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휘 May 06. 2024

홀로 된다는 것

진정한 나로 홀로 서기

아주 덤덤한 얼굴로 나는 뒤돌아섰지만

나의 허무한 마음은 가눌 길이 없네

아직 못다 한 말들이 내게 남겨져 있지만

아픈 마음에 목이 매여와 아무 말 못 했네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이라는 노래의 가사다.

이 노래를 안다면 그대는 X세대이지 않을까 싶다.


변진섭에 얼마나 빠져있었나, 그의 슬프고도 우울한 노래들은 나의 사춘기를 쓸데없이 우울하게 만들었었고, 세월이 지나 들을수록 더욱 절절해지니 이 노래가 절절할만한 인생을 살았던 것인가.

문득 옛 노래가 그리울 때가 있다. 일부러 찾아 들을 만한 그 노래들은 전부 나의 젊다 못해 어린 시절을 함께 지나왔으니 나에겐 추억이고 기억이고 그리움이다.


많은 노래 중에서 <홀로 된다는 것>이라는 이 노래가 그때의 나에겐 오직 사랑과 이별에 관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다르게 생각되기도 한다. 사랑 후에 오는 온갖 이별 속에 홀로 된 슬픔보다 점점 진정한 나로서의 홀로서기에 어쩜 이리도  이 가사는 찰떡인지.


인간은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떠난다고 하였다.

사는 동안 손에 쥔 것이 얼마큼이 될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결국 돌아갈 때는 다시 빈손으로, 올 때 그랬던 것처럼 다시 홀로인 채로 가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요즘 부쩍 드는 생각은 아직 홀로 되어 떠나는 발걸음을 생각할 나이가 아닌 만큼 사는 동안 홀로서기를 몸에 익혀야 하는 거라고.

우리는 모두 태어남과 동시에 공동체가 된다. 홀라당 발가벗고 혼자 태어났는데 나오고 보니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고, 그렇게 공동체로 시작되니 자칫 태어날 땐 혼자가 아니라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인간은 출생과 죽음에의 혼자성, 불가지성을 부인할 순 없다.


응애 하던 순간부터 가족이라는 공동체에 파묻혀 성장하게 되니 우리는 당연히 혼자보다 함께가 편하고 익숙하다. 하지만 결국 돌아갈 때 혼자여야 한다면 진정한 홀로서기를 하나의 정신으로 장착하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타인에게 의존하며 주체성을 잃어버린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고 흔들리는 삶 속에서도 반드시 '나'라는 존재의 혼자성을 잊지 말고 살아야 한다.

하이데거의 피투 된 존재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우리는 세상에 피투 (던져진) 상태이다.

작정하고 태어난 것이 아니니 던져진 삶이 맞다. 피투 된 존재가 기투의 과정으로 삶을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자신이 추구하는 주체적인 삶을 사는 것이리라.

나다운 삶을 의식적으로 살아야만 삶의 의미와 재미를 찾을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의식적이라는 것이다.

세뇌를 당해 능동적으로 건드리기만 해도 툭 튀어나올 만큼 우리는 나다운 삶을 사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야 한다.


지난날들을 되새기며 수많은 추억을 헤이며, 한 살 두 살 나이를 먹어갈수록 되새길 지난날은 길어지며 헤아릴 추억 또한 많아진다. 그 모든 길에 진정 나다운 삶을 지나왔는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길고 긴 밤을 새워야지 나의 외로움 달래야지, 길고 긴 밤을 새우는 일은 비단 사랑이 떠나가서만은 아니다. 나의 외로움은 사랑을 하는 중에도 있는 것이고, 사람들 틈에서도 느껴지는 것이다. 나의 외로움은 달래기보다 즐겨야 하는 것이리라.

이별은 두렵지 않아 눈물은 참을 수 있어, 이별이 두렵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것이 영영의 시간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러니 눈물도 참으면 안 된다. 그저 나답게 실컷 살다가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눈물마저 나다움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해...... 홀로 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 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홀로서기를 연습하면 된다. 

의식적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는지 체크해봐야 하고, 혼자 있을 때 나와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지 살피고, 타인과 함께 있을 때 나의 시선은 나를 향했는지 타인을 향했는지 둘러보고, 내가 나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홀로 향유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습관화해야 하고, 생성의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이렇게 내가 늘 혼자라고 생각됨은 왕따도 외로움도 아니며, 공동체에 익숙한 인간이 오롯한 '나'를 알아가고,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것이 존재해야만 이타성의 마음도 가질 수 있다.


비행기 안전수칙 중에 자주 인용되는 것이 있다.

기압이 떨어지면 산소마스크는 내가 먼저 써야 한다. 그래야 타인을 도울 수 있다.

이것이 진정 나를 챙기는 것과 이타성의 관계가 아닐까.

언제나 나다움을 찾고 나를 먼저 돌보는 것, 이것이 잘 되는 사람은 결국 홀로 된다는 것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이전 07화 책 쓰기에 대한 고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