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갈등 속에서 나는 여러 선택의 문을 통과했다. 이제 세 번째 문 앞에 서 있다. 두 번째 문에서 나는 상대방을 그 사람의 행위가 아닌 그 사람의 존재 자체에 대해 살피며 그 사람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상대방을 완전히 다른 존재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쩌면 우리는 관계 속에서 상대의 존재 자체보다는 그 사람의 행위에 집중하며 관계를 형성해 가는지도 모른다. 존재를 기억하며 관계를 형성한다면 이전에 찾지 못했던 새로운 사실을 발견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할 때는 관계 갈등을 풀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찾지 못할 경우가 많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대부분 존재의 의미보다는 보이고 들리는 단편적인 사실에 집중해 문제를 해결할 때가 많다. 사실 해결이라기보다는 갈등의 골을 깊게 하는 일일 것이다.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통찰과 고민을 지난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를 수용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 수용의 과정이 상대방을 존재 자체로 바라보았기에 이뤄졌을 것이다. 상대방을 수용한 후 에는 ‘나 중심의 삶’을 살기 위해 노력했다. 이전까지는 어쩌면 내가 아닌 타인 중심의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타인의 가치판단과 인정, 기대에 내 삶을 맡기고 많은 시간을 보내고 그 과정에서 갈등하며 내 삶의 중심에 내가 아닌 누군가의 자리를 마련해주며 시간을 보냈는지도 모른다. 이젠 삶의 중심에 타인이 아닌 내가 서있기를 원한다. ‘나 중심의 삶’은 어떤 것일까? 한 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다. 언뜻 듣기에는 조금은 이기적인 삶인가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느낌의 삶은 아니다. 이전에 타인 중심의 삶을 살아온 누군가가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과정을 지나 자신의 삶을 표현한 것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여러 관계를 이루며 살아가는 우리는 대부분의 관계 속에서 어쩌면 타인의 어떠함을 우리 삶의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나 역시 그랬던 시간이 있었고 그 시간은 생각보다 길게 내 삶의 한 자리를 차지했었다. 이젠 그 시간을 다시 갖고 싶지 않다. 관계 갈등이 있어도 그 중심에는 내가 있기를 소원한다. 긴 갈등의 끝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나를 문제의 중심에 두었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중심에 타인을 두고 그 문제의 해결책을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을 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터널 속을 걷는 듯했다. 하지만 관계 갈등의 해결을 위해 나를 문제의 중심에 두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해결책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을 내게서 찾기 시작했다. 그 시작이 내게 가져온 건 갈등에서의 자유였다.
관계 속에서 내 삶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내 스스로 관계 가운데 주체적인 역할을 감당하는 것, 그것이 내 내면의 행복을 좌우했다. 관계 갈등의 유무에 상관없이 어떠한 상황이든 내 삶의 주체가 내가 되어 무언가를 선택하고 해결하는 것, 그것이 어쩌면 나 중심의 삶일 것이다. 문제 상황이 되면 우리는 대부분 나 자신보다는 상대방에게 집중한다. 이 집중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나 중심의 삶일 것이다. 문제 상황에서 나 중심의 삶을 선택하고 문제를 해결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그랬는지 잠시 생각해 보면 문제의 원인을 내가 아닌 상대방에서 찾고자 했고, 그 원인을 제공한 상대방이 문제 해결의 의지를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갈등 상황은 계속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 그 착각은 참으로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 착각을 인지하고 그 착각에서 벗어나려 했을 때 해결책은 내가 아닌 누군가가 아니라 내게 있었다. 문제의 해결책을 나에게서 찾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하면서 문제가 아주 작게 느껴졌다. 무언가 달라진 것은 사실 없었는지도 모른다. 단지 그 문제를 대하는 내가 달라졌을 뿐이었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내 삶의 주체가 되고, 갈등 상황을 건강하게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 그것이 ‘나 중심의 삶’이었다. 거창한 무엇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상황에 내가 아닌 누군가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에서 내가 자유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는 해결책을 찾아 묵묵히 해결을 향해 걸어가도록 내 자신을 격려하고 지지하는 것이야 말로 내가 갈등 상황에서 경험한 ‘나 중심의 삶’이었다. 조금은 이기적인 선언 같기도 하고 조금은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는 ‘나 중심의 삶’! 이 삶은 갈등 상황을 건강하게 지나고, 갈등 상황을 통해 무언가를 배워가는 작은 삶의 행복일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은 어쩌면 나 중심이라기보다는 내가 없는 듯 남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삶일지도 모른다. 갈등이 너무 크게 다가와서 내 내면을 배려하지 못하거나 내 내면에 대해 생각할 여지를 갖지 못하는 경우일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이 된다면 잠잠히 자기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이 문제 해결의 중심에 서서 건강한 선택을 통해 갈등 상황에서 걸어 나오길 바란다.
나 중심의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가 내가 아닌 타인에게 집중해서 이기도 하지만, 반대로 너무 내게 집중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갈등 상황에서 내가 상대방만을 바라보고 집중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치게 나 중심이어서 일지도 모른다. 지나치게 나 중심으로 상황을 보다 보니 타인만 보게 되는 것! 나의 어떠함 보다는 상대방의 어떠함과 상대방의 탓을 찾는 나. 너무 내게 집중한 나머지 나를 보지 못하고 남만 보는 실수를 범하는 경우 있다. 다시 말해 나 중심으로 상황을 보다 보니 나의 모든 가치판단 기준에서 남을 나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 역시 ‘나 중심의 삶’이다. 전자와는 너무 다른 모습으로 비칠 수도 있는 ‘나 중심의 삶’의 다른 모습이다.
내가 경험한 ‘나 중심의 삶’은 두 가지 모습으로 정리가 되었다. 어쩌면 나는 후자의 ‘나 중심의 삶’을 살았는지 모른다. 그러다가 전자의 ‘나 중심의 삶’으로 전환을 시도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두 모습 중 어떤 하나가 긍정적이다, 부정적이다라고 표현하고 싶지는 않다. 두 모습이 모두 있어서 우린 갈등하고 선택하며 관계 속에 성장해 가고 있다. 그 과정을 거쳐 우린 더 건강한 ‘나 중심의 삶’의 모습을 추구해갈 것이기 때문이다. 삶 속에 갈등은 없을 수 없고, 그 갈등은 매 순간 우리에게 선택이라는 것을 제공한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서로 다른 모습으로 우리 삶을 만들어가고 있다. 서로 다른 선택을 하고 다르게 살아가지만 그 선택이 반복될 때면 우리에게 작지만 건강한 변화가 있기를, 소소하지만 갈등을 건강하게 이겨내는 작은 힘을 길러가는 과정이 있기를 소망한다.
갈등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갈등 상황에서 용기를 내지 못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두려워하는 우리이길 바란다. 갈등 상황에서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신의 존재와 상대방의 존재를 사유하며 수용한다면 우리 긴 터널이 아닌 짧지만 무언가를 배워가는 터널 지나기를 반복하며 건강하게 성장해 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