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고기 집사의 생각
물고기를 키운 지 어느덧 4년 차가 되었다.
나의 피터팬이 5살 크리스마스 때 이마트에 가서 구피 2마리를 사 온 것이 시작이었다.
그냥 아이가 조르니 대충 키우다 보면 제대로 못 키워 죽어 없어질 거라 생각하며, 그 작은 생명체의 생명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수조도 없이 그저 투명한 유리볼에 두 마리를 넣고 수질관리며, 산소관리도 할 생각도 안 하고, 말 그대로 대충 키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얘네들이 아가야들을 낳았다.
그것도 열 마리가 넘게.
그때부터 나는 정신이 번뜩 차려졌다.
와~~~ 생명이란 것은 이런 것이구나.
둘 중 누가 암컷이고 수컷인지, 어쩌면 둘 다 수컷일 수도 암컷일 수도 있다는 당시 직원의 말을 듣고 아무렴은 어때했었는데 정확히 한 쌍이었던 것이다.
새끼들을 잡아먹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뒤로 발이 동동 굴러졌다.
너무도 조그만 구피새끼들을 어떻게 보호를 해줘야 하나.. 하면서 당장 집에 물고기 기르는데 필요한 어떤 도구도 없었고 무방비 상태로 며칠을 보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며칠 동안 6마리가 생존했다.
심지어 치어밥도 없던 상태였다.
부랴부랴 수조며 치어밥이며 전염병을 예방하는 약품과 수조등, 여과기, 산소발생기, 물온도기 등등을 준비했다.
구피 2마리에 2천 원을 준 것에 비하면 상당히 큰 배꼽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구피를 키웠고 나중엔 25마리까지 늘어나서 수조를 큰 것으로 바꾸었다.
작년인가 친정집에 오래 머물 때 남편에게 구피밥을 부탁했었는데, 남편도 잦은 출장과 깜빡거림으로 밥을 잘 못 챙겼다고 한다.
집에 돌아왔을 땐 구피가 모두 죽어있었다.
첫 구피를 들여온 지 3년 만이었다.
그동안 제일 처음 데려온 아빠와 엄마는 이미 죽었고, 그들이 낳은 새끼들이 개체수를 늘린 것이 25마리였는데, 치어들은 어항 청소하면서 미처 알아채지 못해 떠내려 죽인 것도 꽤 많았고, 물갈이할 때 물온도가 너무 차가워 기절한 것도 모르고 죽었는 줄 알고 변기에 그대로 내려보낸 아이들도 열댓 마리는 됐으니, 모두 잘 키워서 살아있었다면 족히 50마리는 되었을 터.
초록색 이끼가 낄랑말랑 하면 어김없이 그 고된 어항청소를 2주에 한 번씩 하기를 거른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한방에 몰살시키고 보니 왜 그렇게 허망한지.
생이란 어떤 개체를 불문하고 이토록 허망함을 주는가 싶기도 했지만, 강아지도 고양이도 아닌 물고기의 죽음에 그렇게 슬픔이 찾아들진 않았다.
"이제 그만 키우자" 했는데 피터팬은 포기하지 않았다.
아빠랑 둘이 이마트를 다시 가서 이번엔 구피가 아닌 주황색 물고기를 사 왔는데 이름도 모른다.
이번 역시 암컷인지 수컷인지 정확히 한 쌍이 아닐 수도 있다고 했다는데 그 이마트 직원은 왜 거기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인지.
어쨌거나 컬러가 쨍한 오렌지색 물고기 2마리로 다시 시작한 물집사 생활.
구피는 번식력이 좋아서 수시로 새끼를 낳는 반면 얘네들은 더디다.
1년 동안 2마리에서 5마리가 된 것이 전부였으니, 그동안 25마리 구피가 바글거리던 커다란 어항은 얼마나 너른 집이란 말인가.
초록 이끼가 잔뜩 끼어도 예전만큼 어항청소를 부지런히 하지 못했다.
피터팬은 엄마가 변했다고. 요새는 왜 한 달에 한 번도 청소를 안 해주냐며 툴툴거렸다.
어항의 크기가 너무 커서 청소 한 번 하려면 정말 큰 맘을 먹어야 하는 것은 사실이다.
이번에 큰 마음을 먹고 수조청소를 정말 오랜만에 했다.
그런데 마음이 덜하면 확실히 정성이 덜한지 어항밑에 금이 가게 만들었다.
물이 새서 못쓰니 구피를 처음 입주시켰던 작은 어항으로 얘네들 5마리를 옮겼다.
60평 집에서 25평으로 이사한 셈이다.
답답하거나 좁아서 불편할 법도 하건만 그 작고 더러운 집에서 용케도 살아남는 주황색 물고기들을 보는데 왜 이렇게 짠한 마음이 드는지.
예전처럼 큰 집은 다시없을 테지만 적어도 더러운 집에서는 살게 하지 않겠다며 물고기들과 약속 아닌 약속을 했다.
살아주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한 물고기 키우기가 어느덧 내 삶의 일부가 된 듯하다.
새끼가 더 많아지면 아마 또 커다란 수조를 살 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더 이상 새끼가 많아질 일도 없고 우리 세 식구 살기엔 집이 너무 큰데, 집을 줄여 이사를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조금 더 아늑하고 자그마한 집이 더는 불편할 것 같지도 않을 것 같고, 그렇게 마음을 먹었더니 커다란 이 집이 갑자기 되려 불편해진다.
사람 마음은 참으로 요상한 것임에 틀림없다.
물고기의 집을 보면서 내가 살 집을 생각하다니 이 또한 예전엔 없던 일이다.
점점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이 생기는가 싶기도 해서 반갑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