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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 껍데기 21

나는 아프니, 앉아서 간들 어찌하리~

by 구르는 소

허리디스크가 재발했는지, 출근길 너무 힘들어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았다.

돼지가 살이 쪄서 아픈 것이냐, 통근길이 멀어서 힘든 것이냐!


등산배낭을 멘 어르신들이 옆에 앉아, 앞에 서서 두런두런 댄다.

'난 60세 되기 전엔 노약자석에 앉아 본 적이 없어!'

'요즘은 65세 아래는 젊은것들이야. 노인이 아녀'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 같다. 들으라고 하는 소리다.

숨 한번 크게 들이쉬고 이어폰을 낀 채 눈을 감았다.

난 돈을 내고 전철을 탔어요. 어르신들~


승차요금도 안 내시고 평일 출근길 전철로 등산가시는 분들아~

아직 놀러 다닐 힘이 팔팔하신거 같은데, 노약자석 찾지 말고

서서 댕기세요.


"우리 세대 덕에 이런 잘 사는 나라에서 살게 된 거야!!~"

누가 뭐라던가요. 수고하셨습니다. 항상 감사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소급해서 죽을 때까지 젊은 애들, 장년층들 피 뽑아 먹겠다는 것은 아니 됩니다.

지금 열심히 일하면서 세금 내는 세대 덕에 어르신들 지금 공짜로 전철 타고 다니는 거랍니다.

서로 살기 힘든데 자극하지 말아요.

제 껍데기 속 뼈와 근육들이 좀, 많이 아픕니다.


들려오는 음악에 눈을 감는다.

갑자기 20년 전, 임신초기 노약자석에 앉았던 아내한테

'젊은년이 왜 노약자석에 앉아있어!'라고 우산으로 아내 배를 툭툭 쳤다던 노인네가 생각났다.

아이 3명을 데리고 놀이공원에 다녀오다 노약자석에 겨우 앉았더니

'자가용 끌 돈도 없으면서 왜 애 셋씩이나 싸질러 놓고 노약자석에 앉아있어!'

라고 나한테 손가락질하며 호통치던 노인네도 생각났다.

나이를 헛먹은 사람들이 꽤 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꽤 있다.

배려가 지나치면 자기들 특권인 줄 안다.


누가 또 내 발을 툭툭 찬다.

눈을 떠보니 내 손가방이 발목을 툭툭 건드리고 있다.

잠깐 졸았구나. 다음역에서 내려야 하는데, 아픈 허리로 일어나는 게 걱정이다.




다 각자의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산다.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는 거지 뭐.

내일 출근길엔 지팡이를 짚고 나서야 하나...

신경 쓰지 말자. 허리 더 아프다.


각자 사정이 있으니 노약자석에 앉겠지.

궁금하면 직접 물어봐야지 지팡이로 치거나 욕지거리는 안했으면 좋겠다.

내 껍데기 더 두껍게++ 만들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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