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도 좀 보내줘요

쉬어가는 브런치 - INGO 긴급구호활동 에피소드

by 구르는 소

* 현장 직원들을 통해 보고 들은 얘기들을 가벼운 에피소드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1. "내일 오후 2시에 물자 배분하기로 공지가 나갔는데. 물건이 아직이라고요?"


대규모 지진으로 치안 및 도로교통상황이 무너진 해외 K국가. 오늘은 이미 도착했어야 할 5톤 트럭 2대분의 생필품 물자가 인근 국경지대에 발이 묶여 있는 상황입니다. 국경까지 와서 직접 물건을 인수해가지 않으면 치안 불안으로 물건을 현장으로 보내줄 수가 없다는 국경지역 경찰의 얘기가 전해졌습니다.


국경까지는 멀지 않은 거리지만 도로 상황이나 치안상황이 불안정하지 가드 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현지 경찰은 이러저러한 일로 바쁘거니와 명령체계도 무너져서 외국 민간단체들의 활동까지 지켜봐 줄 상황이 아닙니다.


"이렇게 마냥 기다리다가 긴급지원시간을 놓치거나 국경에서 물건을 분실하게 되면 우리의 구호활동도 무용지물입니다. 밤이 되면 여기 가드들과 함께 우리가 직접 물건 인수하러 국경으로 갑시다"


현지 가드들이 다행히도 같이 동행해주겠다고는 하지만, 자기들도 안전을 담보할 순 없다고 합니다.

국내 구호활동 본부는 시차관계로 이미 퇴근했고, UN에서도 너무 원거리에 있어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

내일 새벽까지는 물건을 갖고 와야 물자를 나누고 계획대로 분배할 수 있습니다.


각종 플래시와 비상연료 및 차량장비, 무장한 가드들까지 동행하여 심야에 밤길을 나섭니다.

국내에 보고되지 않았고 현지 경찰도 안전을 담보해주지 않는 위험한 상황.

현장 구호활동 책임자의 경험과 의지에 기대어 컴컴한 산속 길을 6시간여 달려 국경에 도착.

물건을 받아 다시 출발하려고 하는데, 국경 책임자가 묻습니다.


"당신들 소속이 어디요? 그지역 NGO들이 물건 받으러 온건 당신들뿐인데..?

"한국인들이요. 한국 NGO!"


'와우~' '엑설런트' '그레이트'라는 단어가 들립니다.

다행히 긴급구호물자의 비상 운반 작전은 오전 10시경에 안전하게 끝났고 오후 배분 작전도 큰 탈없이 진행되었습니다.

위험할 수도 있었겠지요. 안전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비상상황이 일상인 구호현장에서 매뉴얼만 볼 순 없습니다.

상황판단은 현장 활동가의 판단에 맡겨야 합니다.


2. 해외파병을 나간다고 하면, 군대 내에서 경쟁률이 대단합니다. 일반 사회인들이 볼 때는 이해가 안 되지만, 해외파병의 경험이 개인과 군대조직 내에서 큰 이점이 되기 때문이지요.

긴급구호활동 시에도 현지에 단기간 해외파견을 한다고 하면, INGO 내 직원들의 경쟁이 꽤 높습니다.

이런 일을 하고 싶어 INGO에 입사한 사람들이니 주저할 이유가 없습니다.


살짝 파견 희망 리스트에 제 이름을 적어 상급자에게 올렸습니다.


"여기 000이 설마 본인 이름인가요? 허허. 여기에서 모금해야지 어딜 갈라고"

"여기 000은 그냥 희망사항인 거죠? 파견 직원들 모집하고 관리해야 하니 딴생각 말아요"


많은 동기들과 후배들이 전 세계적 재난 및 위기상황 때 긴급구호활동 지원인력으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원부서에 있다 보니 해외 긴급구호 현장에 파견 나가보지를 못했습니다.


저 특수부대 출신이라 10일 이상 씻지 않고 잘 버틸 수 있는데...

저도 가고 싶었다고요. ㅠㅠ


3. "활동가님은 결혼하신 지 꽤 되셨네요..."

자녀가 있는지, 없으면 언제 낳을 계획인지 묻고 싶었지만, 더 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오랫동안 해외현장에 파견되어 국제적 이슈가 된 여러 전쟁터를 누비며 구호활동과 지원활동을 해온 활동가입니다.

사업장의 아이들이 다 자기 자녀라고 환하게 웃는 모습 속에서 활동가로서의 행복감이 보입니다.


현지 소장님이 전쟁터에 장기간 파견된 젊은 군인, 기자, NGO 활동가들이 자녀가 없는 확률이 높다는 해외 언론의 기사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진 바는 없지만, 전쟁에 사용된 각종 살상 무기들의 잔해들과 파괴된 시설에서 누출된 화학약품이 사람한테 안 좋은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유해한 물질들이 전쟁터나 재난지역에 많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다분히 가능한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활동가님한테 자녀가 없는 게 어떤 이유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죠. 물어볼 이유도 없습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얘기했듯이 '남들이 나올 때 우리는 들어가는' 곳이 INGO입니다.

사명감 하나에 인생을 건 분들입니다.

우리나라에 이런 분들이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인류애적 가치를 갖고 청춘과 삶을 NGO 활동에 바치면서 지구촌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헌신한

INGO활동가들의 고귀한 생애에 진정한 존경의 뜻을 표합니다.

이런 분들과 동시대적 삶을 살아가고 같이 일을 하고 있다는 데에 자부심을 갖습니다.


더욱 많은 사람들이 NGO영역에 들어와 소중하고 헌신적인 삶을 살아가시기를 소망해봅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