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르는 소 Mar 20. 2024

어머니의 마지막 과일을 까먹다

돼지++ 껍데기 23

어머니 침대 옆 협탁서랍에서 천혜향 과일 한 개를 발견했다. 

주무시다가 드시려고 넣어놓으신 듯하다. 

어머니의 마지막 과일간식을 꺼내와서 혼자 까먹었다. 

푹 익어서 그런지 상큼함이 거의 없고 껍질도 잘 안 까진다. 


입맛이 까다로운 어머니는 음식의 변화를 금방 알아채셨다. 

가끔 1등급 쌀을 사면 쌀을 어디서 샀냐며 에둘러 물어보셨고

떨이로 파는 딸기를 사 오면 얼마에 샀냐며 가격을 물어보셨고

특가판매의 고구마를 배달시키면 인터넷 물건은 믿을 수 없다고 하셨다. 


지나가는 말이라도 며느리와 아들은 매번 그런 말이 신경 쓰였다. 

삼시세끼 뜨거운 밥 해 드시는 어머니 위해 

집에 특등급쌀이 떨어지지 않게 하고 

과일도 당도 높은 거 제철에 맞게 주문하고

냉장고에 고기와 간식등이 떨어지지 않게 해 드렸다. 


어머니가 만족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은 23년간 부양하느라 노력했고

며느리는 23년간 한집에서 모시느라 최선을 다했다. 

언제까지 이렇게 부양과 최선을 다해야 할까 고민할 때도 있긴 했지만

이렇게 사고로 황망하게 돌아가시는 건 아니지 않은가!


며느리가 사 온 천혜향이 맛있다는 말 한마디 하진 않으셨지만

침대맡에 두고 맛있게 수시로 드셨나 보다. 

어머니가 챙겨둔 천혜향 마지막 한 개를

나 혼자 까먹었다. 


돼지++의 내 껍데기도 피를 흘리며 벗기어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사람 잘 안 바뀐다 3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