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보러 일부러 걸어간 길

난 사계절 다 타.

by 그레이스웬디

아직 3월 초순이긴 하지만, 왜 유난히 꽃이 안 보이는 것 같지?

아침마다 걸으면서 생각이 들었다.

가장 빨리 꽃을 피우는 매화나무가 이렇게 없을 리가 없는데...

이 동네에 산지 벌써 9년 차인데 매화나무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님 더 늦은 때였을까?

이렇게까지 안 보였었나? 2월에도 피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꽃을 이렇게 찾아보기는 또 처음인 것 같다.


개나리 진달래는 그렇다 쳐도 매화는 피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안 보이니 괜히 걱정이 다 되었다. 오늘은 기온이 20도가 넘는데 아직 꽃이 안 피었을 리가 있나.

평상시 걷던 코스를 뒤로하고 공원이 있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참을 걸어야 나오는 공원인데 그 길은 또 왜 그리 가깝게 느껴졌던지.

공원까지 가는 중에도 꽃잎은 하나도 보지 못했으니, 아직 꽃을 보기엔 때 이른가 싶었다.


날이 너무 따뜻해서였을까

꽃이 왜 갑자기 보고 싶었는지, 지나가면서 꽃집이란 꽃집은 죄다 눈을 힐긋거리면서 걸었다.

그렇게 공원에 도착을 했는데, 어째서 휑하다.

꽃나무를 찾아 이리저리 걷다 보니 찾았다 꽃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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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처럼 꽃이 보고 싶어 헤매는 사람을 기다리기라도 한 듯 하양, 노랑, 분홍의 나무가 나란히 모여있다.

하얀 꽃은 매화인 것 같고, 노란 꽃은 산수유인가? 분홍은 목련일까?

지금 사진을 보니 '산수유'라고 적혀있다. 아까는 저 팻말도 안 보였었는데 ㅎㅎ

꽃은 보고 싶었어도 사실 나는 꽃이름을 잘 모른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서 모든 꽃은 그냥 꽃이었는데, 이름이 있음에도 이름을 불러주지 않으니 꽃들은 서운하겠다 싶다.


나이가 들면 꽃이 좋아진다는 말이 우스갯소리처럼 들렸었는데 나를 보니 정말 그렇다.

왜 그런 걸까?

나이와 꽃은 무슨 연관이 있길래?

그저 나를 기준으로 생각해 보건대, 이제 더 이상 예뻐 보이는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젊은 날엔 꽃이 예뻐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예뻐 보이는 것들은 수두룩했다.

그런 것들이 더 이상 예뻐 보이지도 않고, 쓸모도 없어졌고 그렇다 보니 이제야 그땐 몰랐던 꽃의 예쁨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아닐까.

꽃을 사들고 오는 남편에게 차라리 돈으로 달라던 신혼 초를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지금은 돈으로 꽃을 사면서 말이다.

그런 면박을 받아서인지 언젠가부터 남편은 꽃보다 돈을 주지만.

그래서 며칠 전에는 꽃 사달라는 말을 했었다.

백화점에 갔다가 또 꽃집을 지나가면서 "나 꽃 좀 사주라" 했다.

"뭐라고? 꽃이라고? 가방 아니고?" 남편이 놀란다.

이 무심한 남정네야, 당신 마누라 나이도 좀 생각하는 센스 같은 건 어디다 처박아놨니.


나는 "그래!! 꽃!!" 했다.

남편은 "어! 사! 얼마든지!!" 하면서 내심 좋아죽는 표정이다.

가방 대신 꽃이라니 당신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거야!라는 말은 삼켰다. ㅎㅎ


오늘은 공원의 저 꽃나무 앞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었다.

커피도 빵도 없었지만, 왠지 커피향보다 진한 꽃내음이 바람을 타고 오는 것 같았다.

봄바람이 부는구나.

올봄은 또 어찌 잘 견뎌야 할 텐데.... 생각하며 한참을 앉아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언니 나 봄 타나 봐"

"언니 나 가을 타"

"난 사계절 다 타!"

어느 계절이든 마음이 살랑대지 않을 계절이 어디 있을까

각자의 유혹이 있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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