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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28. 2022

이젠 행복하기 위해 살자







엄마가 재혼 한 이후로, 편안하게 집이라는 공간을 느껴본 기억이 없다. 아빠의 기분과 컨디션에 따라 그날 집안 분위기가 크게 좌지우지되었고, 엄마와 아빠가 아주 작은 사소한 일에서도 양보를 하지 않아 싸움으로 번져 매일 쥐 죽은 듯 조용히 지내야 했다. 엉망진창인 상태로 삐그덕거리며 하루를 보낼 때마다 당장이라도 폭탄이 터질까 무서워하며 살았다. 매일 반복되는 지긋지긋한 싸움은 날이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면서 다른 집에게 피해가 갔다. 새벽이 되면 아니, 엄마와 아빠가 마주칠 때마다 언성을 높였고 매일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로 나와 동생의 비명이 가득했다. 비명을 지를수록 아빠의 눈빛이 거칠고 날카롭게 변해 당장이라도 죽일 듯 달려와 우리를 위협했다. 눈빛으로, 몸짓으로. 매일이 힘겨워 하루가 시작되지 않기를 바랐다. 하루는 둘이 싸우다 힘에 부친 엄마가 날 불러 아빠의 폭력과 폭언으로부터 방패 삼아 막은 일이 있었다. 무릎을 꿇고 울면서 살려달라고 하자 아빠 감정이 격해지면서 내가 언제 죽이기라도 했냐는 말로 공포감을 주었다. 너무 무서웠다. 날카롭고 당장이라도 찢어 죽일 듯한 눈빛이 어린 내가 감당하기 너무나 벅찼다. 그럼에도 엄마는 내가 느끼는 감정을 무시하며 할머니가 자신에게 창녀라고 했었던 일을 말하라고 강요하면서 무서움에 떠는 날 사정없이 때려 입을 열게 했다. 창녀, 아빠가 엄마를 향해 유리문을 부수고 마당에 앉아 피 흘리며 담배 폈던 그 아찔한 그 순간, 그날을 이야기하라고 했다. 엄마의 매질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이야기하자 아빠가 온갖 욕을 울 모녀에게 던지며 분에 못 이겨 이리저리 움직였다가 빠르게 발을 움직여 다가와 내게 한 말이 있다.


씨발, 그래, 너네 모녀는 내가 좆같지? 어? 그러니까 둘이 짜고 나한테 이 개 같은 지랄하는 거잖아!!!


그때 내 눈을 마주했던 아빠의 눈빛에서 살기가 느껴져 온 몸이 떨려왔다. 내 말에 대한 믿음 따위 없다. 그저 내가 할머니를 없는 말로 모욕하고, 악담한다고 생각해 내게 겁을 주자 난 욕설에 주저앉자 그저 빌어야 했다. 잘못했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이 고통에서,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양보 없이 일어난 싸움 가운데 껴 살기 가득한 저 눈빛과 온갖 물건을 부수는 모습을 보니 당장이라도 날 죽이지 않는 것이 이상해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처절했다. 내가 처절하고 공포에 떨수록 내 공포를 삼키며 아빠의 힘은 더 강해졌다. 엄마는 자신이 당한 모욕이 중요했지 두려워 떠는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자신이 남편의 엄마에게 창녀라는 말을 들었음을 입증하라고 강요하라고만 할 뿐이다. 하루가 버거웠다. 아침이 되면 아이들의 눈치와 오해를 받으며 괴로웠고, 밤이 되면 엄마가 난리 쳐 아빠의 분노로 하루의 끝을 느낄 수 없었다. 장소가 바뀔 뿐, 하루는 끝나지 않았다.


하루는 엄마가 어느 부분에서 아빠에 대한 불평이 생긴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온 가족이 엄마 때문에 잘 수 없었다. 새벽에 들어와 텔레비전 소리를 40까지 키워 새벽 5시에 출근하는 아빠를 괴롭혀 온 동네가 시끄러웠다. 제발 이 싸움을 멈췄으면 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 방 문을 잠그고 소리 없이 통곡해도 나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았다. 분노에 못 이겨 아빠가 내 방 문고리를 잡고 사정없이 흔들고 있었다. 나오라고 소리치는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내 고막에 퍼졌다. 아빠의 반응에 엄마는 날 무기로 세워 나오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고 나오면 너부터 죽는 거라고 아빠 등 뒤에서 외치고 있었다. 이렇게 살다가 내가 먼저 죽을까 봐, 엄마나 아빠에게 그냥 이유 없이 뜯겨 죽을까 겁이 나 핸드폰에 있는 반 친구들에게 문자로 하루만, 아주 잠깐만 내가 도피할 수 있게 해 달라는 연락을 남겼다. 처절함과 간절함으로 남긴 연락은 무응답 혹은 거절의 답이었다. 안다 또, 원망하지 않는다. 이 아이들이 나에게 그런 시간을 줄 만큼 나와 어떠한 관계성이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그 마음을 알지만 내가 처한 상황에선 어쩔 수 없는 방법이었다.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 있다. 아빠가 죽었으면 좋겠다. 엄마가 멈춰줬으면 좋겠다. 내가 숨 쉴 수 있었으면… 하며 간절히 바라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매일 그렇게 무서움과 슬픔으로 한 없이 위축되어 가면서 집이 엉망일수록, 불안정의 나날이 계속될수록 나는 깊은 바다에 빠져 허우적거릴 힘조차 상실하고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싸움에 지쳐 엄마와 아빠와의 대화를 거부했고 말을 걸어와도 대답하지 않았다. 침울함과 무기력이 강해질수록 방을 더 깊게 잠가놓고 열쇠를 버리며 점차 그렇게 세상과 단절을 했었다. 내가 단절해도 세상은 너무나 잘 흘렀고 여전히 엄마 아빠의 격한 싸움은 끝이 없었다. 자신들 때문에 또다시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게 따스한 손길을 내밀어준 적은 없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한 달이 되고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을 때, 아빠가 또다시 폭주하고 있었다. 엄마와 나, 동생에게 수치심을 주고 우당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또…. 저러네 하고 말았다. 어떠한 감흥도 없었는데 동생이 저 멀리서 기어와 내 방으로 도피했다. 내 얼굴을 보자마자 꾹 참아왔던 울음을 터트리며 무섭다며 살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서 ‘이건 아니야’ 싶었다. 아빠가 무서워 울면 자신을 또 때릴까 봐, 그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위협할까 봐 도망쳤다는 말에 내 가슴이 아려왔다. 동생의 방에서 내 방까지 힘들게 기어 온 것은 아빠 눈에 띄면 어떻게 할지 몰라서 그랬다는 말을 하며 아빠가 엄마를 때리는 모습을 봤다는 말에 나는 억장이 무너졌다. 나는 지키지 못해도 동생만큼은 최대한 좋은 것만 보고, 좋은 소리만 들으며 행복까진 아니어도 나보단 덜 불행하길 원했다. 나는 이 모든 상황과 장면에서 이용당했을 때, 나는 괜찮다 라 생각한 아이 었다. 그러나 동생이 기어 오며 터져오는 눈물을 꾹 누르다 날 보고 터져 나오는 눈물에 나 역시 가슴으로 울었다. 동생을 보고 애써 무너지는 심정을 잡기 위해 숨을 마셨다 크게 내쉬며 핸드폰 녹음을 켜 방문 밑 틈으로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담았다. 아빠의 욕설과 우당탕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부터 엄마의 비명까지 다 담아두고 카톡, 이메일 등 백업할 수 있는 곳에 죄다 백업한 후 방에 나와 소리 질렸다.


“그만!!!!!! 그만하라고!!!! 내 말 안 들려? 그만하라고 했어!!!!”


나는 어떤 힘이 생겨서 이런 용기가 났을까 라는 질문에 그땐 잘 몰랐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동생이 처절함으로 기어 먼 내 방까지 왔을 때 심정을 너무나 알기에, 그게 어쩜 내가 느꼈던 감정이었기에 거울처럼 똑같아서 그랬다. 내 고함에 전부 멈췄다. 소리를 따라 아빠가 고갤 돌려 날 발견해 올렸던 손을 재빨리 내렸다. 아빠가 날 어떤 시선으로 보던 상관없다. 난 동생을 지켜야 하고 하늘이 무너진 듯 우는 엄마를 감싸야겠다는 정의감에 불타 ‘너 뭐라고 했냐?’ 물음에 단호하게 말했다.


“나가.”


짧은 두 음절로 분위기가 달라졌다. 차갑고 싸늘히 무엇인가 멈춰진 느낌이 들었다. 내 말에 어이없어하는 아빠가 재차 물어봤고 똑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내 말 안 들려? 나가라잖아, 그만하고 집에서 나가라고!!” 30분 동안 아빠에게 강압적으로 나갈 것을 명령했다. 아빠는 평소에 말 한마디 하지 않았던 내가 단호히 말하는 모습에 놀라 당황하면서도 지기 싫어 나와 대치했다. 끝까지 단호함을 잃지 않고 나가라는 말을 반복하니 아빠가 어쩔 줄 몰라하면서 나갔다. 그제야 온몸에 준 힘이 빠져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사실 그 말을 하는 나는 정말 공포스럽고 두려웠다. 그럼에도 강하게 나온 이유는 동생이 기어 오는 모습이 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이 아빠가 나감으로써 잠시 조용해지면서 차분해졌다. 엄마는 엉망진창의 모습으로 침대에 앉아 흐느끼고 있었고 동생은 무서워 방에서 나오지 못했다. 5분 정도 지나서야 힘없이 풀려 주저앉았던 몸을 일으켜 동생을 다독여주고 엄마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안아줬다. 등을 토닥이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우리 그동안 정말 힘들게 살았어. 너무 아프고 매일이 불안해하며 지냈는데…, 이제는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 살면 안 될까? 아빠랑 이혼하고 우리끼리 서로 다독여주며 살자. 아빠 없이 살면 분명 많이 힘들 거야 그렇지만, 우리끼리 뭉쳐서 지내면 이렇게 사는 것보다 나아. 무슨 말인지 알지? 나도 난데, 아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 그렇게 하자.


엄마의 시선이 나에게 잠시 머물렀다 동생에게 향했다. 아직도 두려움에 바들바들 떠는 동생을 하염없이 보던 엄마가 알겠다며 고갤 끄덕였다.

엄마가 그리도 괴로워하면서, 결혼생활이 버거우면서 아빠에게 집착하는 큰 이유는 미혼모로 지내온 시간들 속에 자신의 엄마와 언니들 그리고 동생들에게 남편 없다는 무시가 견디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남들의 시선도 힘겨워 아빠가 폭력을 휘둘려도, 자식들이 불안을 안고 살아도 남편 없이 사는 것보단 나을 거라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워서라는 것을 난 알고 있었다. 그래서 행복하기 위해 이혼이라는 선택을 권했을 때 대답해준 엄마에게 고마웠다. 이제는 정말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 힘들어도 서로를 의지하면서 적어도 아빠가 없는 시간 동안 잘 지낼 수 있음을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엄마의 그 대답이 우리의 숨통이 틔였다. 엄마에게 고맙다고 말하면서 더 세게 안아주면서 등을 토닥이자 숨어 울던 동생이 엄마 품에 뛰어 들어와 안겼다. 동생을 꼬옥 안아 엄마는 놀랬지?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보며 우는 동생을 다독였다. 그렇게 하루가 정리되고 다음날 억울하고 분함에 아빠가 짐 챙기겠다는 이유로 다시 쳐들어와 엄마에게 또다시 욕설을 뱉었다. 아빠의 그림자만 봐도 동생은 숨을 쉬지 못하고 공황상태에 빠졌다. 남자, 남편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위협 주는 지긋지긋한 행동에 한숨을 쉬고 다시 녹음 켜놓고 또다시 아빠 앞을 가로막았다. 오늘은 당하지 않겠다는 듯 내 몸을 구석으로 밀쳤다. 밀치는 과정에서 아빠의 손이 이상했다. 아빠의 손이 내 가슴에 향했고 손가락조차 구부리고 있어 누가 봐도 내 가슴을 티 안 나게 쥐었다 몸을 밀치고 있었다. 상황을 정리하기 위해 있지만, 무언가 아빠가 계속 내 몸을 성추행하고 있단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온몸에 힘이 무의식 중에 들어왔다. 무서움과 불쾌감, 맞아 죽을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고 애처 모르는 척하며 그렇게 다섯 차례 내게 수치심을 안겨주고 아빠는 짐 들고 집을 떠났다. 완전히 대문을 벗어난 소리를 듣고 온 몸에 들어간 힘을 뺄 수 있었다. 그 후엔 내가 녹음한 것들을 가지고 동사무소와 경찰에 신고하면서 우리는 힘든 시간을 잘 견뎠다. 갑자기 끊어버린 아니, 애초에 생활비를 주지 않아 힘겹게 지냈던 날들과 다르게 사정이 알려지면서 나는 인터넷으로 후원을 받았고 200만 원 정도 모여 그동안 먹지 못했던 것, 입지 못한 불편함을 해소했다.


후원과 별개로 동사무소에서 구청을 연결해줘 구청 직원이 조사 나와 긴급복지 생계지원을 받았고 긴급 생계비 기간이 끝난 후엔 기초수급과 차상위를 동시에 신청해 최대한 해택 받을  있도록 구청에서 많은 도와주셨다. 동생은 그동안 학대로 인해 힘겨웠음을 아동기관에서 상담과 보호로   있었다. 아동학대로 사건이 넘어가지면서 아빠와 기관이 연락이 닿아 동생의 상태를 전했을  우리가 전화할  절대  받던 사람이 자신이 언제 학대했냐고 따지는 전화를 우리에게 했다. 그럼에도 우린 단호했고 확실히 하고 싶었다. 기관과 구청으로부터 아빠와 동생이 격리되어 동생은 편안해 보였다. 혹시 몰라서 나는 법적으로 도움받을  있는 방법을 알아보면서 경찰과 사건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아빠가 없는 우리 집은 생각보다  평화롭고 조용했다. 엄마가 나는 뒷전으로 두고 동생에게 잘해줘도 나는 상관없었다. 잠시라도 오는 안정감을 온전히 느낄  있어 좋았다. 그렇게 매일 시끄럽고 싸움이 끊임없던 집이 고요하고  이상 불안을 느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풀렸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돌변해  잡기 시작했다.  그래도 입시공부로 매일 30분씩 자는  잡고 새벽 내내  따위가 뭔데 이혼하라고 하냐며 처음엔 밤에 잠재우지 않았다. 3일이면 3, 고문이 따로 없었다. 공부도  하게 하면서 싹수없게 감히 네가 이혼을 들먹이냐고 괴롭혔다. 그것으로도 분이  풀렸는지 낮엔  머리채를 잡고 밖으로 끌고 나와 때려 엄마 때문에  수명이 줄어들겠구나 싶어 보호기관으로 도망치고 싶었다. 중학교 다닐 때도 퍽하면  머리채를 잡고 끌고 집으로 들어와 하드  표지가 있는 동화책으로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친 날들이 있었는데 그때와 전혀 다른 패턴으로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수치와 폭력에 내가  집을 떠나는   빠르고 안전하겠다 싶어서 보호기관을 알아봤지만, 당시 보호기관이 내가 가진 사정과 상관없이 무조건 부모에게 연락해 아이를 다시 데려가게 한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나는 어떠한 것도   없고, 매일 이렇게 아파야 하는구나 싶어 삶을 놓고 싶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구나 싶었다.


다시 무력감을 빠져 영혼이 빠진 아이처럼 학교를 가고 집에 오면 울기를 반복했다. 가만히 하늘만 봐도 죽고 싶어 내 의지 상관없이 울고 또 울었다. 버스를 타도, 버스에 아무리 사람이 많아도 세상에 나 혼자가 된 것 같았다. 나만 빼고 다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보였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다 갑자기 한동안 큰 이모가 우리 집을 정리해주고 밥도 해놓고 가는 등 이상한 행동을 했는데 죽을 상을 하고 방에 들어가 우는 모습을 보더니 손가락질을 하며 쓸모없는 애라는 말과 욕을 해 내 마음에 또다시 스크래치가 났다. 엄마도 지켜주지 않는데 과연 이모라고 다를까. 엄마가 날 괴롭히던 시점부터 아빠가 집을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온 아빠를 볼 때마다 동생은 또다시 바들바들 떨면서 구석에 숨었다. 허탈하더라. 나와 그렇게 약속하고 마음이 풀리니 아빠가 집에 오는 것을 쉽게 허락하고 이혼을 이야기한 날 미친 듯이 괴롭혔다는 사실 자체가 또다시 날 무력감에 밀어 넣었다. 그렇게 내 우울이 깊어지고 매일 몇십 번씩 이유를 모른 채 우는 내 모습이 안쓰러워도 어떤 힘조차 쓸 수 없어 오늘도 찾아온 아빠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통곡했다. 그리고 간절하게 애원했다.


나를, 날 정신병원에 넣어 다시는, 이 세상에 다신 나오지 못하게 제발 그렇게 해줘. 나 이러다 죽을 거야 날, 가만히 두면 내가 어떤 짓을 할지 나도 모르니까, 제발.. 정신병원에서 절대 못 나오게 해 줘.


통곡하고 또 애원했다. 3시간 동안 이 세상에 없는 애처럼 넣어서 다시 나오지 못하게 해달라고 빌었다. 빌고 또 빌어봐도 내 마음은 닿지 않았다. 너는 정상인데 그런 곳을 왜 가냐며 나를 단칼에 거부하고 집을 나섰다. 그렇게 애원해도 통하지 않으니 공허했다. 이 집이 죽도록 싫었다. 엄마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나에게 삼천 원을 던져 줍게 했던 일도, 내 머리채를 잡아끌고 나오는 것도, 또다시 아빠와 살아서 불행 속에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동공이 풀려 초점을 잃었다.

대학을 가면 이들에게 벗어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매일 포크를 들고 졸 때마다 허벅지를 내리찍어 피멍이 들어도 멈출 수 없었다. 많이 자면 최대 1시간, 보통 30분 자고 일어나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굶기 일쑤였던 날들이, 남은 시간은 모두 공부로 쏟아냈을 만큼 간절한 소망도 부모가 반대해 대학도 갈 수 없었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단 한 가지도 없었다.


21살, 나는 매일 높은 빌딩 위 옥상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고, 숨을 쉬지 못하는 등의 극심한 공황장애와 불안장애, 우울증으로 대학병원에서 치료받았다. 매일 밤이 되면 발작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새벽에 눈 뜨고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랑 똑같이 생긴 ‘나’지만 내가 아닌 아이가 저 멀리서 나에게 손목 긋는 방법을 알려줘 제정신으로 살 수 없었다. 하루가 지옥과 같았다. 내가 정신과에 다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엉망이 되어버린 내 상태를 보고도 부모는 내 탓을 하며 날 궁지로 몰아넣으며 괴롭혔다. 엄마는 내 상태를 가지고 아빠에게 돈을 달라 요구하는 심부름을 시켜놓고 발을 빼 자신이 조종한 게 아닌 온전히 내가 한 일처럼 만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 말에 실제로 엄마 아빠가 가정법원에서 조정기간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다 조정기간 중 사이가 좋아져 엄마가 엄한 날 잡았다는 사실이다. 사이가 좋아지면 좋아진 것이지 왜 날 잠을 재우지 않았다가 머리채를 뜯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엄마에게 대체 무엇이었을까. 엄마의 슬픔에 무서워도 나서서 지켜냈던 나에게 이래도 되는 것인가. 나는 가족의 어떤 존재도 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내 간절함, 처절함이 닿지 않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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