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그룹 호텔 오너 임미숙의 집, 화려하게 그지 없는 샹그릴라가 큰 거실에 달려 있다.
그 앞의 커다란 소파에 앉아 임미숙은 우아한 자세로 차를 마시고 있었다.
“흠.. 향이 좋네. 오늘 차 잘 내려졌네.”
옆에 있던 이 집사가 고개를 숙였다가 뒤돌아 다시 키친으로 돌아갔다.
그때,
유민이 문을 탁하고 열어 제치며 거실로 나와 엄마 임미숙에게 소리를 크게 질렀다.
“ 엄마 또 학교에다 전화했지!? 아 정말 왜 그래 나 창피하게!!“
“ 앗! 깜짝이야!”
“제 발 좀…적당히해..”
“ 알게 됬구나? 근데 이유민, 너 그게 뭐가 창피하다고 그래? 난 엄마로서 내 아들 지키는 할 일을 했을 뿐이야.“
“하..내 공부에 방해된다고 다른 학교 강전 시키는 게 말이되? 아무리 엄마가 학교 이사장이라 해도 그건 선을 넘는 거라고!“
“뭐? 선을 넘어? 너 엄마한테 말 다했니??”
수아의 고모 임미숙은 아들의 일이라면 뭐든 발벗고 나섰다. 청송고등학교의 이사장 이기도 했던 그녀는 뭐든 도를 넘어서거나 선을 넘었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유민은 엄마 보다 어쩐지 더 성숙한 인격을 가지며 자라났다.
청송고등학교 2학년으로 단정한 외모와 배려 깊은 행동으로 반장을 맡고 있었으며 아이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엄마가 갑질하는 이사장이라는 사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민의 착한 성정 덕분에 아이들은 그를 싫어하지 않았다.
“제발 좀 적당히 해. 창피 해서 얼굴을 못 들고 다니겠다고”
“너 엄마한테 말 버릇이 그게 뭐야!”
뒤로는 유민의 동생 유진이가 가방을 슥 들쳐매고 보는 둥 마는 둥 하고 지나갔다
“학교 다녀올게요.”
“어어! 그래 유진아 조심히 다녀와~”
임미숙은 다시 고슴도치 엄마의 모습으로 상냥하게 유진을 배웅했다.
그런 유민은 엄마 임미숙이 한심하기 그지 없다 생각했다.
두 아들사이에서 차별아닌 차별도 그렇지만 삐뚤어진 모성애가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 아 그리고 ! 수아 누나 교복 다시 사줘. 헤져서 입고 다니는 거 보기 싫으니까 격 떨어져!”
“ 어머 걔는 왜 청승맞게 그러고 다닌다니 창피하게 에잇씨! 아줌마 당장 청송교 여자교복 하나 주문해 어서!
임미숙이 집사 아주머니에게 지시를 내렸다
유민은 그 집에서 유일하게 수아를 챙기는 사람이었다. 수아가 초상을 당하고 일년 뒤, 자신의 집으로 들어와 살게 되었을 때는 사실 자신의 자리를 뺏길까 내심 경계하기도 했다.
하지만 같이 커가면서 수아의 진면모를 보고 자랐고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해야 하는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수아의 공부실력이 도움이 되기도 했고 함께 수학문제를 풀 때가 재미있었다.
독서 취향도 비슷해서 주말에 함께 도서관을 몰래 가기도 했다. 임미숙이 알면 크게 난리를 칠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엄마에게는 수아를 챙기는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썼는데 이유는 더 미움을 받을 까봐 나름 머리를 굴린 것이었다
유민의 아래로 남동생 유진이는 무엇 때문인지 수아를 싫어했다. 남동생 또한 청송고 1학년에 다니고 있었다.
수아의 입장에서 봤을 때 수아는 고모에게는 반감이 아주 많이 있었지만 유민이 하고는 그래도 잘 지내는 편이었다. 의외로 죽이 잘 맞는 구석이 있기도 했고..
유민이 은근히 잘 챙겨 주기도 했다. 물론 고모 앞에서는 그런 티를 절대 못 낸 다는 것을 알았고 수아는 이제 그런 것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수아는 아침부터 소란 스러운 소리에 눈치를 쓱 보고 조심히 집 밖을 나서고 있었다.
그때 탁! 누군가 가방을 잡아 끌었다.
“헛! 뭐야!”
”누나 반에 새로 온 전학생 있다며?“
“와~~ 벌써 소문이 2학년 반에도 퍼진 거야?”
“좁은 고등학교 에서 뭔들 모를까”
“그건 그래~ 아침부터 고모랑 대판하더니 무슨 일인거야?
“하…임미숙씨 하는 일이 뭐 갑질 밖에 더있어?”
“흠..널 사랑하셔서 그런거야..”
“사랑 안했음 좋겠다. 제발”
“치..”
유민은 수아의 얼굴빛이 흐려지는 것을 보고 화제를 돌렸다
.
“그래서 어떤데?”
“어떻긴?뭐가”
“아니 그 전학생~ 뭐 외모라던가.. 뭐 되게 잘생겼다는 소문은 있던데 난 안 봐서 모르지만”
“뭐. 생기긴 했지. 사실 그 보다 약간.. 어나 더 레벨?“
“누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니까 완전 어색해”
“어 그래 ”
“응”
“암튼 뭐, 나랑은 상관없는 뭐...”
희주가 그 뒤를 쫒아 뛰어왔다.
“하악하악…왜 이렇게 빠른 건데!!! “
“어?! 박희주 너 오늘 자전거는 어디다 두고 뛰어 오는 거야?”
희주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보육원에서 수아 집 옆으로 지나 학교를 간다.
“아! 펑크 났어.어떤 미친놈이 내 바퀴에다가 못을 박아 놨지 뭐야!”
희주는 씩씩대며 화를 냈다.
희주가 달려오니 유민이가 갑자기 얼굴이 뻘게 져서 뒷걸음을 쳤다.
사실은 유민이는 중학교 때부터 희주를 짝사랑 하고 있었다.
그런 유민이의 마음을 희주는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혼자 애쓸 유민이를 위해 도와 줄까 했지만 스스로 해결한다는 말만 했다.
유민이는 부끄러워하며 손을 들어 인사를 했고 희주는 대충 인사를 받아 주었다.
‘어떻게 고모 한테서 어떻게 저렇게 귀여운 아들이 태어났을까..?’
차갑고 포악하고 지 멋대로인 성격의 고모에 비해서 유민이는 매우 사랑스러운 아이 였다.
그래서 혼자 생각 하길 혹시 밖에서 데려온 아이가 아닐 까 하는 의심이 들기도 했다는 건 수아 혼자만의 비밀이었다.
“동생을 바라 보는 눈빛이 아주 사랑스럽네?”
어느새 이윤이 뒤에서 말을 걸었다.
순간 너무 놀라 뒤로 자빠질 뻔 한 걸 이윤이 잡아 주었다.
”악!“
“헛.. 위험할 뻔..”
그 모습을 희주와 유민이 쳐다보았다.
”헐…존잘“
얼빠인 희주가 이윤을 보고 금새 푹 빠진 얼굴을 하고 빤히 바라 보았다.
그 것을 보는 유민이는 눈빛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너 뭐야? 갑자기 어디서 튀어 나온 거야?!”
“나? 아까부터 뒤에서 걸어 가고 있었는데 너가 모른 거지? 나 이 동네 사는 거 잊었어?“
이윤은 뻔뻔한 얼굴을 하고 재미 있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 누구야?!”
희주가 물어 보지 않을리 없었다.
“아. 우리 반 전학생”
“안녕 ” 자상한 얼굴로 희주를 보며 인사했다.
그 바람에 희주는 더 넋이 나가버렸다.
“… 우리…학교 끝나고 떡볶이 먹으러 가자 언니! 야 이유민 너도 가자! 오빠도 갈거죠?! 같이가요 네?!”
희주가 또 오지랖을 부려 이윤을 끌어 당겼다.
유민은 희주의 오지랖 덕분에 함께 하게 되었지만 그 마저도 좋은 표정이었다.
“여기 학교 앞 분식집 떡볶이 진짜 끝내준단 말이에요!”
“야 희주야 갑자기 왠 떡볶이야?”
“아 왜 누나 가자 내가 살께 응?”
갑자기 유민이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거들었다. 희주에게 맛있는 걸 사주고 싶은 기회만 노리고 있던 참이었으니.
“오키! 이유민 너가 쏘는거야~ 가자가자~”
***
학교가 끝나고 넷은 정문 앞에서 만나 나란히 분식 집으로 향했다.
어색하고 뻘쭘했지만 오랜만에 우르르 다같이 분식으로 가는 모양새가 나쁘진 않다고 느낀 수아였다.
<돌고래 분식>
“여긴 이름이 왜이래? 하고 많은 동물 중에 왜 돌고래야?”
이윤이 분식집간판을 보자 마자 인상을 찌푸리며 물었다.
“아~ 여기 이모 아들이 돌고래 조련사라서 그래요~ 그쵸 이모~!”
희주는 호기롭게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마치 이곳에 파는 모든 음식을 다 먹을 기세 로 말이다.
“하모~ 우리 아들이 부산에서 돌고래 조련사 였다이가~내 그래서 돌고래를 좋아해가~지었다이가~ 오늘은 뉴 페이스도 왔네?”
이모가 부산 사투리로 구수하게 대답하였다.
이윤은 뭔가 언짢은 표정이었지만 주위를 휙 둘러보고 흥미롭다는 듯 하나하나 살피기 시작했다.
“이모~ 우선 우리 떡순 세트랑~ 아! 상추튀김! 그거 있죠?”
“있지~~ 몇 인분 주면 되긋노?”
“언니 우리 많이 먹자 응? 유민이가 쏜다잖아 ”
“누나 많이 먹어. 희주야.너도 많이 먹어 요새 살빠진 것같아. 너 다이어트 그딴 거 하지마”
“뭔 소리야~ 나 요새 살쪄서 엄청 짜증나는데.. 하지만!! 오늘은 내가 먹어주겠다 으하하~”
둘의 대화는 끼어 들 틈이 없을 정도로 정신 사나웠다.
전라도가 고향인 수아 아버지가 좋아했던 상추튀김을 학교 앞 분식집에서 발견 했을 때 처음엔 너무 반가 웠다.
그리고 나서는 가족들이 생각 날때 분식집에서 상추 튀김을 항상 시켜 먹었다. 그 습관을 희주는 기억 하고 있었던 거다.
“요즘의 인간들은 참 희안한 걸 먹는 구나…”
이윤이 나즈막히 중얼 거렸지만 수아는 그걸 놓치지 않고 들었다.
‘요즘 인간 이라고? 희안 하게 말하는 건 너거든‘
음식이 차려지고 모든게 먹음직 스러웠다.
가끔은 이렇게 모여 군것질을 하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전학생 이윤이 그런 자리에 함께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희주는 떡볶이와 순대를 아주 야무 지게 먹기 시작했고 유민이는 그런 희주의 모습을 사랑스럽다는 듯 본격적으로 그녀를 감상했다.
이윤은 그게 재미있는지 음식에는 손도 안대고 그걸 보기만 했다.
“넌 왜 안 먹어?”
궁금한 수아가 먼저 물었다.
“아.난 별로”
‘뭐야.. 얼마나 잘 살길래 이런 서민 음식은 입도 안 댄다는 거야 뭐야?’
“한번 먹어봐 이집 맛집이야”
“오빠~ 먹어봐요~ 내가 앙~ 해주까요?”
애교 섞인 희주의 말에 이윤은 풋 하고 웃었고 유민은 그런 모습이 못마땅해 보였다.
“야 박희주 너나 먹어 괜한 사람 신경쓰지 말고! ”
평소답지 않게 유민은 강력하게 희주의 애교를 말렸고 이내 희주는 삐죽거리며 상추 튀김을 입에 앙 하고 넣어 먹었다.
“넌 이런 음식 별로야?”
이윤에게 수아가 물었다.
“아..별로라기 보다 먹을 수가 없어”
“아..매운거 못 먹구나.. 그럼 이건? 상추튀김 매운거 아닌데 ,이거 그냥 오징어 튀김을 이렇게 상추에 싸서 먹는거야 어때? 간단하지?“
애써 먹는 방법까지 설명 해가며 하나라도 먹길 바랬다.아니면 여기까지 따라온 이유가 없지않나
“아 응..알았어.. 먹어볼게.”
이윤은 어렵게 튀김을 하나 집어 들어 입에 넣었다. 잠깐 윽 하는 신음같은 소리를 냈지만 이내 꿀꺽 하고 삼켰다.
수아는 이내 만족한다는 듯한표정을 지었다
“이제 만족해? 내가 안먹어서 마음이 불편했어?”
“응 매우”
“훗..알았어.”
이윤은 그 후로 떡볶이 이외에 것들을 한 두개 정도 더 먹었다.
누가 봐도 억지로 먹는 모습이었지만 왜 그렇게 노력을 하는 지는 알수가 없었다.
‘전학을 와서 그냥 친구를 사귀고 싶어서 그런 건가? 그렇다면…. 난 친구로서는 별로 일텐데…’
”왜 그렇게 생각해?“
“응 뭐가?!”
수아는 속으로 생각 한 말이었는데 이윤이 그것을 듣고 묻는 것처럼 말했다.
“너 생각하는 거 얼굴에 다 티나. 내가 여기 있는 거 불편 한거지?“
“아..아 그런게 아니고”
“어쩌지? 나 계속 너 옆에 있을 예정인데”
“응?!”
순간 정신없이 먹고있던 희주가 숟가락을 딱 하고 내려 놓았다.
얼마간의 정적이 흘렀고 유민은 수아의 눈치를 쓱 보았다.
당황할 때 나오는 그 표정이었다.
안 그래도 큰 눈은 더 똥그래지고 미간을 살짝 지푸리며 멍하니 이윤을 쳐다 보았다.
정적을 깬 건 다름아닌 희주였다.
“헐~ 대박…오빠 지금 고..백 한거에요?“
“수아 니 곁에 있을거야”
‘꿀꺽..’
마른 침을 삼키는 수아였다.
‘내..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지금?’
‘임수아 걱정마. 난 네 옆에서 니가 너를 구해준 남자를 찾고 인연이 이어지는 것을 도울거야. 그래야.. 나도 살게 되니까. ’
이윤의 뜬금없는 선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