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크게 한 번 웃고 넘기겠다

온천 행차에 동행한 관원들의 민폐 묵인

by 조병인

임금이 온양으로 온천욕을 다녀오기로 하고 충청감사와 승정원의 승지들에게 절대로 민폐를 끼치지 말라고 당부하였다(세종 25년 1월 14일, 2월 28일). 얼마 뒤에 임금이 왕비ㆍ왕세자ㆍ대군을 비롯한 여러 왕자와 의정부ㆍ육조의 관리들과 대간 등을 거느리고 온양에 거둥해 이십일 정도 목욕을 즐겼다.


그런데 환궁 채비를 하던 중에, 행차를 따라온 신하들 가운데 다수가 충청감사 이익박에게 서찰로 물품을 요구해 받아서 챙긴 사살이 탄로났다. 익박이 부탁받은 대로 모두 들어주었는데, 우연찮은 경로를 통해 그 서찰들이 임금의 손에 들어가 소동이 생긴 것이다(세종 25년 3월 25일).


임금이 서찰들을 읽어보니, 승정원의 승지들이 특히 많은 물품을 받았다. 그 외에 행차에 따라온 대신과 환관들을 비롯하여 반감·사약·별감에 이르기까지 연루되지 않은 자가 거의 없었다. 임금이 짐작으로 익박에게 서찰을 보내지 않고 익박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사람이 더 있을 것으로 여기고 승정원에 진상조사를 지시하였다.


그런데 도승지 조서강이 임금에게 조사 결과를 아뢰면서, 더 이상 자세하게 캐지 말기를 청했다. 익박이 누구에게 무엇을 주었다는 증거가 없어서 억지로 물을 수가 없다고 하였다. 임금이 익박의 충청감사 직책을 거두고 의금부 제조와 사헌부 장령을 시켜서 익박을 문초하게 할 뜻을 밝히니, 서강을 비롯한 여러 명의 대신이 자진하여 익박으로부터 물품을 받은 사실을 실토하며 조사팀에서 자신을 빼주기를 청했다.


임금이 스스로 자백한 사람들을 점잖게 위로하더니, 충청감사로 유의손을 앉히고 병조 판서 정연과 장령 이백첨으로 하여금 익박에게 물품을 청한 사람들을 조사하게 하였다. 정연이 난감한 표정으로 자신의 종들이 익박으로부터 쌀 한 섬을 받은 사실을 고백하면서 자신을 조사팀에서 빼주기를 청했다. 임금이 정연을 타일러서 사헌부 장령과 함께 국문에 참여하게 하였다.


조서강·유승손·김조 등이 임금에게, 자신들이 무식하고 미련하여 실무자들이 쌀과 콩을 받는 것을 관례로 여기고 즉시 물리치지 못했다며, 직책에서 물러나 처분을 기다리게 해 주기를 청했다. 임금이 말하기를, "내 마음을 잘 아는 너희들도 감사에게 물품을 청해서 받았으니, 환관들이 받은 것은 따질 것도 없다."라고 하였는데, 속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던 모양이다.


고위 관료뿐만 아니라 환관에서부터 궁중의 음식·열쇠·행사를 담당하는 자들에 이르기까지 관여되지 않은 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드러나 모두 엄히 처벌할 엄두가 안 났던지, 승지들을 모두 불러서 “처음에 신하들이 법을 어기고 물품을 받았다는 말을 듣고 몹시 놀랐는데,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고 하니 내가 한 번 웃고 말겠다.”라고 안심시켰다(세종 25년 3월 26일).


하지만 속으로는 대신들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던지, 하루 뒤에 정연과 유의손을 부르더니, 성격이 차분하고 마음이 소심한 조서강 등이 감사가 주는 쌀과 콩을 거절하지 못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정연이 지응사(보급 책임자)로서 그런 일을 막지 못한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세종 25년 3월 27일).


하지만 충청감사에게 물품을 청해서 받은 관원들을 처벌할 생각은 없었던지, 다음 날 명을 내려, 관원들에게 물품을 준 전 충청감사 이익박과 그의 물품조달을 도운 충청감영의 도사 강이는 물론, 그들로부터 물품 받은 사람들도 모두 석방하고, 익박의 부하들도 수사하지 말게 하였다.


조서강과 이승손 등이 어전에 나아가, 임금의 뜻을 알면서도 무식하고 미련해서 관례로만 생각하고 물리칠 생각을 하지 못한 과오를 뉘우치니, 임금이 너그럽게 받아넘겼다(세종 25년 3월 28일).


그런데 다음날 대간과 의금부가 거의 동시에 임금을 겨냥해 공세을 펼쳤다. 먼저 대간이, 물품을 준 자와 받은 자들뿐만 아니라, 중간에서 다리 역할을 한 자들도 엄히 처벌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개국 이래로 다섯 승지를 한꺼번에 파면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라고 응수하였다(세종 25년 3월 29일).


다음날 의금부에서 익박이 조정의 관원들에게 보내준 쌀 60섬과 콩 56섬이 각 고을의 문서에 기록된 것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라며 사용하고 남은 미곡을 모두 회수하기를 청하니, 임금이 듣고 나서, 말이 사실과 다르다며 따르지 않았다(세종 25년 3월 30일).


며칠 뒤에 온양을 출발하여 사흘 만에 대궐에 도착하니, 하루 뒤에 사헌 지평 이종겸이 어전에 나와서 온양에서 발각된 관리들의 물품 수수 건을 다시 들추며, 진상을 낱낱이 파헤쳐서 연루자들을 엄하게 응징하기를 청했다(세종 25년 4월 7일).


임금이 듣고 나더니, 관리들이 감사에게 물품을 청한 것도, 감사가 관리들에게 물품을 준 것도, 모두 전례를 따른 것이라 죄를 내릴 일이 아니라며 일축하였다. 아울러서, "물품을 받은 병조 당상과 승지 다섯 명을 모두 처벌하려면 조정의 관원을 모두 바꿔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국가의 수치가 아니겠느냐."라고 반문하였다.


종겸이 물러서지 않고 임금도 입장을 바꾸지 아니하자 사헌부와 사간원이 가세해 각기 독자적으로 혹은 합동으로 갖가지 명분과 이유를 내세워 비슷한 상소를 반복해서 올렸다. 임금도 사실상 똑같은 답변을 반복하는 소모전이 십여 일 정도 이어지다가 대간의 상소가 갑자기 ‘섭정 불가’로 바뀌었다.


임금이 본인의 지병 악화와 장기 집권에 따른 피로를 내세워, 관리 임용, 형벌 재가, 군사 이동 등을 제외한 나머지 정사를 세자에게 넘기겠다고 폭탄 선언을 하였기 때문이었다(세종 25년 4월 12일, 14일, 16일,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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