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아기새의 사랑>
나 어릴때 어머니가 출가를 했어...
우혁은 한밤중에 문자를 보내왔다. 이번에 사진집 비평을 청탁받았다고 초고를 선영에게 쓰라고 한다. 선영은 불끈 화가 치민다. 그녀가 발끈한 것은, 우혁의 문자 말미에 붙은 “나 바쁨”이란 세글자 때문이다. 자기 바쁘니 안 바쁜 니가 품을 팔라는 뜻이리라. 늘 이런식이다. 좀 순탄할라치면 이삼일 후엔 꼭 이런식으로 염장을 지른다. 강우혁.
선영이 우혁을 처음 만난건 출판사y 편집부에서였다. 그때 선영은 갓 소설로 등단한 신인이었고 우혁은 y에서 어느정도 입지를 굳힌 선배소설가였다. 선영이 인사를 해도 그는 받는둥 마는둥 하고 그냥 그녀를 지나쳐갔다. 그러자 그걸 보고 있던 편집기자 정안이 원래 그런사람이니 신경쓰지 말라고 한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나미가 떨어진 그를 선영이 다시 봐야 했던건 그로부터 2년정도 흐른 뒤였다. 어렵게 낸 장편이 그냥 묻히다시피 하면서 그는 생계를 위해 이곳저곳에 칼럼, 서평을 쓰면서 버텨나가야헸고 인터넷 신문i에서 우혁의 신간서평청탁을 해온 것이다.
선영은 강우혁이란 이름석자만 들어도 모멸감이 느껴졌지만 나름 꾹 참고 그의 두꺼운 시간 “소멸”을 다 읽어냈다. 구성자체가 내성적이고 의식의 흐름이 가미돼 읽기 만만치 않은 글이라 선영은 ‘된통 당한다’는 느낌속에 완독을 해내고 본문 인용을 위해 한번 더 읽어야했다. 징글징글한 인연이라 생각하면서. 그렇게 a4 두장 반 길이의 서평을 끝냈을땐 창밖이 뿌옇게 밝아올 무렵이었다. 두어번의 퇴고와 오탈자 잡아내기를 끝낸뒤 선영은 담당기자 p의 이메일로 송고하고 그대로 잠에 곯아 떨어졌다. 그리고는 잠깐 조는가 싶었는데 꿈을 꾸었다. 그것도 여간해선 꾸지 않는 새, 것도 어린새의 꿈을....깨고 나서 , 이게 뭘 예고하는걸까, 적잖이 그녀는 궁금하고 조금은 불안하기도했다.
그렇게 서평이 실리고 그날 오후, 조횟수를 확인하기 위해 로그인을 하고 자기 기사에 들어간 선영은 댓글로 짧게 적힌 메일주소 하나를 발견한다. 잘 읽었다,는 말과 함께.아이디는 freebird였다. 새...누굴까? 실명제를 하지 않는 I신문은 이렇게 익명의 섬들이 둥둥 떠다니는 바다같은 곳이었다. 이메일주소를 남긴건 연락을 달라는 것일텐데, 누군줄 알고, 뭐라고 연락을 한단 말인가..
며칠후 고료가 입금되자 선영의 머릿속엔 문득 freebird라는 아이디가 다시 떠올랐다. 그래도 자기글을 읽어준 독자니, 고맙다는 말 정도야 어떠랴싶어, 그녀는 “읽어줘서 고맙습니다”라고 그 메일주소에 적어 보냈다. 그리고는 또다른 인터넷 신문e에 문학칼럼을 싣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 속 아나키즘’이란 제목을뽑고 그에 대한 자료를 서핑하기 시작한다. 인터넷만으로 부족해 관련서 두어권을 주문한뒤 오랜만에 낮잠에 빠지는데, 메일 알람이 들려온다.
신기하게도 우혁은 그녀를 단번에 기억해냈다. 그때 그 편집부...하며 그가 기억해낸 것이다. 뭐야, 내가 인사를 해도 받지도 않았음서...선영은 조금 마음이 상한채로 커피를 마신다. 우혁은 감기 기운이 있다며 쌍화탕을 주문해 홀짝였다. 그렇게 그녀를 기억해낸 뒤,대뜸 그가 물어온다. 더 이상 소설 쓰긴 포기했냐고. 안그래도 장편 실패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우혁은 상처에 소금을 치는 얘기를 한다.
“조금 쉬었다 쓸려고요” 하자, 우혁은 “그러다 결국엔 포기하지”라며 히죽 웃는다.
이사람 뭔가, 싶다 선영은. 신문i에 남겨진 그의 이메일에 괜히 답장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읽어줘서 고맙다는 선영의 메일은 그로부터 서너시간 후에 열리고 답장은 그 다음날 왔다. 읽고 쓰느라 고생했으니 자기가 차 한찬 대접하겠노라고. 자기가 바로 강우혁이라고.
분명 자기가 차를 사겠다는 의미로 읽혔지만 우혁은 까페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빈테일에 가서 앉았다. 셀프로 먼저 계산부터 하는 요즘 대세를 모르지 않으련만...당했다,는 생각에 선영은 이번이 마지막 만남이라 속으로 다짐한다.
그렇게 우혁과 선영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흐른다...딱히 뭐라 할말도 없고, 찻값까지 선영이 낸 마당에 그년 그 자리가 달가울 리가 없다. 그래서 그녀가 먼저 시간을 보는척 하며 일어날 채비를 한다. 그러자 “갈데 있나? 아니면 영화 한편 보고”라고 그가 대뜸 그 당시 어지간히 회자되는 국내 영화 한편을 언급한다. 후반이 카프카와 연결돼있다는데 궁금하다며...
그렇게 선영은 평일임에도 만원이 넘는 영화티켓 두장값을 내게 된다. 분명 보자고 한건 우혁임에도 어느새 자기 지갑이 열리고 있는것이다. 뭐 이런 비겁한 인간이...하면서도 그녀는 우혁을 따라 상영관 안으로 들어간다. 평일이고 끝물이라 실내는 여기저기 빈자리가 많았다. 굳이 지정석을 찾지 않아도 됐기에 둘은 스크린에서 적당히 떨어진 정면 뒷자리에 나란히 자리를 잡고 앉는다. 그러자, 우혁이 말한다. 이영화보고 비평한번 써보지 그래, 라고. 선영은 어이가 없다. 선심쓰듯, 둘 사이가 무슨 도제관계라도 되는양 구는 우혁이 더욱더 싫어진다.
영화는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에 전반이 어수선하고 뒤죽박죽해서 스토리를 파악하기가 어려웠다. 선영이 잠깐 우혁을 보자, 우혁 역시 이해불가,라는 듯 고개를 갸웃한다. 분명 자기 지갑에서 나온 돈으로 티켓을 샀으면서도 선영은 난감해 하는 우혁의 표정에 묘한 쾌감을 느낀다. 카프카 어쩌고 하면서 잘난척 하더니.. 그러던 영화는 전반 한시간을 지나고부턴 쉽게쉽게 흘러가고 자극적인 대사들이 쏟아져나오면서 몰입도를 높였다.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사람이 결혼하면 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을 중단합니까” 라는 외국인 여성의 어설픈 한국어대사가 적잖이 선영의 가슴을 파고든다. 순간 선영은 자기도 소설에만 매달릴게 아니라 시나리오쪽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게 영화를 보고 나온 뒤 우혁은 배가 출출하다며 저녁먹을 의사를 밝혔지만 분명 선영의 지갑이 열릴게 뻔해 선영은 ‘오늘 즐거웠다’고 서둘러 인사하고 지하철 역으로 내뺀다. freebird? 흥. 날강도같으니라고...
그리고 우혁의 소식을 다시 접한건, 인터넷 신문i에 실린 , 그의 영화평을 접하게 돼서다. 항간에 떠도는 카프카와의 접점은 찾기 쉽지 않았지만, 여주인공의 존재감이 대단했다며 비교적 호의적인 비평을 실었다. 결국, 자기 이롭자고 영화를 보자고 한거였어, 라며 선영은 뒷맛이 씁쓸하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난 뒤 우혁은 메일을 보내온다. 두통이 심하다고...
어쩌란 말인가. 안 지는 또 얼마나 됐다고....
선영이 메일을 씹은지 이틀 후에 우혁은 또 같은 이야기를 되풀이해 보낸다. 피스톨좀 구해줘. 내 머리에 대고 쏘게...
선영은 아예 그의 메일을 차단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곤 잠깐 차단을 했다 다시 풀기를 반복한다. 스스로도 이상한 것은, 자신에게 곁을 주지않는, 선영을 위해 단 1원도 쓰지 않는 그가 얄밉기는 해도 왠지 또 보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오래된 연인들이나 할법한 말투로 그는 신체의 아픔을 호소한다. 그의 자신에 대한 감정은 뭘까, 그녀는 궁금하고 안달이 난다. 그래서 그녀는 망설이다 답을 한다 . 약을 들라고.
그런 뒤 둘은 메일보다는 문자를 자주 하게 되고 그는 자주 머리가 아프다고 한다. 어느순간, 혹시 나쁜 병은 아닐까, 선영은 걱정에 휩싸이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곧 좀 나아졌다며 바깥 산책을 나갔다 오겠노라,는 메일이 날아온다. 분명 신경성일거야, 하며 그녀는 애써 불안감을 잠재우려 한다. 그러다 하루라도 그의 문자가 오지 않는 날은 선영은 버려진 여자처럼 비참하고 방황했다 . 하긴 언제 끊어져도 이상하지 않을 인연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둘 사이에 뭐가 있긴 했단 말인가. 그때 영화를 같이 본후 몇 달이 지나도록 우혁은 또 보자는 이야기가 없다. 남자들은 좋아하는 여자가 있음 안보고는 못 산다는 이야기를 익히 들은터라, 그렇다면 우혁에게 자신의 존재가 그닥 크지 않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그녀는 곰곰 되짚어본다.
어느날 우혁은 며칠의 텀을 둔 다음 불쑥 문자를 보내왔다. 거기 사는 데가 공기가 좋다며?라고. 무슨 뜻인가싶어, 선영은 그 문장을 여러번 반복해 읽는다....오기라도 하겠다는거야 뭐야...
그렇게 그날 오후, 우혁은 자기 차를 몰고 한시간 이상을 달려 북한산 자락 아래 선영의 집에 도착한다. 아파트 단지가 산자락에 있고 주민이 아닌 차는 모두 정문 차단기를 통과해야 해서 경사가 급한 언덕길을 올라온 우혁은 마중 나온 선영에게 짜증부터 낸다. 왜 이런 데 사냐고. 선영은 어이가 없다. 그러더니 우혁은 내심 미안했는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한다. 공기는 좋군.
그렇게 우혁은 자기 차를 선영의 아파트 단지에 파킹시킨다. 인제 어디 가면 돼? 라고 그가 퉁명스럽게 물어온다. 선영은 아무리 기억을 하려해도 자기가 먼저 초대한 기억이 없다. 그저,자기 동네가 북한산 자락이어서 공기는 좋고 배산임수여서 명당이라고 농으로이야기 한게 다였다. 왜 그에게 ‘이런곳에 사냐’며 타박을 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그는 빨리 동네 가이드를 하라고 채근하는 눈빛을 보낸다. 선영은 가스라이팅이라도 당한양 도보로 10분 거리의 유원지부터 가기로 한다. 뒤따라오면서도 우혁은 연신 투덜댄다. 이거 뭐, 죄다 비탈이잖아 힘들게...라며 . 선영은 자기가 이곳에 사는게 무슨 큰죄라도 되는양 송구스러워진다. 그렇게 10여분을 걸어 유원지에 다다르자, 그제야 우혁은 조금 밝은 안색이 되며, 여긴 좋군,이라고 퉁명스레 내뱉는다. 그렇게 들어선 유원지 안쪽에 사찰도 있다고 하자, 그럼 거기로 안내해,라고 그가 다시 명령한다. 선영은 이제 이 상황이 우습기까지 하다. 서로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는 두사람이 기괴하게 만나서 또라이같은 동행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유원지 안에 자리한 사찰에 들어서자 우혁은 발걸음마다 경건해진다. 불교신잔가보다, 선영은 생각한다. 여러개의 전각을 돌때마다 그는 찬찬이 내부를 들여다본다. 불교믿어요? 선영이 묻자, 아니, 무신론.이라고 그가 짧게 말한다. 이사람은 긴문장을 말할줄 모르는게 틀림없어,라고 선영은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렇게 전각을 거의 다 돌고 마지막으로 대웅전에 이르자, 그는 아예 신발을 벗고 그안에 들어간다. 그리고는 절을 한다. 그러던 그가 마치 기절이라도 한양 엎드린채 일어나질 않는다...선영은 망설이다 자기도 안으로 들어가 그를 부축하는데 그가 잠깐 손으로 눈을 훔치는게 보인다. 이남자가 울었어...선영은 충격을 받는다.
“나 어릴 때 어머니가 출가를 했어”라고 사찰밥을 먹으며 우혁이 짧게 내뱉는다. 그말에 선영은 무언가 먹먹한 느낌이 든다. 그리고는 체기가 느껴진다. “힘들었겠네요”하자, “그래서 소설은 안 쓰나?”하고 엉뚱한 질문을 던진다. 그제야 선영은 이 남자의 철갑같은 단단한 외피의 성질을 파악하게 된다. 한없이 여린 아기새같은, 그러기에 더더욱, 그 여림을 감추기 위해 거칠게 사는 사람이라는걸...
그렇게 사찰을 나서 유원지 계곡에 잠깐 발을 담그자 이내 하산을 알리는 방송이 들려온다. 일몰이면 입산이 안된다는 안내문을 본것도 같다. 빨리 내려가자,는 선영의 채근에도 우혁은 천천히 풍광을 감상이라도 하듯 발길을 옮긴다.
이후 그는 소설에 쓸 자료라며 한국전에 관한 미군의 자료 번역을 하라고 파일을 첨부해 보내는가 하면, 그녀가 투고한 자기책의 서평이 채택이 안되기라도 하면, 며칠씩 연락을 끊곤 했다. 그와 다시 이어가는 방법은 , 어떻게든 글이 채택되는것뿐이어서 선영은 돈도 안되는 서평작업에 다시 매달려야 했다. 그러더니 이번엔 사진 비평 초안을 잡으라는 것이다. 이 인간을 내가 다시 보나 봐라,하며 그녀는 그의 문자에 답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그가 참고하라고 보내온 링크를 클릭하자 , 사진작가 로버트 프랭크 사진에 관한 비평이 길게 쓰여있다. 이번엔 죽어도 하라는대로 안한다, 선영은 다짐하면서도 그 글을 다 읽어낸다. 그리고는 잠깐 조는가 싶었을 때 퍼뜩, 아기 새 한 마리가 눈앞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게 보인다. 본거 같다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