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싱으로 리폼하기

by 발돋움

빨래를 정리하고 옷장에 넣다 베이지색 리넨 원피스가 눈에 띈다.

불현듯 미싱을 꺼내면 고치려고 했던 옷들이 떠올라 리넨 원피스와 운동복 원피스를 챙겨 들고 베란다로 향했다. 베란다엔 나만의 공간이 있다. 이 집에 이사 오면서 나만의 공간을 꼭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강했다. 오직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나를 위한 공간.

아이 둘을 연년생으로 키우면서 둘째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치열한 삶은 살았었다. 모든 워킹맘들이 그렇겠지만,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 아침 먹이고, 준비시켜 유치원에 데려다주고, 출근해서 일하고, 지친 몸으로 퇴근하며 유치원에서 아이 데리고 집에 돌아와 씻기고, 밥 먹이고, 재우고 나서 집 치우고, 청소하고, 세탁기 돌리고... 그 당시 나란 존재는 없었다. 그저 엄마와 아내와 며느리가 있었을 뿐.


아이들이 지독하게 말을 듣지 않는 날은, 커피 한잔을 타 뒷베란다 세탁기 앞에 쭈리고 앉아 마시며 많이도 울었다. 이젠 나에게 편안히 풍경을 즐기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베란다는 나에게 그런 곳이다. 오른쪽 붙박이장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원목판을 끼워 기다란 테이블을 만들었다. 2인용 벤치의자가 딱 들어맞는 아늑한 나의 테이블.

이 테이블에서 나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다. 비 오는 날은 비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고 싶을 땐 책을 읽고, 공부하고 싶을 땐 공부를 하고, 또 오른쪽 붙장이 상부장을 열어 보관된 미싱을 꺼내 미싱을 하기도 한다.

오늘 테이블의 용도는 미싱이다.


브이넥 원피스인데 넥이 너무 많이 파여 앞부분을 줄였더니, 옷을 입을 때마다 넥 부위에 화장품이 묻는다. 그래서 어깨 부위에 지퍼를 달아 입을 때 목 부위를 넓혀 주고, 운동복 원피스도 목이 너무 타이트해 넥 홀을 더 크게 만들고 시보리를 덧댈 생각이다. 윗실과 북실에 흰색실을 끼우고 어깨 단을 뜯어 지퍼를 연결한다.

'도드드드드드'

매력적인 그 소리가 지나가면 균일한 간격으로 박힌 실로 인해 옷은 새 생명을 얻는다. 운동복도 목 시보리를 뜯어내고 넓혀 미리 준비해 둔 다른 시보리를 덛댄다. 운동하기 한결 편한 옷이 탄생했다. 천조각에서 옷이 된다는 건 엄청한 창조 과정이다. 이래서 나는 미싱이 좋다.


문득 모든 힘들고 불편한 일들도 미싱으로 '드드드' 박아 다 다시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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