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마흔, 신도시 외곽에 북까페 형식의 독립서점이 과연 성공할수 있을까, 성공까진 아니어도 먹고살수는 있을까, 정원은 수도없이 고민했다. 요즘 점점 책을 안 보는 추세라는데...
그러나 간간이 들어오던 프리랜서 편집일도 거의 끊어지고 출판사 내부조차 구조조정에 들어가 계속 그 일에 기대를 걸수도 없었다.
결국 정원은 안되면 할 수 없지,라는 반은 포기하는 심정으로 저렴한 가게 월세를 찾아 발품을 팔았고 결국 그녀나이 만 40이 되던날 작은 독립서점을 열었다.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여고, 대학동창들이 하나둘씩 개업축하 화분을 보내와 까페앞은 제법 그럴듯한 풍경을 연출했다.
아늑해요 사장님...
첫 손님이었던 대학생으로 보이는 커플이 들어오면서 내뱉은 말이다..
고맙습니다.
정원은 그들과 인사를 나누고 오래 있어도 되니 맘 편히 있다 가라고 말했다 그들은 까페 라떼 두잔을 시켜놓고 두어시간 책을 보다 이야기하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또 올게요,하면서 까페를 나갔다.
역시 책은 사지 않는구나..
정원은 조금은 야속한 기분이 들었지만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고 첫손님을 맞은거라 거기에 의미를 두고자 하였다.
바리스타라는게 단순히 커피를 내리는 일이려니, 했지만 좋은 원두를 고르고 로스팅까지 익혀야 한다는걸 알 리 없던 정원은 처음 학원에 등록해서 막막하기만 했다. 어릴 때 펄펄 끓는 물에 발을 데인터라 뜨거운것에 대한 원초적인 두려움이 있던 그녀는 과연 내가 해낼수 있을까, 수십번을 망설였지만 생존이 걸린 일이라 마음을 다잡고 학원 등록을 했다.
듣도 보도 못한 커피학 개론이라는 필기시험 과목을 접하며, 어느 세계든 어느 직업이든 쉬운게 없고 그 안은 무궁무진함을 새삼 깨달았다. 그렇게 정원은 국내는 물론 국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따게 됐고, 어릴 때 데인 기억은 차차 그녀의 뇌리에서 스러져갔다.
그리고는 이 북까페를 연 것이다.
가끔 언더가수들 초청해서 미니 콘서트 같은거 해도 좋아,라고 대학동창 미경이 조언을 하기도 했고 그것도 나름 괜찮겠다는 생각을 정원도 했다.
그렇게 까페를 연 지 한달쯤 지났을 때 유리문 밖으로 아이를 자전거 뒷자리에 태우고 가던 자기 또래 남자 하나가 까페를 힐끔거리며 들어올까말까 고민하는게 눈에 띄었다. 딸아이로 보이는 에닐곱 돼보이는 여자아이는 유리문에 바싹 얼굴을 들이대 마치 아기 돼지같은 모습이 된다. 그냥 유리문을 밀고 들어오면 될걸...하며 정원은 다른 손님의 커피를 내리며 바깥 부녀에게 신경을 쓴다.
잠시후 유리문에 달린 벨이 딸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부녀가 머뭇머뭇하면서 까페로 들어선다.
정원은 둘의 긴장감을 풀어주기 위해 부러 ‘어서오세요’ 라고 크게 외친다. 그말에 비로소 부녀는 편안해진듯하다. 창가 자리 볕이 잘 드는 빈 자리를 골라 그곳에 가서 둘은 앉는다. 그렇게 정원이 주문을 받으러 오길 기다리는 눈치다. 아마도 이곳이 셀프서비스라는걸 모르는 듯하다. 정원은 메뉴판을 들고 부녀에게 간다. 셀픈데요, 하면서 메노판을 테이블에 놓자, 아, 죄송합니다. 남자가 민망해하며 메뉴를 보는 시늉을 한다. 천천히 고르세요 가끔 이렇게 주문도 받아요. 한가할때..., 하고 정원이 몸을 돌리자 작게 아빠에게 소곤대는 아이의 소리가 들려온다. 아빠, 난 딸기쥬스.
창작 플랫폼 t의 작가일을 해온건 예전 프리랜서로 편집일을 할때부터였다. 이것도 일종의 시험같은 등단 코스가 있고 , 그것을 쉽게 봤던 정원은 두 번이나 고비를 마셔야했다. 이게 쉽지가 않구나...그래, 세상에 쉬운일이 어딨겠어, 하고는 한 6개월 잊고 지내다 혹시 모른다는 심정으로 한번 더 응시했고 이번엔 반나절만에 합격 통지를 받아 그때부터 간간이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출판이나 편집일이라는게 간접적으로 세상사, 인간사의 이모저모를 들여다볼 기회를 제공하는지라 그만큼 글감도 많다면 많은 편이었다. 해서 소재가 딸린다거나 하는 걱정따위는 하지 않아도 됐다.
부녀가 까페에 다녀간 그날의 일을 에세이 형식으로 t에 올리자 금방 ‘좋아요’ 하트가 뜬다. 혹시나...하는 마음에 누른 사람을 확인하니, 역시 young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그다. 이따금 자기 글에 좋아요를 눌러주는 그의 신상이나 작품이 궁금해서 그의 방에 들어가 봤지만 그는 그 어떤글도 신상에 관한 이야기도 남기지 않고 있다.플랫폼 등단은 한거 같은데 왜 작품이 없을까...그리고 그가 구독하는 작가는 자기말고는 없다는것도 더더욱 궁금증을 증폭시키는 요소라면 요소였다. 혹시 그가 아닐까...라는 상상을 몇 번이나 했지만 그 young이퀄 민영재라는 정답은 쉽게 내릴수가 없다.
“너랑은 감각이 맞지만 그녀랑은 바라보는 곳이 같아”라며 10년 연애를 무참히 저버리고 떠난 영재였다. 무려 띠동갑에 버금가는 어린 여자를 택했고 그녀는 은행 출납계원이었다. 정원을 만난 그녀는 이미 자기가 임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용서까지 빌었다. 임신이란 말에 정원은 더 이상 영재와는 가능하지 않다는걸 스스로에게 타일러야 했고 그렇게 둘은 끝이란걸 냈다. 이후로 새로 다가온다든가 정원이 먼저 다가가는 그런 남자는 나타나지 않았고 그렇게 30대를 홀로 지내온 그녀였다.
“언제 쉬세요?”
부녀가 까페를 드나든 지 석달쯤 됐을 때 남자가 애써 용기를 내서 정원에게 물었다.
“격주 월요일요”
정원의 대답에 남자는 한참을 주저하더니, 혹시 폐가 안되면 쉬는 날 드라이브 가실래요?하고 넌지시 정원의 의향을 물어온다. 그옆에서 한껏 기대에 부푼 ‘연이’라는 딸아이가 안그래도 큰눈을 더 크게 뜨고 해맑게 대답을 기다린다.
그 부녀의 청을 거절했다가는 아이가 당장 울음이라도 터뜨릴 기세다. 해서 정원은 그러마,라고 약속을 한다.
그리고는 정확히 그 다음주 월요일, 그녀의 아파트 앞으로 정환은 차를 갖다댄다. 그는 털털하면서도 도회적 분위기가 물씬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연이는 놀러간다고 나름 한껏 멋을 부려 머리엔 나비핀까지 꼽고 있다. 그런 연이의 통통한 얼굴을 정원은 자연스레 쓰다듬는다. 그러자 아이는 ‘아줌마’라고 처음으로 정원을 호칭하며 그녀의 손을 살짝 잡는다.
그렇게 부녀와 정원은 그날 해맑은 햇살을 받으며 근교로 드라이브를 나간다. 먼거리는 아니었지만 강도 있고 그 강에 비치는 나무 그림자가 환상적인 장소였다.
“저도 차 있음 자주 올텐데..”
정원이 말하자, 여태 운전을 못하냐며 원시인,이라고 정환이 놀려댄다. 아이는 일찍이 아빠 품에 안겨 잠이 들어있다.
“오전 몇시에 출근해요?”
이번엔 그가 진지하게 물어온다. 퇴근하고나면 너무 늦으니까..라고 토를 단다.
“왜요?”
“내가 연수시켜줄게요 운전” 하면서 그가 씩 웃는다.
그날의 일을 정원은 t플랫폼에 올린다. 부녀와의 즐거웠던 하루와 높았던 하늘, 맑았던 햇살, 강에 비친 나무그림자, 그리고 석양 무렵, 그 강에 물 수제비를 뜨던 부녀의 이야기를....
그러자 곧바로 좋아요가 눌린다. 그겠지, 하면서 확인하는 순간 그녀는 실망한다. young이 아니다. 어쩌면 영재일지도 모르는 그가 아니다...세상에‘영’이 들어간 이름이 얼마나 많은데 난 왜 그일거라고 생각할까, 정원은 그런 자신이 어리석다고 느끼면서도 그날밤 내내 young의 좋아요를 기다린다. 하지만 날이 밝아올때까지 그의 좋아요 하트는 눌리지 않는다.
“아내와는 이혼한게 아니고 결혼 2년만에 암으로 갔어요”
정환은 술잔을 기울이며 정원에게 털어놓는다. 까페문을 닫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정원은 돌아보았고 “어디 가서 한잔 괜찮아요?”라며 그가 먼저 제의한 술자리였다.
그렇게 둘은 근처 주점에 들어갔고 맥주와 치킨을 시켜놓고 서로의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가 사별남이라고 밝히기 전까지 정원은 내내 이혼했을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막상 사별했다고 하니 그가 안쓰럽고 불쌍해보이기까지 했다.
“와이프 가고 하던 사업도 안되고 해서...지금은 백수”라며 정환이 쑥스러워 하면서 그녀의 잔에 자신의 잔을 갖다댄다.
“왜 혼자예요?” 정환은 이번엔 대담한 질문을 스스럼없이 해온다. 어떻게 알았을까? 자기 이마에 ‘혼자녀’라고 쓰여있기라도 한걸까, 정원은 의아했다.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의 치부를 들킨거 같아 조금은 화도 나고 민망했다.
“사귀던 남자가...”
정환은 끝까지 듣기도 전에 ‘됐다’는 표현으로 손가락을 움직여보인다. 그리고는 ‘중고 한 500이면 괜찮은거 사는데’라며 그녀의 운전이야기를 꺼낸다. 연수시켜주겠노라, 했던 그의 약속이 그제야 정원의 기억을 스친다.
그렇게 정환은 일주일을 내리 오전시간을 내서 그녀에게 운전 연수를 시켜준다. 면허증은 진즉에 따두었고 그때 곧바로 차를 샀어야 하는건데...하면서 늘 미뤄오던 일을 정환덕분에 정원은 뒤늦게 시도하게 된 것이다. 연수 마지막날, 정원의 까페 앞에 자기 차를 대던 정환은, 무슨 정,자 써요? 하고 난데없는 질문을 한다. 네? 하던 정원은, 둘의 가운데 이름이 같다는걸 그제야 깨닫고 아, ‘정인’할 때 그 ‘정’이라고 대답한다. 어? 하고 정환은 잠시 놀라는 눈치다. 그거 흔치 않은데, 자기도 그 한자로 그 ‘정’이라며 신기해한다. 그럼 우리 ‘정인이네?’라며 그가 내뱉는다. 그리고는 며칠후, 정환의 지인이 한다는 중고차업체에서 정원은 연식이 오래 되지 않은차를 제법 좋은 값에 매입한다. 그리고는 둘은 축하주를 나눠마신다.
그일을 그날밤t에 올리자 이번엔 좋아요 대신 전화벨이 울린다. 이따금 오는 발신표시제한 번호다. 이 전화를 받을때마다 영재인가, 그인가, 하는 생각에 그녀는 혼돈에 빠지곤 한다...
하필, 글을 올리고 곧바로 전화가 온단 말인가..하다, 틀림없이 영재일거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라는 보장은, 확률은 그 어디에도 없는데...
“죄송해요. 전 결혼할 마음이...”
정환이 잔뜩 긴장해 꺼낸 결혼 이야기를 정원은 힘들게 거절한다. 지금 이남자를 놓는다면 다신 이런 속깊은 사람을 만나지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왠지 그의 청혼을 받아 들일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영재때문인가. 의문의 ‘좋아요’와 발신표시 없는 그 전화 때문에?그인가 정녕...아직도 그의 그림자를 걷어내지 못한 자신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민망했는지 정환은 “내가 주제를 모르고...”하면서 이마의 땀을 닦아낸다. “그게 아니고..” “가진것도 없고 자식까지 딸리고...하는 일도 없고...이해합니다”라며 정환은 자리를 뜨려고 한다. 결코 그런 이유가 아닌데...정원은 애가 타지만, 까페 유리문을 밀고 나가는 그를 잡을 용기가 없다.
그리고는 한달정도 정환을 볼수 없다. 그마저 나를 떠난걸까,,,정원은 착잡하고 깊은 고독에 빠진다. 늦었지만 그의 청혼을 받아들이자, 마음먹고 그가 사는 단지로 차를 몬다. 그렇게 단지를 진입했을 때 그가 산다는 105동 고층 라인에서 이사하는게 보인다. 설마..하는 그녀의 눈에 저만치 이사트럭에 짐을 싣는 인부와 이야기를 나누는 정환의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옆에선 이사가 좋은지 연신 촐싹대며 뛰어다니고 있는 정이가 있다...내가 그에게 상처를 주었구나...순간, 정원은 이미 둘사이도 끝났다고 생각한다. 돌아서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에의 발신제한 번호다..이것 때문에...설령 영재라고 해도, 내게 올수 있는 상황이고 오고 싶다면 이런 방법을 택하진 않으리라,는 생각이 퍼뜩 든다. 지금이라도 정환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다시 뒤를 돌아보는 순간 이미 이사트럭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뒤를 정환의 차가 뒤따른다. 뒷자리에 연이를 태운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