을 크게 두고 바라보는 시각을 가지기도 해 본다. 경제 이외의 방면에서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객관적으로 보기 위해 노력해 본다.
그러다가 든 생각이 하나 있는데, 그게 소재가 될 것 같다.
건강은 내가 노력하면 효과를 보인다. 몸을 만드는 것도 포함이다.
일은 내가 노력하면 효과를 보인다. 노동과 사업 포함이다.
투자는 내가 노력하면 효과를 보인다. 긴 인내의 시간이 필요하긴 하겠지만, 어쨌든 노력하면 상응하는 보답이 있다.
여자와의 사랑은 내가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결과값이 그렇다. 어떠한 억울한 심정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객관적으로 그러하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확률을 논할 수는 있는 것이나, 실질적으로 까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까고 나서도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가기도 한다. 한마디로 통제가 불가능하다. 이것은 마치 스릴 있고 재미있으며 상당히 위험한 도박 같다.
나는 주식 투자를 10년 해왔다.
도박을 싫어해서, 카드 게임들의 룰 자체도 일부러 배우지 않은 사람이다.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래서 솔직히 말해 결혼은 고사하고 연애도 경계하게 된다. 내게 무모한 위험은 사치이다. 나는 지금도 책임질 것들이 많다.
나는 못생긴 것도, 그리 잘생긴 것도 아니다. 자주 듣는 말은 무섭게 생겼다는 이야기이다. 아무 생각 없이 서있었는데 주변에 사람들이 흠칫 놀라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래서 억지로 웃고 다니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웃을 일이 없어도 공익을 위해 억지웃음을 짓는다. 그게 피곤해서, 목적이 없다면 집 밖에 잘 안 나간다.
왜인지는 나도 이해하기가 어려우나, 살다 보면 내게 다가오는 여자들이 있다.
예의는 지키되 말을 많이 안 섞으려고 한다. 자리를 뜨려고 한다. 내 생각엔 그런 느낌 때문에 더 내게 다가오려는 것 같다. 나를 정말 좋아한다기보다는, 그 느낌에 이끌려하는 것 같다. 그렇게 만남을 허락한 여자 중 제대로 만나게 된 여자가 없었다. 재미만 보려던 여자들 같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보름 내로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서두에 언급했다. 강제로 휴식하고 있는 며칠간, 인생을 크게 보려고 한다고.
내 철두철미한 성격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법원의 판결문을 읽어본 적이 있다. 이혼과 재산분할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스템이 궁금했다.
같이 살았던 기간에 비례하여 처가 가져가는 재산의 비율이 높아진다. 5년 단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10년인가 15년인가 같이 살면, 처가 재산의 절반을 가져가도록 되어있다. 문제는 이러한 원리적인 내용이 70년대 사회상을 반영했다는 점이다.
비슷한 건이라고 한다면, 사법기관의 판결은 대체로 이전 판결의 성향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것을 한번 뒤틀게 되면, 판사가 귀찮아지기 때문이다. 쓸데없는 추가적인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말 골 때리는 점은 재산분할이 이뤄질 시, 양도처분액에 적용되는 세금을 남자 측에서 전액 납부해야 한다는 것이다. 처는 순수한 절반을 가져가고, 나머지 절반에서 전액에 적용되는 세금을 제한 금액이 남자에게 할당된다는 것이다. 법이 그러니, 이것은 강제이다.
나는 주식을 할 때, MDD(MAX DRAW DOWN의 약자로, 주가가 최대로 빠지는 %를 지칭하는 용어이다.)조차 20-30%로 두는 사람이다. 그만큼 보수적으로 운용한다.
나는 고추가 달렸기에, 결혼했다가 비끄러지면 MDD 50% + 양도차액 세금까지 국가와 개인에게 강탈당해야 한다.
투자의 측면으로 봤을 때, 이 같은 자살 행위가 또 따로 없다.
내 투자 행위는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이 아닌, 내 핏줄의 삶을 개선하는데 쓰일 귀중한 자원이다. 나는 스토아 철학을 기반으로 삶을 산다. 내가 아닌, 내 공동체를 수호한다. 내 멍청함으로 그걸 파괴하면, 나는 철학적으로 불완전한 인간이 된다. 나는 그것을 두려워할 줄 안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점을.
또 알고 있다. 나와 말을 트게 된 저 여자도 완벽한 인격체가 아니라는 점을.
그래서 또 알고 있는 점은,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해 서로 수정하고 맞춰나가야 한다는 점이다. 나는 그 점을 알고 있기에, 어느 정도의 감정 소모를 감내하려고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났던 2030 여자들은 그런 감정 소모조차 하고 싶지 않아 했다. 좋고 재미있는 것만 하고 싶어 했다.
가령 나와 몸을 섞는다던지, 놀러 간다던지 하는 것들.
우리가 갇힌 거시적인 경제 상황도 있지만, 그것만이 사유가 될 수는 없다. 시스템도 문제이고, 사람 그 자체로도 문제다. 어떻게 여자를 만나고 결혼을 해야 하나 싶다.
내가 혼자 노력하는 것으로는 이것을 해결할 수가 없다.
노력해봤다.
좋은 여자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근거도 사유도 논리도 없는, 고찰이 부재한 말들은 내게 큰 피곤함을 준다.
나는 자료를 읽고 공부를 하여 따로 시간을 들여 깊게 생각해보았다.
'이퀼리브리엄'이라는 영화가 있다. '크리스챤 베일'이 나오는.
극 중, 저항군 사령관이 말하는 대사가 있다. 이런 내용이었다.
소수의 몇 사람만 감정을 억누르면,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그걸 합니다.
아마 아주 높은 확률로, 이 역할을 내가 맡게 될 것 같다.
인생을 크게 둔 고민의 결론은 이렇게 났다.
Act of violence - Joe hisaishi
https://www.youtube.com/watch?v=8_SYgVoWMf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