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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15. 2022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내가 모든 아이들의 괴롭힘에서 꿋꿋이 버티다 한 아이가 창문에 입김으로 쓴 ‘너는 죽어야 해, 제발 죽어버려.’ 문구를 보고 살아갈 가치가 없다 여긴 적이 있다. 그 이유는 적어도 그 아이에게, 내 마음속엔 ‘그래도…’ 있었다. 아이들의 괴롭힘과 놀림 속에서 굳건히 나를 지켜줬던 그 시간들과 내가 집에서 학대로 고통받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 하는 생각이 있었다. 걔는 절대 나에게 저들처럼 그 정도로 괴롭히지 않을 거야 했던 마음이 무너졌다. 그때 주변에서 ‘너 같은 건 어떤 범죄를 당해도 괜찮아’ 혹은 ‘너란 존재는 죽어야 해’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도 난 그런 말들 속에서 최대한 버텨내고 있었는데 입김으로 쓴 문구를 보고 와장창 무너져 내가 죽어도 슬퍼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어..라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당장 부모조차도 날 거부하는 모습을 친가, 외가 모두 지켜보며 그들도 날 힘들게 하는데 누가 날 위해 울고, 내 죽음을 슬퍼할까. 외할아버지 곁으로 내 발로 간다면 그때나 위로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학교폭력의 최악은 어딜 가도 학교폭력 피해를 입는다는 것이다. 중학교를 진학하니 나와 같이 초등학교를 다닌 아이들이 날 통제했다. 누군가 친해지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나와 말한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에게 다가가 왕따였다는 사실만 말하면 바로 피하고 방관하는 가해자가 되거나, 피해를 주는 가해자가 되거나.


어떻게든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보고 노력해봐도 달라지는 것들이 하나도 없었다. 발버둥을 칠수록 날 옭매여 느껴오는 무력감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사람들이 쉽게 오해하는 이야기, 왕따를 당한 이유와 왕따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피해 학생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생겼다는 말을 한다. 과연,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면 대체 어떻게 노력해야 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말해줬으면 좋겠다. 그런 말들을 들으면 너무 화가 나 구체적으로 어떤 노력을 해야 이 지긋지긋한 상황을 벗어날 수 있냐 따져 물어보면 아무런 대답도 못하거나 대답을 ‘그건 네가 알아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지’라는 말로 내 책임으로 돌리고 회피한다. 당장 당신도 해줄 수 없거나 책임질 수 없다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피해 학생에게 함부로 그런 이야기를 하기 전에 이 또한 상처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피해 학생이 노력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노력조차 아니 힘쓸 기력조차 짓밟히는 상황에서 너 따위가 감히 나랑 친해지려고? 누구라도 친해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고 넌 왕따여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왕따라서 네가 무엇을 하던 너의 작은 희망을 잘근잘근 밟아줄게.


이게 내가 경험한 가해자들의 반응과 태도였다.



왕따라는 이유로 모든 것들을 통제받고, 내 행실이 옳던 말던 그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모든 화살이 나에게만 향해 있었다. 심지어 “쟤가 그러지 않았어?” 의문만으로도 내가 하지 않은 일에 대해 가해자들에게 둘러싸여 비난의 화살이 쏟아진 적이 있다. 내 가치는 가해자들이 정해두고 처참히 밟아간다. 내가 숨 쉬는 것만으로도 비웃음을 당해야 했던 학창 시절. 내가 피해자이면서 가해자였던 사건이 있다.


중학교 2학년으로 기억한다. 어떻게든 이 거지 같은 불행에 벗어나고자 온 힘을 다해 한 명, 한 명 힘들게 말을 트고 제발 친구 해달라는 뉘앙스를 강하게 풍겨가며 선물공세로 한 무리에 소속돼 당장은 왕따를 벗어난 것처럼 느껴졌다. 이제 나도 더 이상 왕따가 아니라는 생각은 나의 착각이고 오류였다. 일진 무리가 날 주목하며 내 말과 행동을 어떻게든 흠집을 잡기 위해 눈을 부리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일진들과 친해지고 싶었던 아이들이 나를 무리에 소속시켜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았다. 난 친구로 생각 아이들을 따라 피어싱을 하면 당일엔 예쁘다는 칭찬을 해주면서 다음날 학교에 가면 일진들에게 다가가 흘끔흘끔 쳐보다며 귓속말로 내가 무엇을 했고, 뭘 먹었는지, 어떻게 숨 쉬는지 다 보고하고 있었다. 그런 일들이 매일 있다 보니 눈치를 안 챌 수 없었다. 나로 인해 일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아이들이 자신이 일진이 된 줄 단단히 착각했다. 착각이 불러온 최악의 상황은 서로를 돌아가며 괴롭히고 폭력도 서슴없이 행사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여러 명이 한 명을 미친 듯이 괴롭히다 타이밍을 보며 괴롭힌 아이가 다른 한 명을 지목해 다시 괴롭히고 무한 루프에 빠졌다. 나 역시 그 안에서 누군가를 괴롭히고 때리는 가해자였다. 잠시, 잠깐이라도 괴롭히지 않으면 그 차례가 내가 될까 두려워 애들이 시키는 일들을 했다. 이 무리 안에서 일어난 일이니까, 여기서 애들 말을 들으면 이 무리에서 괴롭지, 학교 전체가 날 괴롭히지 않을 거라는 이상한 계산으로 누군가의 삶을 내가 망쳤다. 돌고 돌아 내 차례가 되면 여지없이 괴로웠고 이 순간이 얼른 끝나 다른 얘가 아픈 것으로 상황이 돌아가길 바랬다. 그때 난 은연중에 이게 무슨 짓인가 내게 질문했었다. 그렇게 학교폭력에 괴로워했으면서, 내 삶을 야금야금 좀 먹는 가해자들을 원망하면서 내가 피해 입기 싫어 누군가에게 가해한다는 일이 납득되지 않았다. 그 질문을 매일 나에게 던지면서 때리라고 시키면 시킨 대로 하는 내 이중적인 모습에 조금씩 괴로워 차라리 그냥 친구 같지도 않은 친구라는 관계를 끊고 다시 왕따가 되는 것이 낫겠다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정신 차리고 벗어나야 더 이상 피해를 가하고 피해가 오고 하는 이 미친 굴레의 끈을 잘라버릴 수 있겠다 싶어 늦은 나중에서야 그만하려 했다. 그러나 나로 인해 일진들과 연결되어 담배를 배우고 권력을 갖고 무력을 행사하는 일진놀이에 빠진 이 아이들은 날 놓지 않으려 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을 원치 않았고 벗어나면 이 아이들은 일진들과 더 이상 어떠한 고리도 없어 지독한 일진놀이도 들통날 테니 함께하는 것은 싫지만, 놓아주기는 더 싫은 그 마음이 잘 보였다. 내가 이 무리에서 빠지려 하자 차례로 괴롭히던 것들은 사라지고 온전히 날 괴롭히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괴롭히는 것에 대해 나는 어떠한 문제를 삼을  없었다. 나도 역시  안에서 누군가에서  상처를 주고 고통을 줬으니까. 그게 내가  죄에 대한 감당해야  몫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으로, 정도가 심해져 생명의 위협까지 느꼈다. 학교생활이 괴로워 아프다는 핑계를 자주 하면서 등교 자체를 하지 않은 날이 많았다. 아이들은 내가 오기만을 기다렸다가 학교 오면 음침한 곳으로 데려가 때릴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내게  문자로   있었다.


,  죽고 싶어?  학교 오면 처맞을 생각하고 있어.’ 등의 협박 문자를 매일 최소 3명에게 받았다. 학교를 가면 음침한  혹은 인기척이 없는 곳에 데려가 어떻게 때릴지 신나서 궁리하는 애들을 보고 어떻게 학교를   있겠는 . 피할  있다면 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에 숨어서 버틸  있을 만큼 버티고  버텨야 했다. 오랜 시간 등교하지 않으니 독이 오른 아이들이 내게 보낸 메시지는 막막함만 느끼게 했다.


‘낼도 오지 않으면 쫓아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각오하고 있어 :)’


내가 학교를 가던, 가지 않던 상황은 똑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문자를 무시하고 학교를 가지 않았다. 학교를 그리 오랜 시간 동안 가지 않아도  부모는 가지 않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관심조차 없었다. 문자를 무시하고 등교하지 않자 정말로 아이들이 가만두지 않겠다며 지금 집으로 가고 있다는 연락으로 순간 멘붕이 왔다. 연락을 보자마자 엄마에게 달려가 절대 문을 열어주면  된다고 신신당부하면서 이유를 말해줬다. 애들이  때리러 찾아오고 있고 열어주면  맞아 죽을 목숨이니 제발 열어주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엄마는  말을  무시하고 쫓아온 아이들에게 문을 열어주고 나가보라고 말하며 웃었다. 순간 얼이 나갔다. 내가 맞아 죽을  있다고 절대  열지 말라고 했을  귀찮아하면서도 알겠다고 대답해줬는데 아무렇지 않게 문을 열어줬다는 사실이 기가 찼다.  나가 있는 순간에도  애들은  이름을 거칠게 불렀다. 나가보라고  떠미는 엄마를 보고 절망적인 심정을 가지고 나갔더니 정말 아이들이 때릴 궁리만 하고 있었다. 그때  순간엔 엄마도,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다.


 보자마자 입꼬리 끝만 살짝 당겨 올려 웃으며 내게   맞고 싶냐는 첫마디에 무서웠고, 엄마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꼈다. 아무 말도 없이 우물쭈물하니 그냥 맞으라고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주먹을 들고  몸에 닿기 ,  구해준  사람도 아닌 그냥 골목이었다. 어이없게도 골목이  지켜줬다. 지켜줬다 말하기도 이상했는데 이때 당시 엄마가 집을 구매해 자가로 살았는데  주변이 사람도 다니고 차도 다니는   골목이었다. 사방이 뚫려  보이는 골목.  골목에서 사람 하나를 만신창이 되도록 때릴 생각 하니 주변이 너무 밝고 사방이 트여서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해 때리는 것을 멈춘 것이었다. 주먹을 피고  어깨를 툭툭 털어주면서 낼도 나오지 않으면  몸에 멍자국으로 엉망진창이  거라고 귓가에 속삭이곤 떠났다. 결국  다음날 등교했고 기다렸다는   아이들 앞에서는 호의적인 , 굉장히 반가운 , 걱정을 많이  척했지만 하교시간이 되자 아이들이  끌고 시내에 있는 복합상가로 데려갔다.  상가가 3층까지는 매장이 있었는데  이상으론 폐허처럼 방치된 곳이다. 5층으로  데려가 원을 그리며 앉아  때리기 위한 워밍업을 했다.


“넌 내가 웃겨? 내 말이 멍멍이 소리로 들려?”


질문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 아이가 담배를 꺼내며 이야기하는데 무서웠다. 좌우로 앉은 아이들이 내가 도망치거나 소리치지 못하게 꽉 잡고 있었다. 내가 무리에 휘말려 차례로 누군가를 괴롭힐 때와 전혀 다른 나만을 위한 살벌한 분위기였다. 내 양팔을 잡고 움직이지 못하게 하며 내 앞에 있는 주동자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웃고 있었다.


“너 담배로 지지면 그걸 뭐라고 할까? 담. 배. 빵.”


어디 인터넷에서 나올 만한 말이지만, 나의 공포감은 극강으로 달렸다. 주동자가 내 몸을 이리저리 보며 어디에 흔적을 남길지 고민하고 있는데 저 멀리 어디선가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경비 아저씨가 수상함을 느끼고 오신 것이 아닐까 싶었다. 주동자는 화들짝 놀라 얼른 담배와 라이터를 옷 속에 숨기고 아무것도 아니라며 머쓱한 미소를 짓고 날 붙들고 있던 아이들도 손사래 치면 맞장구를 쳤다. 얼른 나가라는 불호령에 나와 아이들이 얼떨결에 그 건물을 나왔다. 나오자 분하다는 듯 아이들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면서 수학여행 가선 꼭 너의 몸에 담배빵을 만들어

불의 고통을 온몸에 새겨주겠다고 각오하는  좋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흩어졌다. 그때 수학여행 시즌이라 수학여행을 가냐, 마냐 아빠와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좋게 당장의 상황은 모면했지만,  앞에 놓인 미래에선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었다. 무조건 꾀를 내봐야 하고 도망쳐야 하는데 방법이 없다.  머릿속은 두려움에 떨려 어떤 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삶을 끝내면 멈추지 않을까 하는 머리  구석에 극단적인 생각만 떠올랐다. 위협을 받고 집에 돌아와 아빠를 잡고 울며불며 제발  수학여행 보내지 말라고 애원했다. 그래도 아빠가  가게 막는다면 아니 아빠가  말을 수용만 해준다면  몸에 그런 상처를 남지도, 평생 가지고 가지 않아도 되고 아플 일도 없을 테니 무조건 아빠를 잡고 끝까지 매달렸다. 아빠가 짜증을 부리며 대체   가겠냐고 투정 3 만에 질문했다. 아빠에게 아이들이  때리려 한다는 말부터 수학여행을 가면 2 3 동안 맞고 담배빵 당해야 한다고 제발 수학여행    있게 도와달라고 애걸복걸했다. 그러자 아빠가  반응이 나에게 씻을  없는 상처를 주었다.


“왕따 당하는 거, 그거 네가 노력하지 않아서 그런 거잖아. 네가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 당하는 건데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노력이 왜 나오고, 그럴만한 행동을 해서 담배빵을 맞아도 된다는 말이 말 같지 않았다..

모든 말이 그렇게 된 게 정당하다는 뜻이니까. 아빠도, 엄마도 나한테 이러면 안 되는 건데 부모라면 이럴 수 없다.

아무런 말 없이 상처받은 눈을 하고 바라보니 자신의 말에 긍정한 줄 알고 “봐, 너도 아무 말도 못 하잖아. 내가 언제 틀린 말한 적 있어?” 그때서야 이 사람한테 내가 도움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어른도 날 도와주고 지켜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을 때 허무함에 괴로워했다. 내가 왕따 당하다는 사실을 엄마가 동네방네 이야기한 적 있다. 그 사실을 큰 이모와 사촌들의 반응으로 알았는데 그때도 처참했었다. 누가 너 괴롭히면 우리한테 말해! 하며 웃긴 장면을 본 듯 아니 나를 너무 이상하게 보면서 웃으며 한 말을 아직도 기억한다. 나는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괴로운데 그렇게 이야기하는 사람들과 날 지켜줄 생각 없는 부모로 극한 고통이었다.


이젠 도움을 청할 곳이 없이 시간이 흘러 전날까지 미친 듯이 고민하다 겨우 작은 꾀를 냈다. 내가 잠에서 깨지 못하고 몸이 아파 수학여행을 못 간 처럼 꾸미는 것이었다. 하찮은 방법일 수 있지만 이게 날 구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수학여행 당일이 되었다. 계획한 것처럼 엄마가 깨워도 일어나지 않았고 출발시간까지 버티다 학교 선생님이 전화해 기다리다 출발한다는 통화내용을 듣고 10여 분동 안 자는 척하다 슬며시 일어나며 엄마에게 배가 너무 아프다며 꾀병을 부렸다. 엄마가 한숨을 푹 쉬더니 수학여행 못 간다고, 이미 출발했다는 전화받았고 넌 대신 학교 도서관 가서 대체 수업 들으라는 말을 듣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연기를 하며 대체 수업 들으러 학교 가야 하냐고 물어봤다. 엄만 짧은 대답을 하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


어찌어찌 꾀부려서 수학여행을 안 갔지만 일어났는데 밥이 없다. 이미 배 아프다고 한 말이 있어서 대놓고 밥 타령은 못하고 있는데 저 멀리 삶은 고구마가 보였다. 엄마에게 저 고구마 먹어도 되냐고 물어보니 흘끔 보곤 알아서 하라는 대답 듣고 바구니에서 꺼내 먹었다. 문제는 그 고구마였다. 대체 수업을 갔는데 계속 배가 아파서 화장실을 여러 차례 가도 배 속이 우당탕탕 난리를 피웠다. 먹은 음식이 고작 고구마인데…, 생각해보니 그 고구마는 3일 동안 거실에 있었다. 상한 고구마라는 판단이 들고 혹시나 엄마가 상한 고구마를 먹을까 봐 걱정돼서 퇴근한 엄마에게 고구마를 가리켜 상했다는 것을 알려줬다. 엄마는 아주 짧게 “알아.” 하고 별 것도 아닌 것으로 귀찮게 한다는 내색을 보였다.



아…? 분명 내가 상한 고구마를 먹는 모습을 엄마가 계속 출근 준비를 하면서 지그시 쳐다봤는데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상한 음식인데 먹는 것을 말리거나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었다. 상한 고구마를 먹도록 내버려 두고, 상한 음식이라고 알려줬을 때 안다는 두 음절로 대답하는 엄마에겐 대체 난 어떤 존재일까.


수학여행을 끝으로 나는 그들과 더 이상의 인연을 이어가지 않았다.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을 쳤고 나중엔 담임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이야기했다. 모든 있었던 모든 일을 알게 된 담임은 굉장히 놀랬고 내가 왜 그리도 수학여행을 거부했는지 이제야 아셨다고 말씀하셨다. 과연 정말 담임은 내가 말한 후에 알았을까? 난 그렇게 보지 않았다. 숙소 배정을 할 때 그 아이들이 나만 이름을 다르게 불러 웃음거리로 만들 때 선생님도 그 자리에 있었다. 그 큰 비웃음을 듣고 몰랐다, 이 한 마디로 책임을 지기 싫은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학교 폭력이 학교 안과 밖에서 이루어지는 일, 누군가를 때려야만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고 담배빵이라는 말도 안 되는 행위를 계획하며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이 문제에 대해 선생님은 이야기를 듣고도 어떤 방안을 내시거나 해당 학생들을 불러 중재하거나 하지 않으셨다. 그냥 넘어가셨다.


2학년 2학기 기말고사가 끝나고 3학년으로 올라가기 전, 선생님에게 모든 것을 털어놨다. 내 생각으론 선생님이 작은 액션도 취하지 않았던 이윤, 자신의 골치만 더 아파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잠시만 이 학생들을 보면 자신은 담임을 맡지 않고 교과 선생님으로 남을 테니 말이다.



일상적으로 반복된 괴롭힘과 내가 처한 당장의 상황에서 어떤 모욕을 당할지 아무것도 예상되지 않는 것이 힘들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마음에 상처가 나는 일이  이상 무섭지 않았을 정도로 단련되어 있었다. , 단련이라는 단어가 과연 맞을까? 사실은 방치되어 어떤 자극에도 아프다고   없을 만큼 썩어가고 있는 상태가 아닐까. 괴롭힘이 어떤 식으로   예상되지 않는 것도 힘들지만,  가장 힘들게 그리고 아프게 만들었던 것은 엄마 아빠의 태도였다.  왕따가 질린다는 태도와 나를 지켜주지 않고 굳이 위험에 노출시키는 행동이  힘겹게 했다.  세상에 의지할 곳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에 겨우 휘적거리며 버티는  순간들. 나의 왕따 생활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서야 완전히 벗어났다. 학창 시절을 누군가의 표적으로 살았고, 괴롭힘이 없는 나날은 오히려 이상한 날로 여겨질 만큼 당연시되었다.


날 지켜주지 않던 엄마 아빠가 원래 이런 사람인가 하고 넘어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들이 날 지켜주지 않는 부모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 사람들을… 이런 합리화로 부모에게 실망한 것을 어떻게든 다르게 생각해보려 하고 있었던 일을 없었던 것처럼, 그러지 않은 것처럼 무마하려 했지만 그 후에 보여준 내 부모의 태도가 모든 것이 망가졌다.



생일이 빠른 동생이 1년 정도 일찍 어린이집을 다녔는데 모두가 진학했지만 동생은 말도 느리고 표현이 서툴러 1년 더 어린이집을 다닌 후에 진학하니 같이 어린이집 다녔던 아이들이 고작 1년 더 빨리 진학했다는 이유로 동생에게 선배라고 이야기할 것을 강요했었다. 고작 1학년과 2학년인데도 말이다. 납득되지 않아 동생은 왜 그래야 하냐 따지면서 끝까지 선배라고 부르지 않자 아이들이 반에 찾아와 괴롭히자 동생과 같은 반이 아이들이 2학년에게 잘 보이려 조금씩 괴롭히고 있었다. 그게 어느 순간 관습이 되어 동생을 모두 괴롭혔고 삽시간에 동생 역시 학교폭력 피해 학생이 되었다. 내가 동생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힘들지 않냐고. 학교 다니고 싶지 않다 대답을 솔직히 해주었다. 그런 동생을 보니 안쓰러워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직접 도와주지 않고 어째서 방법에 대해 물었는지 이해  하실  있지만,  역시 학교 폭력 피해가 심했고 어릴  엄마가 대책 없이 나서서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보복을 심하게 받았었다.  질문에 동생이 화들짝 놀라며 나서지 말아 달라 되려 부탁하는데 마음이 아팠다. 동생에게 괜찮으니까 , 나중에라도 도움이 필요하거나 한다면 고민하지 말고 말해달라고 신신당부했다. 동생은 조금 마음이 풀렸는지 긴장감이 사라진 얼굴로 고갤 끄덕였다. 학예회나 부모 참관 수업이 있으면 엄마는   시켜 대신 참석하게 했는데 그때마다 가장 화려하게, 최대한 높은 굽의 신발을 신고 참석했다. 그럴 때마다 아주 짧게, 반짝 동생의 동급생들이 겁먹어 잘해준다는 심리를 이용했다. 동생의 담임 선생님도 나이 차이 나는 누나인  보면 살짝 겁먹어 동생을 조금  챙겨주는 모습을 보여주곤 했다.


학교폭력 피해가 얼마나 심했는지 돈을 뜯겨 울면서 집에 오고 방에 뛰쳐 들어가 이불로 울음소리를 막아 정말 지켜보는 내 심정이 갈기갈기 찢어졌다. 나도 역시 공부하러 도서관에 갔다가 동급생의 형한테 돈 뜯겨 온 적이 있는데 부모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거나 하지 않고 내 타박만 해 그때 상처가 정말 컸다.


동생도 똑같이 그러고 있으니 당연히 내 마음이 좋지 않았다. 옆 학교 아이한테도 괴롭힘을 당해 내가 다음날 해당 학교 교무실로 전화해 하나하나 따져 사과를 받았다. 그때 고등학생에, 나 역시 등교하면 괴롭힘을 당하면서 동생만큼은 더 이상 괴롭힘을 당하지 않기를 원했다. 내 부모는 괴롭힘을 당하는 동생에게 역시 막말을 하고 모든 것이 너의 탓이라는 말만 늘어놔 동생의 마음을 찢어놨다. 동생이 당하는 괴롭힘을 과소평가하면서 말이다. 집까지 쫓아와 괴롭히려는 것을 내가 발견해 막았는데….


이때만 해도 나와 같은 반응을 보여 ~ 원래 이런 사람들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동생이 당한 괴롭힘에 울면서 나에게 도와달라고 애원하는 모습을 보니 원래 그런 사람들이 아니라 나에게만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동생의 학교폭력 피해가  나이 21,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  극도로 심해져 아이들이 동생의 바지를 벗겨 동생이  충격을 받은 ,  광주를 벗어나 대전에서 자취할 때였는데 도와달라며 오열하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그땐 어찌나 화가 나고 마음이 아픈지 엄마에게 당장 담임선생님 전화번호를 넘기라고  , 동생의 담임선생님에게 1시간가량 대체 아이가 그렇게 모욕을 당하는데 선생님은 뭐하고 계셨냐 따졌다. 동생이 초등학교를 다닌 후부터 꾸준히 지속된 피해이기에 이런 내용을 전달  받았다는 말은 거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초등학생  선생님이 불러 학년 올라갈  담임하실 선생님에게 미리 말을 했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따지고 따지자 선생님이 울면서 나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하셨는데   역시 나를  화나게 만들었다. 나한테 죄송할 문제가 아니라  동생에게 해야  말이 아니냐고  불같이 화를 냈다. 조금만  빨리 지도를 했다면 아이들 앞에서 바지가 벗겨지는 모욕적인 상처를  받을  있었는데  입장에선 선생님이 방관했다는 생각을    없었다. 진짜 방관한  아닐 텐데…. 그때   왕따 생활 토대로 뻔히 보이는 동생의 피해 상황에 미쳐서 누군가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차례 죄송하다는 말에 나한테 죄송해하지 말고 동생에게  것을 요구하고 확실한 대안을 세워  이상 이런 피해가 있지 않도록 해달라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었다.  , 엄마에게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선생님이 직접 나서서 상황을 빠르게 수습하고 가해자 학생과 동생을 분리시켰다고 대체 무슨 말을 어떻게 했길래 이리도 일처리가 정확하냐는 말을 들었을  엄마는 너무나 밝게 말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간다면서. 가해자 학생의 가족이 엄마에게 연락해 사죄하면 무조건 내게 연락을 넘겨 내가 해결하도록 했다. 동생의 학교폭력 피해는 결국 내가  해결하게 되었다.  해결되고 나니 엄마는 뻔뻔하게 모든 일이 자신이  것처럼 행동했고 나의 노고는 가려졌다.


나는 끝까지 괴롭힘에 대한 뿌리 뽑기 위해 가해자 학생의 어머님부터 누나까지 다 연락을 받아 앞으로 어떤 대책으로 이 괴롭힘을 끊어낼 생각인지까지 듣고서야 사과를 받았고 실제로 그 후론 가해자 학생이 동생에게 크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괴롭히면 막아주며 비참했을 학교생활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해 줬다. 사건이 정리되고 아빠와 한 이야기가 있다. 아빠와의 대화에 아빠라는 이름이 아깝고 자격도 없다고 느꼈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잖아그런 거에 하나도 모르는데 근데 다행이지, 네가 있어서 상황이  마무리됐어. 네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덕분에  동생이  이상 상처  받고 다행이지?”


고맙다는 말과 함께 계속 네가 있어서 다행이야 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솔직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런 거….., 그런 것을 몰라 나와 동생이 괴로워할 때 그리 당하는 것이 정당하다는 말을 하고 말이다. 아이들이 바지를 벗겼다는 말을 듣고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아서 취한 행동이 나에게 전화해 우는 것… 아빠는 그저 뒤에 숨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이 말을 듣고 동생을 지켜줘서 고마워하며 날 금의환향해주는 엄마 모습에 내 마음이 복잡 미묘했다.



나는….? 동생은 내가 지켰지만, 나는 누가 지켰지? 싶더라.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만 되면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강조했다. 나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필요할 때만 나를 찾는 이 부모의 태도에 황당했고, 동생의 학교폭력과 내 학교폭력에 대한 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달랐다. 결국 어느 날, 다시 보니 내가 동생에게 부모라는 이름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생의 피해는 중학교 때도 이루어졌다. 다른 아이들이 괴롭혔는데 역시 표현력이 느리고 말이 서툴러서 라는 이유로. 이때 난 엄마를 보고 소름 돋았다. 동생이 학교폭력을 당해 구청에서 보호받고 심리치료를 받은 사실에 대해 웃으며 재미있는 일담을 늘어놓는 마냥 이야기하는 모습이 제정신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왕따를 당하면서, 아이들의 표적으로 숨도 못 쉬게 괴롭혀도 그보다 괴로웠던 것은 내 부모였다. 동생의 학교폭력 피해마저도 내가 트라우마로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끝까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했다. 가장 괴롭게 한 것은 아마 ‘나는 대체 그들에게 무엇일까… 자식이긴 한가?’ 의문이 끝까지 해결되지 않았다는 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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