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샘 Aug 20. 2022

지금에 머무르며 행복을 누리는 연습

나 중심의 삶을 살기로 결정한 후 내 삶에서 중요한 시기는 언제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나 자신을 찾기 전까지는 과거에 메여 내 삶의 부족한 무엇의 이유를 타인에게서 찾으려 했었다. 그 시기에 나에게는 과거가 내 삶을 끌어갔던 것 같다. 끌어 갔다기보다는 날 과거에 머물러 있게 했다. 과거에 머물러 있으며 그 과거를 내 삶이 더 행복하지 못한 이유라 탓하며 보냈다. 그 과거를 벗어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 과거에서 벗어나서도 가끔은 과거가 떠오르고 내 삶을 침잠해 올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전과 달리 그런 내 상태를 내 스스로 인식하고 벗어나려 했다. 과거에서 벗어나서도 관계 갈등이 있을 때 나는 보다 나은 알지 못할 무엇, 미래라는 것을 기약하며 내 자신에게 현재의 갈등과 어려움을 인내하고 참으라고 했던 것 같다. 정말 단순히 인내와 참음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깊은 곳에는 회피의 감정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을 인해 나는 현재의 나를 너무 잔혹하게 대했던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며 나는 어느 순간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나는 어디 있는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혼란스러웠다. 답을 할 수가 없었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무엇을 위해 서 있는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찾으려 묻고 또 물었다. 그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의미가 무엇인지 나 스스로의 정의가 필요했다. 미움에 대한 탐색을 시작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내 모습을 돌아보았다. 그 시점 중 현재라는 것이 지금일까를 스스로에게 물었다. 선뜻 ‘그렇지’라고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큰 의미에서는 현재라는 시간이 내게 허락된 지금이 맞겠지만 무언가 새로운 정의를 내려 내가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고자 하는 지금을 정의하고 싶어졌다.


매일매일 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내 삶이지만 사실 나를 위한 시간은 너무 적었다. 결혼을 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사실 내 시간이기보다는 아이들을 돌보고 아이들을 위한 무언가를 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도 그 시간이 모자라 바쁜 가운데 동동거렸다. 그 동동거림은 지금은 여전히 내 삶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다. 가끔 분주한 동동거림 속에 내가 없는 듯하다 느껴질 때도 있었다. 내가 사라지지 않은 것은 나와 함께한 내 반쪽 남편 덕일 거다. 너무 분주하고 여유가 없어서 어쩌면 내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늘 미뤄두거나 엄두도 못 냈었던 터라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어떤 의미인지 고민하고 그 의미를 찾는 건 조금 어색하고 익숙하지 않은 특별활동 같았다. 특별활동은 처음부터 잘 해내기는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활동을 시작하는 것도 부담스러웠고, 어떻게 해가야 하는지도 몰라 자꾸만 뒤돌아 보며 포기를 생각했었다. 이렇게 시작된 특별활동은 오랜 시간 지속되었고 결과는 지지부진했다. 하지만 멈춰있지는 않았다. 느릿느릿 가지만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과정을 지나 내가 내 삶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라는 시간의 의미를 조금씩 정의할 수 있게 되었다.


‘지금’은 내게 허락된, 내가 맞이하고 있는 이 순간이다. 막연하게 넓은 의미로 현재라고 정의하고 싶지는 않은 단어. 내게 허락된 순간순간을 지금으로 정의하고, 지금에 머물러 행복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시작하고 싶다. 내 스스로 지금을 내게 허락된 매일의 순간순간으로 정의한 후 무엇을 어떻게 해야 지금을 살아가는 것일지 고민했다. 분주한 삶을 살면서 사실 무언가 고민하는 것은 가끔 사치 같았고 그럴 시간조차 없다 느껴졌던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매일의 순간을 지금으로 정의하고 그 순간에 집중하려 노력했다. 순간에 집중하려 노력하자 지금이라는 시간은 내게 더 명확하게 다가왔다. 내게 허락된 순간을 살아가는 것, 내게 허락된 순간을 행복이라는 통로가 되도록 만들어가는 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것이라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매일의 순간을 좋은 추억으로 만들어가고 싶었다. 시간이 지난 후 꺼내 볼 수 있는 좋은 추억 말이다.


분주한 삶을 살고 가끔은 어찌할 바를 모를 내면의 감정의 갈등을 느끼지만 그 순간에 지금을 추억으로 기억하고, 그 추억을 인해 행복할 수 있기를 바라며 내 삶의 태도를 바꿔보려 노력했다. 양육의 어려움이 느껴질 때, 가족 간에 갈등이 생길 때, 내가 만나는 많은 내담자들과 어찌 함께 해야 할지 고민이 될 때, 누군가 미워질 때. 수많은 순간들 속에 나는 반복해 내 자신에게 말했다. “지금을 살자. 지금을 행복의 통로로 만들자.”라고. 갈등과 어려움이 생길 때 지난 과거나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인해 무언가 고민하고 결정하려 하기보다는 지금을 행복으로 채우려 했다. 지금 순간이 행복으로 채워진다면 막연히 늘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미래도 행복이 켜켜이 쌓여 행복하리라는 믿음을 갖기 시작했다. 이런 결론을 내리며 나는 지금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금이 어쩌면 누군가의 과거가 되고, 누군가의 지금과 미래에 영향을 미치며 존재할 것이다. 나의 지금이 누군가가 삶을 살아갈 때 그 삶에 좋은 기억으로 남아 덕을 끼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금을 살고 싶다. 이렇게 지금 순간을 살아간다면 후회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막연한 미래를 염려하며 무언가 셀 수 없이 시도하지 않고 지금 순간에 머무르기를 연습하기로 결심했다. 보이지 않는 어떤 지점을 향해 나아가는 것보다 어쩌면 지금 순간에 머무르는 것이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난 이미 산 반평생을 그리 살지 못했다. 내가 그랬듯 우리 대부분은 지금에 머무르기보다는 어떤 지점을 행해 나아가고, 그 지점에 도달하기 위해 무언가 시도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나 역시 그랬다. 그래서 어쩌면 지금 이 순간의 행복은 잊어버리고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지금을 잊게 하는 미래라는 것은 현재의 조각이 모이고 모여 만들어진 퍼즐 같다. 그 퍼즐 조각을 우린 매일매일 완성해 간다. 어떤 조각의 퍼즐을 만들었는지 기억하지 않은 채로 퍼즐판 안에 퍼즐을 하나씩 채워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사십 대 중반을 살아가고 있는 나는 이미 퍼즐판의 많은 부분을 채운 것 같다. 이미 채운 퍼즐 조각은 새롭게 바꿀 수 없다. 이미 지난 시간이니 말이다. 하지만 앞으로 채워갈 퍼즐 조각은 의미를 기억하며 만들어 채우고 싶다. 힘들고 어려운 순간이 더 많은 인생길에서 순간순간 작은 행복을 누리며 그 행복의 조각을 내 인생이라는 퍼즐판 위에 채워,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내가 속한 공동체에 덕을 끼치며 남은 인생을 살아가고 싶다. 어쩌면 늦은 깨달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게 허락된 시간 속에 나의 작은 행복과 누군가의 작은 행복을 기억하며 지금을 살아가고 싶다.


미리 만들어 채운 퍼즐 조각 중 힘든 시기를 지나며 만들어진 퍼즐 조각의 의미에 대해 고민해 보고 싶어졌다. 어떤 퍼즐 조각은 그 힘든 시기를 잘 이겨내서 자랑스럽게, 어떤 퍼즐 조각은 그 힘든 순간에 함몰된 채로, 어떤 조각은 도망을 가 미해결 과제로, 어떤 조각은 꺼내 보고 싶지도 않는 채로 남아있다. 각각 다른 모습의 조각들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그 조각들이 그렇게 만들어졌기에 나는 사유할 수 있었고, 그 사유의 결과 지금을 살아가기로 결심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이제 남은 내 삶의 여정에서는 이미 만들어 놓은 조각들의 의미를 기억하며 내가 찾았던 지금을 살아가고 싶다. 이후 내가 다시 지금에 머무르지 못하는 순간이 온다면 그때 이 글을 읽으며 지금에 머무르려 몸부림치고 싶다.


지금이라는 삶의 시간을 인지하고 그 시간의 의미를 기억하며 살아가려 결심하지만 그 결심대로 살아가려면 빈번한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것 같다. 과거에 머무르고 그 과거를 탓하며 살아가고 알 수 없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도달할지 모르는 미래를 향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하는 나는 정작 지금 순간에 집중해 나의 행복을 위한 시도를 하는 것에는 너무 서툴기만 했다. 결심과 다르게 살아가는 삶의 순간이 내게 반복되었다. 가끔은 그 결심과 달리 무언가 시도하고 행동하고 말한 내 자신을 발견하고 깊은 한숨이 나오기도 했다. “아! 또 놓쳤다. 행복을 잡지 못했다. 나 때문에 아픈 사람이 생겼다.” 이런 외침이 내면에서 수없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이 찾아오면 지금 순간을 살아가려는 나를 잠시 잊어버리기도 했다. 나 자신이 너무 실망스러워 포기하고 싶기도 했다. 그럴 때면 잠시 멈췄다. 그리고 분주한 삶의 일상 속에 사치를 부렸다.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잠시 사유하는 사치 말이다. 그 사치를 부릴 마음의 여유, 노력의 의지도 없어 그냥 지나가 버린 순간도 있었다. 또 하나의 미해결 퍼즐로 남겨진 순간 말이다. 하지만 그 미해결 과제 같은 퍼즐이 있어 고맙다. 그 퍼즐을 기억하며 다시 연습에 들어갔다. 연습은 계속되고 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연습이 잦아지면서 조금은 훈련이 되어 미해결 과제 같은 퍼즐이 줄어들고, 미해결의 정도가 덜 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 내면의 뭔가 모를 편안함을 난 누리고 있다. 그래서 이 훈련을 계속 지속해가려 한다. 훈련의 결과가 어찌 될지는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내 내면이 뭔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새로운 무언가를 배워가는 것은 연습과 훈련이 필요하다. 몸을 단련하는 것도 아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을 단련하는 훈련이니 당연히 더 힘들 거다. 이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기 위해 내 사고의 흐름을 늘 인지하고 그 흐름 속에서 기억해야 할 것을 놓치지 않고 지금을 살아가고 싶다. 너도 나도 너무 바쁜 시간을 살아가지만 그 분주한 시간 속에 꼭 기억해야 할 것을 기억하고 걸어가고 싶다. 그 기억과 지금을 살아가려는 갈망이 지금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할 것이다.




이전 11화 선택 3 - 나 중심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