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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셜리 Jul 08. 2022

쥐약






매일 엄마와 전쟁을 했다. 반 아이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전교생에게 찍혀 전따(일명 ‘전교생에게 왕따 당하는 아이)로 명치를 맞고 물건을 도둑맞아도 누구 하나 나서 주지 않아 학교가 너무 가기 싫었기 때문이다. 당장 학교를 간다고 달라지는 것들이 없었다. 학원도 마찬가지였다. 동네가 워낙 좁아 어딜 가나 나는 왕따로, 친구들과 학원 선생님의 놀림의 대상이자 괴롭혀도 되는 아이였다. 숨통이 조여 오는 이 상황이 끝날 기미가 안 보여 난 퍽하면 자살할 생각을 했고, 자살할 장소를 물색하며 계획을 세웠다.


집에 오면 엄마가 나에게 화풀이하거나 생명 위협을 받고 학교에 가면 정말 차마 담을 수 없는 일들을 당했고, 학원을 가면 내 행동 하나하나 문제를 삼아 나만 보면 비웃음을 지으셨다. 옷 입는 것부터 내가 어떻게 숨 쉬는 것까지 지적하시며 굉장히 싫어하셨다. 하루는 내가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린다고 엄마에게 집중력을 해치는 큰 문제처럼 지적했다. 엄만 화내며 날 미용실로 끌고 가 숏컷으로 잘랐고 머리가 자랄 때까지 거울 보면 자지러지게 울었다. 내 머리를 숏컷으로 만들게 한 선생님은 너 따위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으로 날 내려다보셨다. 숏컷으로 머리 밀림을 당하기 전 내 머리는 고작 머리카락이 귀 뒤로 넘어갈까? 할 정도로의 단발이었는데.


매일 일하는 엄마에게 전화해 어디가 아프니 학원 가지 않겠다 생떼를 부렸다. 전화 없이 학원을 뺀 적도 있다. 내가 가고 싶어 간 학원이 아니라 남들보다 학습능력이 떨어진 내가 창피해 엄마가 강제로 등록한 학원이니 호불호가 확실한 난 싫은 일은 죽어도 하지 않으려 하니 엄마가 미쳐가고 있었다. 나 역시 그 안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말해도 믿거나 들어주지 않는 엄마 때문에 미쳐가고 있었다. 화 잔뜩 난 엄마가 오늘도 무릎 꿇고 손들고 서 있으라고 화내더니 대체 왜 학교와 학원을 그리도 가기 싫어하냐며 나와 같이 죽어버리자 라는 말에 기겁한 내가 울며불며 학교와 학원에서 벌어지는 괴롭힘에 누가 가고 싶어 하냐고 악을 지르며 살기 싫다고 마지막 발악을 했다.


내가 아무리 말해도  말들을 듣지 않는다는  알고도 부모에게 도움을 청했었다. 그러나 항상 묵살당했다.

마지막으로 한 발악이 통할 지는 몰랐다. 엄마가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보다 사실이냐며 물었고 처음으로 내 이야기가 전달된 것 같아 희망의 끈이라 생각하고 고갤 연신 끄덕거렸다. 엄마가 알겠다고 처음으로 내 고통을 인정해줬다. 그게 끝이 아니라 직접 엄마가 학교와 학원에 전화해 나서는 모습도 보여줬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아무 계획 없이 가해자들의 부모에게 연락해 가해자들이 우리 엄마 때문에 크게 혼났다며 모든 책임을 묻고 나에게 더 큰 보복을 했다. 전보다 더 고통스러워 난 매일 죽기를 서원하며 살았다. 그리고 며칠 후, 또 똑같은 문제로 엄마와 내가 대치했다. 학교와 학원 가기 싫다고.


이번엔 엄마가 다른 반응을 보여줬는데 그게 아직도 기억 남는다.


엄마가 주방에서 대접에 무언가 가득 담아 가져왔는데 갈색의 거품이 가득한 액체였다. 엄만 그걸 내게 들이밀며 “마셔, 쥐약이야.” 마실 것을 강요했다. 이유를 뒤이어 말해줬는데 너무나 충격적이라 나는 그걸 마시려 했다. 어차피 이런 삶이 반복된다면 살아도 가치가 없다. 매일 자살계획 세우는데 그때 죽나, 지금 죽는다고 달라지나 싶어서.


“왕따 당한 네가 너무 창피해, 애들이 너보고 더러워서 싫대. 공부 못 해서 싫대. 그렇게 살 거라면 넌 없는 게 나아, 알아?”


그래, 그럼 차라리 죽자 싶어서 가만히 보던 액체를 집어 입 근처로 갖다 대자 엄마가 오히려 더 놀라 내 행동을 저지했다. 당황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자 난 엄마한테 썩은 미소를 보여주며 내놓으라 하자 갑자기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거 사실 쥐약 아, 아니야! 그냥 탄산 없는 콜라… 콜라야!!!”


뺏어서 앞으로도 이런 일이 있으면 오늘처럼 봐주지 않을 거란 말로 상황을 급하게 끝냈다. 난 안다, 저게 탄산 빠진 콜라가 아니라 어떤 약품이라는 것을… 내가 본 그 액체는 절대 콜라가 될 수 없었다. 결국 마시지 못해 죽지 못하고 계속 살아야 한다니 너무나 한탄스러웠다. 아무리 노력해도 왕따라서 당하는 고통에서 벗어날 수도, 끝날 기미조차 안 보이는데 아픔과 우울 그리고 괴로움은 매일 내 몸에 축적되어 날 아프게 했고 학원에서 받는 수많은 손가락질과 비웃음에 자존감이 하염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져 있는데 아무렇지 않게 내민 저 약, 나를 창피해하는 나의 엄마 그리고 그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이 절망적인 상황이 더 힘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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