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천상으로 가는 마차>

영민은 잠옷위에 코트만 걸치고 그대로 오피스텔을 뛰쳐나가 장위동으로

by 박순영

영민은 수인과의 영혼결혼식을 둘이 함께 다니던 성당에서 치르기로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첫 취직 인터뷰를 가던길에 달려오는 과속 차량에 치어 그 자리에서 명을 달리한 수인과 드디어 결합하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여자를 전혀 안만난게 아닌데도 영민의 마음은 늘 헛헛했다. 그 대상이 수인이었더라면, 하는 한결같은 아쉬움에 그는 나이 서른을 갓 넘긴 즈음 마침내 수인과 영혼결합을 하기로 한 것이다.

영민과 수인은 대학 방송국 선후배사이로 영민은 pd, 수인은 아나운서였다. 그렇게 시작된 둘의 인연은 서로간에 별다른 언급이 없어도 대학졸업과 동시에 결혼하는 것으로 귀결됐다. 그렇게 2,3년 회사경력을 쌓은 뒤 둘은 함께 미국 유학을 계획했다. 영민은 전공인 무역학을, 수인은 디자인 공부를 더 하기로 한 것이다.

그런 수인이 졸업후 첫 면접에 가다 그만 사고를 당해 그 자리에서 죽고 만 것이다. 경찰은 수인의 폰으로 영민에게 전화해 최근 통화자라서 연락했다며 현재 수인이 위중하니 빨리 대학 병원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막 토탈 리빙 브랜드 업체에 갓 입사한 영민은 그 내용을 전해듣고 상부에 보고도 안한채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려갔고, 거기서 이미 하얀 시트가 머리까지 덮여있는 수인을 보게 된다.

경찰은 그가 흥분해서 오는 도중 사고라도 날까싶어 사망한 수인을 ‘위독’하다고 했다고 설명한다.

그렇게 그녀의 장례를 치르고 영민은 자기도 따라 죽겠노라 속으로 다짐했다. 하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고 여기저기 약국에서 타온 수면제를 입안 가득 털어넣었다가도 다 토해 내곤 했다.그 무엇이 영민을 이승에 붙들고 있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않은채 시간만 무심히 흐르고 영민은 다니던 리빙 업체를 사직하고 학원 수강을 마친 뒤 인터넷 서점 웹 디자이너로 옮겨갔다.

홈페이지를 쉽고 트렌디하게 꾸미고 색을 입히고 가끔은 홍보용 애니메이션도 만드는 그 일을 하면서 영민은 수인이 살았더라면 이런 일이 딱 어울릴거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러는 동안 한두여자가 영민에게 다가왔고 영민도 육신의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밤을 함께 보낸 일도 있지만 돌아서면 늘 수인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만 남았다. 이승 어디에도 없는 수인을 그렇게 그리워하던 그는 마침내 본가에 수인과의 영혼결혼식 이야기를 꺼내자 친자식처럼 수인을 아끼던 영민의 부모는 불같이 화를 냈다.

이제 서른인 놈이 벌써 인생을 단념하냐면서 부친은 여간 마땅치 않아 했다.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그의 모친역시 잔뜩 불안하고 황망한 표정으로 영민을 피해 방에서 나가버렸다. 하지만 영민은 이미 마음을 굳혔고 그 어떤 다른 여자를 만나 설령 결혼에 이른다 해도 수인의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대학시절 둘의 사이를 알던 친한 친구 몇몇에게 둘의 결혼식 장소인 성당과 날짜와 시간을 문자로 전송했다.


문자를 받은 친구들의 반응 역시 영민의 부모와 별반 다르지 않았지만 그래도 나중엔 그의 편을 들어주고 꼭 참석하겠노라 약속했다.

그렇게 수인과의 결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비로소 영민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살 수 있었다.

어느날 퇴근후 영민은 보석샵에 들러 커플링을 샀고 예식날 입을 턱시도까지 맞췄다. 그렇게 턱시도를 맞추고 황급히 회사로 돌아가던 길에 신호등을 무시하고 차도로 뛰어드는 한 여자를 보고 영민은 급브레이크를 밟아야했고 여자가 저만치 나동그라지는게 보인다. 영민은 혼비백산해 차에서 내렸고 여자는 , 다치지 않았어요 괜찮아요,라며 절뚝이며 일어선다. 병원에 가자는 영민의 말에 여자는 안다쳤어요,만 되풀이하고는 주위에 흩어진 가방이며 서류꾸러미를 주섬섬 주워들고 남은 길을 마저 건넌다. 영민은 황급히 자신의 명함을 내밀며 , 꼭 연락 달라고 한다.


그러나 그녀로부터는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어 영민은 별일 없나보다, 하면서도 내내 찜찜했다. 그런데 퇴근 무렵, 그녀에게서 마침내 전화가 걸려온다. 저....하는데 영민은 마치 오래 기다린 전화처럼 상대를 알아낸다. 괜찮습니까? 숨이 턱 끝에 차서 물어오는 영민의 말에 여자는 괜찮은데...다리만 조금...하며 말끝을 흐린다.

그녀가 통증을 호소하는 왼쪽 다리는 검사결과 큰 이상은 없었고 단지 차와 부딪치는 순간 근육이 놀라고 인대가 늘어나 그런거 같다는 의사의 말에 영민은 안도하면서도 뒤탈이 날까 두려워 그녀에게 전신 사진을 찍으라고 권유한다. 그러다 여태 그녀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생각에 먼저 자기이름을 밝히자 상대는 유정인이라고 대답한다. 수인, 정인...묘한 인연이라고 영민은 생각한다.

다리 촬영비와 물료치료비를 선결제하고 난 뒤 영민은 다른곳도 이상하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한다. 정인은 알았다며, 사실은 신호등을 무시하고 건넌 자신의 잘못인데...라며 자책한다. 지금 그게 중요하지 않잫아요,라며 영민은 그녀를 나무란다. 그날은 꼭 오프라인 은행거래를 요구하는 회사 대표의 심부름을 가던 길이었노라 정인은 말한다. 은행 마감시간이 다 돼 황급히 가던 길이라고...

정인은 이제 연락할 일 없을거라며 헤어지는 인사를 건네려고 한다. 하지만 영민은 절뚝이는 그녀가 대중교통을 이용해 귀가할 생각을 하니 안쓰러워 집까지 태워다주겠다고 한다. 정인은 극구 사양하지만 영민은 결국 그녀를 경차 조수석에 태우고 정인의 집이 있다는 장위동으로 향한다. 회사엔 1시간 정도 늦게 들어간다고 연락했으니 별일은 없으리라...

그렇게 그녀를 내려준 곳은 낡은 교회가 서 있는 골목 초입이다. 더 이상은 차가 들어갈수 없는 좁은골목이라 영민은 내릴 준비를 하는 정인을 부춖이라도 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번에도 정인은 그럴 핖요없다고 하지만, 영민은 그녀를 부축해 재건축으로 빈집이 수두룩한 그 골목을 걸어간다. 다 왔어요,라며 정인이 멈춰선곳은 칠이 다 벗겨진 녹슨 철대문 앞이었고, 할머니랑 살아요, 라며 그녀가 혼잣말처럼 내뱉는다.

이런곳에 연로한 조모와 산다면 정인의 삶도 여간 궁핍한게 아닐거라는 생각에 영민은 지갑에 들어있는 지폐를 모두 꺼내 그녀의 손에 쥐어준다. 뭐죠? 정인은 황망하고 발끈해한다. 나, 나는...앞으로 치료도 해야 하고...그냥...영민은 방금 자기가 한 짓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모멸을 안겨주었는지 뒤늦게 깨닫는다. 돈좀 있으세요? 그래서 내가 우스워요? 라며 정인은 다시 영민의 손에 그 지폐들을 쥐어주고 철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버린다. 그렇게 녹색 철대문은 영민의 앞에서 무심히 닫혀버린다.

그날 이후로 영민은 일을 하면서도 온통 정인 생각에 빠져든다. 그녀 손에 돈을 쥐어준 자신의 행동을 어떻게 이해시켜야 했을까, 하면서 이미 흘러간 시간을 되돌리려고 수도없이 노력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리고는 일주일후 영민은 예의 그 철대문을 다시 찾는다. 퇴근 무렵이니 조금 있음 정인이 올거라는 기대를 안고....

그렇게 담배 두어대를 피우다 보니, 저만치서 어둠이 내리는 골목을 하이힐 소리를 내며 다가오는 여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정인이다...

정인은 단번에 영민을 기억해내고는 불쾌한 얼굴이 돼서 그를 쏘아본다. 그러더니 한마디 말도 없이 그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문을 열고 들어가려 한다. 그런 그를 영민이 붙들고, 그날은 내가 잘못했어요. 나쁜 마음은 아니었는데...라고 하자, 정인이 물끄러미 영민을 쳐다본다.

그렇게 둘은 골목을 나와 대로변의 커피 체인점으로 들어간다. 정인은 팔순 조모와 산다고 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조모 밑에서 컸는데 그 조모가 얼마전부터 치매증세를 보여 걱정이라고 털어놓는다. 치매라는 말에 영민은 대듬, 대소변은?부터 묻는다. 다들 그렇게 물어요 치매라면 대소변은 가리냐고. 그게 문제가 아니라며, 자기조차 못알아볼때가 많고 어느날은 퇴근후 집에 가보니 집안이 온통 물바다였던 적도 있노라 대답한다.




그래서 치매를 무서운 병이라고 하는구나, 새삼 영민은 깨닫는다. 순간 영민은 왠지 정인에게 수인의 이야기를 하고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이유는 모르지만 그녀에겐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그날밤 까페에서 그는 수인의 일을 이야기한다. 아무말없이 듣고 있던 정인은 ‘영혼결혼식’이라는 말을 듣자 낯빛이 달라진다. 진짜요? 하고 그녀가 묻는거 같다... 많이 , 정말 많이 사랑하셨군요,라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이후로 영민은 퇴근하면 자기도 모르고 정인이 사는 장위동을 향해 차를 모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제일 먼저 수인에 대한 미안함과 죄스러움이 밀려들었고 자신이 정말 고인이 된 수인을 평생의 반려자로 생각하는지를 자문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친구들에게 다 연락을 해놓았고 성당예약까지 잡아놨고 이젠 물릴 방법이 없고 또 그러고 싶지도 않다. 그러면서도 가랑비에 옷젖듯 자꾸만 스며드는 정인의 존재는 뭘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그날밤도 뒤척이는데 자정이 다 돼 전화벨이 울린다. 누구지? 하고 발신번호를 보면 낯선 번호다. 그래도 휴대폰 번호 형식이라 그는 수신버튼을 눌렀고 상대는 정인이었다. 순간, 여태 난 정인의 전화번호조차 모르고 있구나,하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할머니가...하며 전화너머 정인이 울먹거린다. 정인의 조모가 갑자기 호흡곤란을 일으켰다는 말에 영민은 잠옷위에 코트만 걸치고 그대로 오피스텔을 뛰쳐나가 장위동으로 향한다. 도착했을땐 이미 집앞에 앰뷸런스가 와있고 정인의 조모로 추정되는 한 노파가 들것에 실린채 산소마스크를 하고 있는게 눈에 들어온다. 평소 천식을 앓으셨어요...라며 옆에서 발을 구르며 울먹이는 정인의 어깨를 영민은 가만히 안아준다.

다행히 정인의 조모는 그날밤을 무사히 넘기고 다음날 퇴원했지만 갈수록 치매가 심해져 결국은 요양병원을 알아봐야했고 그 일을 영민은 당연하단 듯이 정인을 도와 함께 했다. 그리고는 조모를 병원에 넣고 돌아오며 정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보였고 그러다 지쳤는지 조수석에서 잠들었다. 그녀의 하얀손...하얗고 긴 손가락을 영민은 만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그때 대학동창 희준의 전화가 걸려온다. 내일 모레지? 하며 희준은 수인과 영민의 결혼일정을 확인한다. 순간, 영민은 뭐라 할말이 없어, 왜 대답이 없어?라는 희준의 질문에, 나중에...내가 전화할게,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는다. 그리고 조수석을 보자 통화소리에 잠을 깼는지 정인이 고개를 뒤척인다. 더자게 해야 한다 이 여자를...하며 영민은 감속하며 차를 부드럽게 몰아간다.

자기안에 일어난 변화에, 정인을 안고싶다는 욕망에 영민은 어떻게 해야 하나를 놓고 수도없이 고민에 들어간다. 수인과의 영혼결혼식을 취소하면 세상은 분명 그를 손가락질 하리라는것도 예상한다. 그 냉대와 조롱은 평생을 갈수도 있다. 어차피 한번 먹은 마음, 그대로 안고 가자,라고 그는 다짐한다. 그리고는 아직도 폰에 담겨있는 수인의 해맑은 모습들을 들여다본다.


안녕하세요, 저 유정인이예요,라며 납골당 수인의 영정에 정인은 반듯하게 인사를 한다. 그 모습을 저만치서 지켜보는 영민은 수인과 짤막한 대화를 나눈다. 날 이해하라고는 하지 않을게. 하지만 언젠가 내가 너 있는곳에 가면 그땐 꼭 다시 만나.

keyword
이전 02화소설 <쿨한 이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