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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느림보 달팽이 haru Oct 28. 2024

범상치 않은 그의 등장



그 시각

제주도 한라산 선문대할망의 집


이윤이 터벅터벅 산 중턱 까지 걸어 올라왔다.


“여기까지 오라가라 하지마 할망.. 난 사람 몸으로 비행기라는 걸 타야 한다고.. 아 힘들어“


“널 안본지 벌써 세달 째인데. 오자마자 투정이냐?!”


“나도 그럼 할망 처럼 여기 뿅 저기 뿅 나타나는 능력을 주지 그랬어!”


“어우…말이나 못하면은”


“뭔데 부른건데. 전화로 간단하게 하지는”


“실은 네가 해줘야 할 게 있단다. 너도 내 부탁 하나 들어줘야 겠다.”


“내가 해줘야 할거? 그게 뭔데?”


“실은 말이다.”


***


골든 그룹 20주년 창립 파티 

화려한 조명과 꽃 장식 테이블에는 각종 케이터링이 잔뜩 놓여져 있었다. 가지런한 옷차림을 한 웨이터 들이 샴페인 잔을 하나씩 손님들에게 건네고 있었고 그 곳을 온 귀빈들은 모두 다 하나같이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김기두의 옆에서 많은 일을 도맡아 하고있는 김비서가 누가누가 왔는지 일일이 살펴 보고 있었다.  


그리고는 김기두가 앉아있는 테이블로 걸어 갔다.


“회장님, 아무래도 이번에도 대 주주 님께서는 안 오실 듯 합니다. 그리 연락 받긴 했지만요”


“하.,, 그 노망난 할망구.. 죽은 건 아니야? 어째서 여태 코빼기도 안 비추는 것인지!”


그때 수아와 유민이 파티 장에 도착했고 기두는 그런 수아를 발견했다.


“저 아이. 내가 보내 준 옷을 입고 오지 않았군”


“아네. 작은 사모님,아니 골든호텔 이사장님 께서 옷을 다시 돌려 보내셨습니다”


“내 성의를 무시 하겠다는 거군”    


김민주가 또각 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파티장에 들어왔다. 세상 화려해 보이는 드레스와 나이에 어울리지 않은 진한 화장을 하고 명품 백을 뽐내며 사람들의 인사를 받았다.


“이게 누구야.임수아 결국 왔구나?”


유민이는 민주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녀를 싫어하는 건 유민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어때? 사람들 앞에 오랜만에 모습을 보인 소감이? 오늘 꽤 차려 입었네? 훗..어울리지 않게”


주위에는 수아를 알아 보는 듯 사람들이 수군 거리기 시작했고 그녀가 차려입은 모습을 보며 어떤 이는 놀라워하고, 어떤 이는 민주 처럼 아니꼽게 보았다. 


“역시 회장님이 잘 돌보고 있었네요. 전 회장의 딸”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요? 회장님도 아량이 너무 넓으시네요”


“그러게요. 저 아이가 무슨 도움이 될 거라고 거두어 준게 이상할 정도에요”


“한간에는 저 아이의 지분을 고모가 가지고 갔다는 소문이에요”


“그럴리가요. 이사회가 열렸을때는 김회장이 몰표를 받았는데요?”


“그 부분이 이상하지요”


“쓸모없는 아이를 저리 예쁘게 차려 입히고 김회장이 애쓰네요”


"그래도 예쁘네요. 전 회장 사모를 쏙 빼닮아."


"미모가 좋긴 했지요. 그 바람에 여러 구설수에 오르긴 했지만."


"현 회장과 관계가 깊다는 소문 들었어요."


"저도 들었지요. 저 아이가 현 회장의 딸이라는 소문"


"쉿! 들어요. 조용히 말해요."


"이미 다 알고 있을 걸요. 그 여자의 사생활이 난잡 했다는 이야기는요"


"쉿. 회장님 귀에 들어 가봤자 우리만 손해입니다"


수아는 듣지 않으려고 했지만 자연스럽게 귀에 들어왔다. 마치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들으라는 것 마냥 

떠들어 댔기 때문이었다.


마치 그녀를 물어 뜯으려 하는 들개떼들에 둘러 쌓여 수아는 미끼가 된 기분이었다.


'그래, 마음대로 지껄여. 어차피 난 여기 불청객이니 조용히 얼굴만 비추고 가면 돼..'


"아아, 잠시 뒤, 창립기념 파티를 시작 하겠습니다. 이 자리에 계신 귀빈 여러분은 자신의 자리에 착석 부탁드립니다. 그럼 회장님 올라 오시겠습니다"


이윽고 식이 시작되고 주인공인 김기두 회장이 단상에 섰다.   


“감사합니다. 골든 그룹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이 자리에 귀하 발걸음 을 해주신 귀빈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 골든 그룹은 글로벌한 기업을 목표로 여태 열심히 달려 왔습니다. 

그 결과, 미국, 일본, 중국, 홍콩, 상하이, 호주, 그리고 이번에 두바이 까지 저희 사업을 점차 확장시켜 우리의 즐거운 날들을 위한 놀이동산, 리조트,아쿠아리움, 등 다양한 엔터테이먼트 사업을

확장 시켜 왔습니다. 그러기에는 많은 우리 주주 분들의 도움이 있었지요.

이 자리에 대주주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그때 김비서가 다급히 김기두가 서있는 단상에 올라가 귓속말로 전했다.


“아.. 대주주님을 모시고 싶어서 초대 드렸는데 귀한 발걸음을 친히 해주셨다고 합니다. 그럼 모셔서 소감 한 말씀 들어 보실까요? 하하하”


사람들이 일제히 함께 웃기 시작했고 환호 소리와 함성 소리가 들렸다.


조명을 받은 사람이 천천히 단상 위로 올라 갔다. 

점점 더 가까워져 갔고 얼굴이 비춰지는 순간 사람들은 감탄과 놀라움의 탄식을 내뱉었다.

멋스럽게 차려입은 젊은 남자는 마치 모델 처럼 걸어 나왔다.


그는 이윤이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이윤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저희 할머니를 대신해서 왔습니다. 말씀 전하려구요”


기두도 이렇게 젊은 남자아이가 나올지 상상도 못했던 모양인지 놀란 듯 당황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놀란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수아도 마찬가지였다. 유민도 김민주도 무엇에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놀란 표정이었다.


이윤은 수아를 지그시 바라 보았다. 


“저희 할머니께서 이 자리에 참석 하지 못해 아쉽다 말씀하셨어요. 창립 30주년 무척 축하드린다고 전해 달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빌어 발표 하고자 하는 게 있는데 저는 그걸 전하러 왔습니다. …할머니의 지분 30%를.. 전 회장님의 따님 임수야 양에게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임수아 양 이리로 올라 오세요”


“뭐?!!!!” 

김기두가 옆에서 놀라 소리를 쳤다. 


놀라워 한건 그 말뿐만 아니었다. 이윤은 정말로 봉투를 하나 들고 왔다. 정말로 전달식까지 할 모양이었기 때문이다.


수아는 영문을 몰라 당황한 기색이었다. 하지만 유민은 상황 판단을 빠르게 하고 수아를 끌고 단상으로 올라 갔다. 


“임수아양, 여기 이 안에 지분에 대한 서류 들어있습니다. “


“네..?? 나..난.. 그쪽 할머니를 전혀 모르는데?”


“할머니께서 널 아셔”


“나를?!”


이윤이 다정하게 싱긋 수아에게 웃어 보였다.


***


2014.8월 제주도 해안가


찰랑거리는 파도가 바위를 부딪혀 서늘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수아가 탓었던 요트는 이내 물 속으로 다 가라앉았고 

그 흔적도 보이지 않았다.


해안가까지 흘려온 수아는 온몸이 흠뻑젖어 있었고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 갈 것 같았다.

선문대할망은 해변으로 쓸려온 수아를 내려다 보았다.


"이것이 어찌 이리 숨이 붙어 있는 건가.."

할망은 수아를 이리 저리 훓어 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지었다.


"윤이 짓이로구나."


저 멀리 바다 속으로 요트 하나가 잠겨 버린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찌 이 바다에는 예나 지금이나 조용한 날이 없을 꼬.."


그리고는 수아를 다시금 내려다 보았다. 숨이 까딱까딱 넘어가면서도 고운 손으로 목에 있는 목걸이를 꼭 쥐고 있었다. 


"이것을 살려야겠구나.."


할망은 그대로 수아를 부웅 하고 바람을 이용해 공중에 뜨게 했다. 

순간 수아는 큰 숨을 턱 하고 쉬더니 입에서 물을 내 뿜었다. 


"되었다."


할망의 옆에 있던 돌하르방이 그득그득 소리를 내었다.


"그럼 어쩌겠소. 윤이가 저지른 짓이니 뒷수습은 내가 해야 하지 않겠소?"


또다시 하르방이 앞으로 쿵 하고 뛰었다.


"그렇지. 나도알아. 이 아이는 여기서 죽었어야 하는 목숨인데.이렇게 목숨 줄이 붙어 있는 것을 신도 어쩌지 못할 것이야"


할망은 그대로 수아를 바람에 맡겨 안고는 집으로 데려갔다.


수아는 이틀이 지나도록 정신이 돌아오지 않았고 열이 펄펄 끓었다. 중간 중간 꿈을 꾸는 것인지 알수 없는 말을 중얼 거렸고 

어떨때는 악 하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할망은 수아의 옆에서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그녀를 간호 해주었다. 

한라산 기슭의 약수물을 떠다가 물수건을 만들어 이마에 올려주기도 하고 약초를 캐다 잘글잘근 빻아

그녀의 입에 넣어 주기도 했다. 


곱디 고운 그 얼굴은 처음에는 죽기 직전의 시체 마냥 앙상 했다가 점점 그 혈색이 돌아 오고 있었다.


"그래. 큰일을 겪었으니 조금 쉬어도 되지 않겠니? 조금만 더 잠을 자고 일어 나거라. 내 기꺼이 수발은 들어 주겠느니"


"으윽.."


누워 있는 수아의 얼굴에 눈물한방울이 떨어 졌다.


"몹쓸 꿈을 꾸고 있구나. 꿈이니라. 꿈이라 생각하거라. 니 운명은 이제 많이 달라 질 것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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