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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재의 쓸데없는 참견

카페직원

by 잠잠하게 Jan 25. 2025

회사 내부에는 카페가 있다. 장애인을 고용하는 회사라서 직원들 중에는 몇 명의 장애를 가진 직원이 있다.  귀가 조금 어둡거나 말을 어눌하게 한다.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겉으로는 장애를 알 수 없다. 관리자들은 점장과 부지점장으로 되어있는데 이들은 장애가 없는 분들이다. 카페가 다섯 곳정도라 매장에 점장과 부지점장들이 한 명씩 있고 전체 직원들은 로테이션으로 근무한다. 참고로 모든 직원들은 젊다.


매일 커피를 마시는 카페인 중독자인 나는 카페 직원들을 관찰한다. 그들의 행동, 말투를 통해서 그들의 성격도 가늠해 본다. (물론 속으로 혼자)

가끔 새로운 신입직원들을 무섭게 혼내는 관리자들을 볼 때면 ‘사회생활이 쉽지 않지’ 하며 공감하다가도 조카 같은 아이들이 힘들 것 같아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마 이것은 우리 아이들도 알바를 할 나이가 되면 그들처럼 ‘야생의 거침’을 늦게 깨닫게 될 텐데 하며 미리 걱정을 하는 아재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내가 자주 이용하는 카페에서 만나는 두 부지점장 A, B가 있다. 둘 다 여자고 A는 웃는 상 B는 똑 부러진 스타일이다. A는 웃는 상이라 사람들은 그녀를 이미 다 안다. 웃으며 친절한 사람을 어떻게 기억 못 하겠는가? B 역시 친절하다. 목소리가 크고 시원시원하다. 주문을 받는 속도와 응답이 빠르다. 내가 보기에는 일을 수행하는데 둘은 별차이가 없다. 메뉴얼데로 커피 주문을 받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하루 1000잔 이상의 주문을 잘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만일 사장이라면 A여직원을 뽑을 것이다.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녀는 다시 방문하게끔 만든다.

그러면 나는 왜 B를 뽑지 않을까?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B는 내가 방문할 때 장애 사원들에게 호통치는 모습을 자주 보여주었다. 존댓말을 쓰며 가르치는 말투가 고압적이었다.  “OO 씨 이렇게 하는 거예요? 아니에요? OO 씨 이렇게 하면 돼요? 안 돼요?”하며 존댓말로 실수를 지적한다. 장애를 가진 직원들에게 따끔하게 말하는 게 규칙인지 모르겠지만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그렇게 딱 부러지던 B가 내가 샷추가를 해달라는 주문을 두 번이나 놓쳤다(샷추가는 공짜). 나는 연이틀 샷추가가 안된 아메리카노 받으며 그 직원의 실수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그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니니 다시 대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B가 씩씩하게 자신감을 가지고 일을 하지만 내 눈에는 실수가 가끔 보인다. 아마도 빨리빨리 주문을 처리하다 보니 종종 그런 일이 발생하는 듯하다. 모르긴 몰라도 조금의 완벽주의적 성향을 가지지 않았을까 마음속으로 생각해 본다.


B가 실수를 해서 내가 A를 선택한 것은 아니다. A를 선택한 이유는 진정성의 차이다. A는 다정다감하게 불편한 게 없느냐고 묻고 뜨거우니 조심하란 말도 건넨다. 반면 B는 거의 기계적인 멘트가 연달아 나온다. 자동 반사적으로 친절이 기계화된 목소리로 일을 처리한다. “뭐 드릴 까요? 네. xxx주문받았습니다. 태그 해주세요. 번호표로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이 문장들이 3초가 안 걸린다. 주문을 빨리 처리하기 위해 최적화된 장인처럼 보인다.

A든 B든 나는 그분들께 크게 불만은 없다. 하지만 인간사 모든 게 연결이고 교감인데 특히 장사에서는 특히 고객 소통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방문하게 만들어야 장사의 영속성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장이라면 하루의 매상보다 장기 매상을 유지해 줄 수 있는 A직원을 임금을 더 주고서라도 뽑는 이유다.


바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중요한 걸 놓치고 산다. 효율보다 중요한 인간적 소통과 여유가 사라지고 있다. 나도 그렇다. 여유 있다고 생각한 적이 별로 없다. 잠시만의 공백을 참을 수 없어 스마트폰을 열어 세상을 구경하고 있다. 잠깐의 쉼 없이 돌아가는 기계는 수명이 빨리 닳는다. 인간도 다르지 않다. 쉼 없는 삶은 대가 지불을 요구한다. 커피 1000잔의 성과보다 적당한 소통과 여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감이 더 가치 있는 시대가 올 지 모른다. B분께 특별히 감정이 있는 건 아니다. 그저 힘을 좀 더 빼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재의 쓸데없는 마음속 참견이었다. AI시대에 이제 기계와 소통할 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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