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惡의 미소

by 박순영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하루키 인터뷰집을 읽고 있는데, 2차대전후 독일과 일본을 예로 들면서 그들이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할수 있었던 논리를 예로 들면서 '그들 역시 다른 누군가에 속아서 피해를 봤다는것'이 그들의 주장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그들은 개개인의 악행을 '군부'의 잘못으로 전가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가해자가 피해자로 둔갑하는일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다. 죽어라 누군가를 학대해놓고 너때문에 내가 마음이 아프니 내가 피해자다,라는 논리가 그런것이 아닐까?



친구하나를 정말 오랜만에 만난 일이 있다. 그 친구와 끊어진것은 명백히 그 친구의 잘못이었고 그러니 내가 피해자인 셈이다.그러나 시간도 흘렀고 험한 기억일랑 묻고가고픈 마음에 만나기로 했고 밥을 사면서 지내온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그후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그 친구는 나와의 재회가 부담스러웠고 예전에도 피해자는 자기였다고 떠들고 다녔다는 것이다.


내게 가한 위해도 아닌 내 가족에 위해를 가해놓고 내가 몇마디 해댄걸 트라우마 운운하니 정말 뻔뻔스럽기 그지없다는 생각에 우린 다시 단절될 수 밖에 없었다.


그런 심리일지도 모른다. 연애하다 버린 여자(남자)와 마주치기 싫은 심리. 내가 버린 다음 참혹해진 그녀를 봄으로서 나의 행위가 반추되는것을 피하고픈?


우리는 곧잘 미안하다는 말 대신 책임을 전가하고 너때문에 내가 피해를 봤고 마음을 다쳤다는 적반하장격의 말을 곧잘 듣는다. 그말을 듣고있으면 그 나름의 논리라는게 또 있어서 똑 부러지게 아니라고 맞서기도 어렵고 그러다보면 상대의 악행은 유야무야 되기 십상이고 그렇게 어느새 구역질나는 화해에 이르거나 아니면 가해자/피해자의 위치가 슬쩍 바뀌곤 한다.


왜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시인하는것을 두려워하고 피하려 하는걸까? 가해자로 영원히 각인될까봐? 아니면 아예 미안한 마음이 없으므로?


하루키가 말하고자 하는 바 중의 하나가 '악'에 관한 이야기임을 이렇게 새롭게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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