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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22. 2022

엄마와 나 그리고




이번 이야기는 외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어릴 적부터 묘하게 나는 공격의 대상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 이야기를 들었던 심리상담가는 황당하면서도 어이없어하는 내색을 감추지 못하셨다. 상담 선생님이 그런 반응을 보이고 믿을 수 없다는 말투로 한 질문에 나는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남았다.



어른이라는 사람들이 그렇게 했다고요? 정말 아무도 사실여부를 먼저 따지지 않고 맹목적으로 욕부터 했었어요?



나는 이모들과 삼촌에게 받은 상처가 정말 많다. 나를 공격하는 이유는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하나는 엄마가 나에 대한 이야기를 안 좋게 말하고 다녔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그냥 엄마가 싫어서.

나는 엄마 때문에 나와 상관없는 잘못으로 수 없이 욕을 먹고 비난받으며 살아왔다. 엄마는 어딜 가도 누구랑 꼭 트러블이 생겨 큰 싸움을 하는 싸움닭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항상 맹목적으로 사람을 공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본인 기준으로 나름 합당한 이유를 혼자만 간직한다. 이런 엄마 때문에 가족, 친구뿐만 아니라 주변 모든 일들이 괴로움을 호소할 때가 많다. 엄마가 던진 막말과 분노를 영문도 모른 채 받은 상대는 황당하다 감정을 지나 이렇게까지 막대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 있는데 엄만 혼자 화내고 공격하다 마음이 풀리면 상대방이 받은 상처와 상관없이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한다. 당연히 엄마의 그런 패턴이 상대와 엇박자가 난다. 이 엇박자로 피해 보는 사람은 항상 ‘나’


외할아버지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할아버지가 집안의 기강을 꽉 잡고 계시기에 개싸움을 하는 일이 없었다. 당장 불만이 생겨도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고 정말 큰 문제가 생기거나 문제가 될 것 같다 싶음 할아버지가 나서서 동등하게 대하시면서 모든 것들을 컨트롤하셨다. 그러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심과 동시에 쌓여 온 분노와 상해버린 감정, 가족 안에서도 수직관계로 외가족들은 서로 삿대질을 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삼촌은 모든 이모들과 트러블이 심했는데 눈에 도드라지는 관계는 엄마와의 관계였다. 엄마는 정말 삼촌의 모든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것을 어린 내가 봐도 알 수 있을 만큼 내색을 많이 하셨다. 젊은 날에는 게임으로 청춘을 보낸 삼촌이 한심하다며 밤새 게임하는 것부터 모든 것에 태클을 걸었다.


이 태클에 분노의 화살은 당사자인 엄마가 아니라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쏟아졌다. 나의 말투부터 행동 모두 지적하면서 사촌들 앞에서 차별과 면박을 주어 난 항상 수치심을 느꼈다. 내가 엄마 대신 분노의 화살을 받는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지만, 딱히 말리거나, 다독여주거나 하는 이 없었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엄마에 대한 분노를 나에게 풀었기 때문이었다. 아직까지도 대체 왜 엄마의 희생양으로 살아야 했는지 모른다. 엄마도 분명 자신 대신 자식이 모든 욕받이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 못 본 척. 일어난 일이 아닌 척하며 눈을 감았다.


엄마와 삼촌의 갈등 골이 깊어져 이제는 회복이 불가능하다 여겨진 사건이 있었다. 이때가 아마 초등학교 6학년에서 중학생으로 넘어가던 시기로 기억한다. 삼촌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결혼을 약속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숙모가 만삭으로  할머니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엄마가 극대노를 하더니 냅다 소리치고 삼촌 얼굴에 막말을 퍼붓고 집에 돌아와서까지 삼촌과 전화로 싸웠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간 이후로 시간이 흐른 만큼 갈등이 심해지더니 이때가 가장 극심했던 것 같다. 화내고 막말하고 욕하면서…, 정말 길고 긴 싸움을 하니 미칠 지경이었다. 엄마는 삼촌 언급만 나오면 노발대발하다 울었고, 그 모습을 보는 내 마음이 좋지 않아 어떻게 하면 저 슬픔의 무게를 내가 덜어줄 수 있을까 매일 고민했다. 아무도 엄마의 편이 되어 주는 사람 없었고 엄마, 혼자만의 싸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숙모가 만삭의 몸으로 할머니 집에 들어와 살면서 아이를 낳고 엄마를 제외한 모든 가족들이 숙모에게 잘해주려고 많은 노력을 하고 마음을 다독여주기도 했다. 외할머니가 그렇게 누군가에게 정성을 쏟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살면서 처음 보고 느꼈을 정도이다. 삼촌과 관련된 가족 대 이벤트에 엄마만 빠지고 언급도 질색해 가족들이 엄마 때문이라도 더 최선을 다 하는 모습을 보니 엄마가 단단히 화 나 있었다. 나중에 엄마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던 감정의 골이 무너지면서 삼촌과의 관계가 서슴없어지고 감정이라는 땅이 평평해졌을 때, 그렇게까지 화를 내고 가족과도 연락을 최소한으로 했던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줬는데 정말 황당했다.


나보고 나와서 인사하라는 말이 되니? 굴러온 사람이 먼저 와서 인사해야지!


삼촌이 나와서 숙모에게 인사하라는 말에 화가 나, 몇 년을 냉전 상태로 서로 물어뜯었다니… 한숨이 나온다. 서로 물어뜯은 동안 상관없는 나는 엄마의 딸이라는 이유로 새우등이 터졌던 사건이 있었는데 말이다. 때는 중학교 2학년으로 기억한다.



오늘도 어김없이 엄마가 삼촌에게 막말을 하며 차갑게 대하니 가운데에서 난처했다. 어떻게 내가 숙모의 연락처를 알았는지 기억은 안 나는데 아마 어렴풋이 기억하는 조각을 꺼내면 당시 외가족이 단체로 통신 다단계에 빠져 핸드폰을 바꾸고 영업 뛰고 다닐 때로 여겨진다. 나는 엄마와 별개로 외가에 자주 드나들고 숙모와 자주 이야기했었다. 그것까진 엄마가 터치하지 않아서 숙모가 아이 낳았을 때도 병원에 가고 했었다. 그래서 엄마는 미워도 나는 괜찮았는지 연락처를 알려줬었던 것 같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카톡으로 나누다, 엄마와 삼촌이 싸우는 모습 보니 숙모한테 괜히 미안해서 밖으로 나와 숙모에게 엄마가 삼촌에 대한 마음이 깊은데 지금은 화가 많이 나 있어서 그런 거니까 숙모가 조금만 이해해달라는 카톡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지나면 다 괜찮아질 거라는 말과 함께.

내가 숙모에게 미안할게 뭐 있겠나 싶겠지만 누구보다 엄마의 그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엄마가 저리 화내는 이유는 삼촌을 위해 자신이 희생한 시간과 엄마가 생각했을 때 어떤 면에서도 잘 해낼 수 있는데 그만큼을 하지 못했다는 실망감 때문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그렇게 말했었다.



그 후에 고작 10분이 지났을까? 갑자기 집전화가 미친 듯이 울리더니 엄마가 갑자기 밖에 있는 날 급하게 호출하더니 나를 바꿔줬다. 전화를 여보…, 세.. 까지 하다가 냅다 들은 말은 쌍스러운 욕설이었다. 심지어 누가 나에게 욕했는지 알아차리지도 못하고 분노에 가득 찬 욕설을 막 듣고 어떤 말을 하지 못 하게 막았다. 어리둥절하고 무섭다는 생각이 가득한데 그렇게 전화 한 통이 끝나니 다른 사람이 전화를 해 엄마가 ‘받아봐.’ 짧은 말을 하곤 안방으로 사라졌다.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으니 또 다른 사람이 무차별적인 욕설을 하며 나에게 절대 지워지지 않을 말들을 남기고 끊었다. 그렇게 나는 1시간가량 영문도 모른 채 외가족들에게 미친년아 라는 등의 소리와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들었다. 삼촌네 식구만 빼고 이모들만 전화한 게 아니라 외할머니까지 전화로 나에게 수없는 욕설을 하고 화를 냈다. 울고 싶어도 대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울먹거리는데 엄마가 다가와 네가 니 무덤 판 거라는 말을 하며 이 전화들이 어째서 나에게 향했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욕설을 했는지 설명해줬다.



가족이라는 사람들이 나에게 대뜸 1시간 넘도록 욕한 사건의 경위는 내가 숙모에게 연락해 삼촌의 전 여자 친구, 전전 여자 친구 등의 삼촌 연애사를 시시콜콜 이야기해서.

이게 이유라면 나는 너무 억울했다. 난 삼촌의 연애사에 관심이 아예 없고 전 여자 친구, 전전 여자 친구가 숙모인 줄 알고 있었기에…, 심지어 나는 엄마 때문에 단 한 번도 삼촌과 사이좋게 지낸 적이 없다. 다른 사촌들이 삼촌에게 선물 받았을 때, 일부로 내 선물만 준 적도 없으며 나를 싫어하고 항상 경멸에 찬 눈으로 바라보는 이런 사이에 내가 삼촌이 누구랑 연애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말이 안 되는 이유라는 것을 엄마는 알면서 안방에서 끊임없이 내게 오는 비난의 전화를 받도록 방치하고 지켜봤다. 나는 이유도 몰랐고, 내가 왜 그런 전화들을 받아야 하는 것인지, 설명하거나 진짜 내가 삼촌의 연애사를 숙모에게 말했는지 따지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내가 엄마 때문에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며 숙모에게 미안하다고 한 카톡이 삼촌의 연애사 이야기로 나도 모르는 사이 바뀌었고, 엄마를 정말 싫어한 엄마의 바로 아랫 동생인 이모와 삼촌의 합작으로 할머니부터 이모들 모두 정말 내가 그렇게 말했는 가에 대해 묻거나 증거를 보지 않고 당사자인 숙모와 삼촌만 뒤에 꽁꽁 숨어 모두가 날 조리돌림 하는 것을 막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엄마도 똑같이 나쁜 사람이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전화를 넘겨주고 내가 욕 듣는 동안 아무런 조치도 해주지 않았다. 내가 삼촌의 연애사를 아예 모른다는 것도 알면서 어떠한 보호도 하지 않은 그 이윤, 체벌의 개념에 가까웠고 당해봐야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닌 이들이 나쁘다는 것을 증명하면서 엄마의 편에 전적으로 들어주길 바라는 심리였다. 나는 이 조리돌림으로 한동안 악몽까지 꾸고 삶의 가치에 대해 생각까지 할 정도로 괴로워했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이 일에 대해 어떤 사과도 받지 못했다. 아무도 나에게 미안한 마음 따위 갖지 않았고 당사자들은 죄책감도 없어 보였다.


삼촌은 항상 나에게 지적질만 하셨다. 고등학생 땐 희망하는 대학에 대해 너는 할 수 없다, 네 주제를 알아라 등의 막말을 해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매번 방해했다. 최근엔 현재 내가 뭘 하고 사는지 자꾸 물어보고 다닌다. 직업이 있다면 직업의 귀천을 따지는 사람이다. 사촌 중 가장 첫째 오빠가 결혼식을 올린 날, 왜 우울증으로 무기력하게 아무런 일도 못 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대답할 시간도 주지 않고 바로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너는 우울증에서 벗어나려고 운동을 하거나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그냥 무기력하게 누워 노력하지 않아서 우울한 거야, 나도 우울증 있었는데 그거? 별 거 아니야!” 삼촌이 그때 준 상처가 조각이 되어 내 우울증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냥 당장의 내가 일 하지 않고 아무것도 안 하는 무능력한 백수의 모습만 지적하면서 말이다.



엄마에게 감정이 안 좋은 이모가 있다. 삼촌과 작당해 나를 조리돌림 한 셋째 이모는 나에게 출생의 비밀을 이야기한 적이 있다. 아빠가 새아빠라는 것을 알고 결혼했어도 오랜 시간이 지나 가끔씩 흐릿해질 때가 있다. 아빠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하루라도 조용하게 넘어간 적이 없다 보니 기억할 시간조차 없었다. 매일 피폐한 현장 수습, 동생을 지켜야 하는 사명감으로 잊어갈 때 이모가 나를 붙잡고 너는 가족들한테 소외받는 이유가 있다며 엄청난 비밀을 간직하다 불합리한 이 상황을 견딜 수 없는 자칭 정의의 사도처럼 이야기해 엄마와 사이가 더 나빠지면서 난 그런 말을 듣고 왔다는 이유로 혹은, 괜히 할머니 집을 가서 그런 얘기를 듣고 왔다는 이유로 그날도 역시 먼지 나게 맞고 혼났다.



진짜 잊을 수 없는 그날.


그때 엄마가 아빠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무리해서 집 하나를 계약해 이제는 이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자랑을 하고 다녔다. 물론 무리해서 집 샀다는 말은 빼고 이제 자가로 산다는 말만 하고 다녔는데 이모가 엄마 잘되는 꼴을 정말 싫어해 어떻게 하면 타격을 줄 수 있을까 많은 고민을 했는데 만만한 게 ‘나’였나 보다. 교회로 가는 길에서 나를 마구 구박하고, 교회 도착해서 집중을 못한다면서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괴롭히다 갑자기 호의적으로 돌아가는 길에 차 태워 데려다준다고 차에 태워선 출발은 안 하고 나에게 막말을 막 하다가 한숨을 푹 쉬었다 엄청 뜸 들여 말하더니 지금 있는 네 아빠는 진짜 네 아빠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하더라. 잊어져 갈 때 이야기해 살짝 충격이긴 했지만 휘둘리고 싶지 않아, 알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굉장히 당황해하며 말을 더듬었다.


아…, 아, 알고 있구나.. 그, 그래..


그게 뭐 큰 일이냐는 반응을 하자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더니 할머니 집에 데려다주고 엄마에게 연락해 자신이 이런 이야기 했다는 말을 한 것 같았다. 할머니 집으로 돌아온 후에 엄마 전화가 불나게 울더니 무서워 안 받자 엄마가 온갖 협박을 하며 당장 집에 오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그 문자의 의미는 넌 와도 죽었고 안 오면 더 큰 벌을 받게 될 거라는 것이다. 내가 계속 모르는 척하려니 출생의 비밀을 말한 이모가 완전 울상이 되어 어쩔 줄 몰라하면서 도망치듯 자신은 집에 가야겠다는 말을 했다. 진짜 꼴 보기 싫은 이모다. 내가 끝까지 안 가려고 버티자, 당장 날 데리고 오지 않으면 가만히 안 있겠다는 엄포를 다른 이모들에게 했다. 다들 놀라 수군거렸고, 나는 결국 막내 이모부의 차를 타 집으로 강제로 가야 했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긴데 막내 이모부랑 친하지 않다. 단 한 번도 대화를 한 적도 없고, 말을 걸어본 적도 없는데 집에 강제로 끌려가는 동안 두 손으로 빌고 또 빌었다.


“저 집에 안 되려 가시면 안 될까요? 저 가면 진짜 죽어요…, 제발 살려주세요 네? 이모부 제발 부탁할게요, 저 진짜로 집에 가면 엄마가 저 죽일 거예요.” 이 말을 듣는 막내 이모부가 어쩔 줄 몰라했다. 한 번도 말을 터 본 적이 없는데 살려달라며 애걸복걸 자지러지게 우는 모습에 도와주고 싶어도, 자신도 어려워하는 윗사람의 명령으로 가는데… 엄마의 괴팍한 성격은 외가 식구들이 정말 못 말린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내가 불쌍하지만, 자신에게 불똥이 튀긴 싫었겠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모습으로 쩔쩔매면서 집에 도착하니 내가 벌벌 떨고 모습에 꽤나 충격으로 받아들인 것 같다. 평소 같으면 무서워 인사만 하고 갔을 텐데 나를 데려다주고 엄마에게 조심스럽게 한 말이 기억한다.


저…., 아무리 그래도 살살…., 너무.. 그, 뭐라고 하진 마세요..



그 말에 엄마가 날 한 번 째려보더니 굉장히 사람 좋은 미소를 하며 아무것도 안 한다고 말로 안심시켜 돌려보냈다. 이모부가 떠나자 매를 들고 날 때리고 3시간을 넘게 혼냈다. 그때 난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결혼식을 봤고 난 이 집에서 가족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이렇게 혼나고 맞을 일인가 싶었다. 설령 내가 진짜로 몰랐다가 알았다면, 놀란 것은 아닌지 확인하고 다독여야 하는 게 엄마라는 자리가 아닌가.



나는 늘 엄마와 외가족 사이에 생긴 일에 가운데 껴서 모든 질타와 비난을 왜 받았는지 정말 알고 싶다. 어른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아이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것인지 묻고 따지고 싶었다. 이 사건들 말고도 엄마 말만 믿어서 날 둘러쌓아 비난의 삿대질을 했었다. 너에게 있어 엄마는 어떤 존재냐고 대신 혼내기도 했다. 외가는 엄마를 싫어하면서 수없이 차별을 하면서 나에게 엄마 대신이라는 이름으로 희생시키면서도 엄마가 나에 대해 비난하면 함께 비난한다. 엄마 아빠에게 보호받지 못했는데 외가족한테도 특별할 것도 없다. 그들은 매일 나만 보면 외모와 몸에 대한 평가로 내 자존감을 깎아내리고 상처가 되는 말을 당연한 인사처럼 해왔다.


내가 이들에게 더 이상 실망할 것도 없을 거라는 믿음마저 깨트리고 나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말이 있다. 학대에 괴로워하며 엄마와의 연락을 일방적으로 피하면서 지낸 적이 잠시 있었다. 그때 정말 미운 정까지 싹 다 떨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여러가지 방법으로 나의 해리장애를 병원에서 치료하려고 할 때, 막내 이모에게 직접 엄마가 나에게 했던 학대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외가족이 너무 과하다며 말릴 정도로 엄마는 날 심하게 체벌하고 혼나는 모습을 봤으니 어느 정도 짐작할 거라 믿었는데, 막내 이모는 하나도 몰랐다며 놀라 뒷 말을 잇지 않다가 “네가 때가 돼서 결혼하고 아이 낳으면 엄마가 그랬던 거 이해될 거야. 지금은 안 돼도 그땐 그럴 수밖에 없었던 엄마의 심정을 이해할 거야.”라는 어처구니없는 말로 나를 설득하려는 모습에 질겁했다. 뒤이어 나온 말에 더 이상 이딴 사람들과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있는 것이 나에게 더한 지옥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그렇게 맞고 아프고 한 건 정말 안타까운 일이야. 하지만, 한 번만…, 진짜 한 번만 엄마의 삶을 다시 생각해주면 안 되겠니? 엄마 말고 여자로 살아온 엄마의 삶을 말이야… 안쓰럽잖아, 그렇지? 나는 이렇게 네가 아팠다는 거 들었지만 안 들은 거야, 난 그냥 모르는 척할게.


엄마가 아닌 여자로서 살아온 삶을 보고 안타까워하면서 참아달라는 막내 이모에게 정말 질려버렸다. 이 모든 말이 폭력적으로 들려 더 잔인했다.


시간이 많이 지나 끌려다니듯 엄마와 연락을 주고받았다.

주로 내용은 엄마의 일을 도와달라는 내용과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하는 것들이었다. 아주 가끔, 코스트코 초밥 셔틀 정도? 나에게 매일같이 전화해 아빠 또는 외가 식구들이 자신에게 하는 차별과 대우에 대한 불만을 2시간, 3시간 넘도록 시간 상관없이 자신의 분이 풀릴 때까지 이야기하다 끊는다. 전화를 못 받는 상황에서도 전화받을 것을 강요했다. 내가 힘들어 연락하면 바쁘다, 졸리다는 이유로 3분도 안 돼 전화를 끊으면서.


성인이 된 후 나는 외가, 친가 모두 단 한 명이라도 내 연락처를 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바로 번호를 바꿨다. 매번 그러니 엄마가 이모에게 연락처 넘겨도 되냐는 질문을 하고 내가 승낙해야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는데 어딜 가나 예외는 늘 있다.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할아버지의 부재를 느끼면서 정말 싫었던 할머니에게 조금씩 정을 붙이려는 노력을 정말 많이 했었다. 사랑한다는 말도 자주 하고 내가 먼저 연락하는 등, 손녀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애교와 연락을 했었다. 그건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더라도 일말의 후회 따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는데… 현재는 그 누구와도 연락하지 않는다. 어떤 특별한 이유로 엄마 아빠조차 지금의 내 연락처를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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