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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Feb 28. 2024

엄마의 호들갑

어쩌면 당신이 원했던 과학이야기

"어머머머!!"


진한 분홍색 바탕에 귀여운 인스타튠이 그려진 표지의 책을 읽으며, 몇 번이고 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

"와아 이것 봐! 알프스산맥에서 5000년 전 시체가 발견됐대!! 이름이 와치야!!."


놀란 엄마와는 다르게 아이는 그걸 이제 알았냐는 듯이 허세 섞인 얼굴로 대답한다.


"와아, 엄마 그거 몰랐어? 얼마 전에 신문에 나왔었는데? 난 알고 있었지!!."



1년 넘게 '기자들의 수다'코너만 읽고 버려지는 신문이 아까워 신문 구독을 끊을까도 고민했었지만, 아침마다 신문을 찾는 딸의 낙을 단칼에 자를 수가 없었다. 내가 어릴 적 채우지 못했던 지적욕구를 아이가 신문으로 채울 수 있기를, 그래서 공부는 못할지언정 잡학다식한 아이로, 어디다 내놔도 똑 부러지게 근거 있는 주장을 할 줄 아는 아이가 되기를 바랐다. 그 단단했던 엄마의 초심은 요즈음 꽤 느슨해졌다. 초심이 단단했던 시절에는 아이가 관심 없어하는 기사들은 목 터져라 읽어주기도 하고, 대화를 나눠보려 노력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에 작심삼일의 원리가 작동하듯 신문에도 그랬다. 그렇게 5분 쓱 훑고 버려지던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고, 기억하고 있었다니! 내 딸이 새삼 이렇게나 대견할 수가 없다. 그 대견함을 한 번 맛보고 나니, 이 책을 읽을 때마다 아이를 계속 불러댔다. 


"어머머 유전자 가위가 뭔지 알았어!! 이거 봐봐."

"어머머 뇌를 녹여서 뉴런의 개수를 추정한대 어머머머!!"

"와, 폭력적인 사람들을 치료하기 위해 뇌를 잘랐었대!!."



한 두 번 알은 체를 하기도 하다가, 책 속의 튠을 유심이 보더니 놀란 토끼눈을 하고, 나와 호들갑을 떨어주는 아이가 옆에 있어 무척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은 내가 치는 울타리가 필요한 초등학생이지만, 함께 새로운 사실을 알아가면서 느끼는 감정들을 공유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는 행복이다. 굳이 세워두지 않아도 되는 울타리까지 치면서 걱정하고, 불안해하던 대상에서 함께 울타리를 걷어가는 동료의 단계로까지 발전한 기분이다. 남편이었다면 무심히 그러냐며 힐끗 고개만 돌리고 말았을 말에 아이는 나보다 더 놀라고, 환호하고, 얼마간 더 오래 기억해 준다. 


주로 에세이나 소설류를 읽는 내가 오랜만에 읽은 과학 교양서는 꽤나 흥미로웠다. 우주의 암흑에너지와 암흑물질, 시냅스니 뉴런이니 하는 것들, 3세대 유전자 가위인 크리스토퍼_카스나인이니 하는 어려운 개념들을 이렇게나 쉽고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다는 놀라움, 뉴런의 개수를 뇌수프를 만들어 추정했다는 것, 뇌절개술로 폭력성을 치료했던 오싹한 치료법의 존재, 자신이 사이코패스의 뇌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뇌 과학자, 미시간호로 밀려들어오는 아시안잉어를 막기 위해 어류차단용 전기장벽이 설치되었다는 것 등 새롭게 알게 된 기이한 사실들 까지.



문과남자의 과학공부라는 책도 꽤나 재밌게 읽은 과학 교양서인데, 아이를 계속 귀찮게 해댈 정도의 난이도는 아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땐 아이가 더 어려서였을까. 아니면 이 책에는 만화도 함께 등장하기 때문일까. 



매번 책을 읽으면서 내가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있는 작가들의 말에 반성하고, 뒤돌아보곤 했다. 그게 아니라면 작가의 따뜻함이나 그릇에 그저 감탄할 뿐이었다. '불편한 편의점' 같은 소설류는 그보다는 좀 가볍지만, 아이와 대화를 나누기에는 말 꼬리가 길어지는 경향이 있어 내가 지레 겁먹고, 일부러 잘 얘기하지는 않았다.  이 책을 꼭 읽어보시라 추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내가 하는 독서가 아이에게도 전달되는 그 기쁨을 찾은 책이 되어주어 감사할 따름이다.


틈틈이 이 책을 읽으며 호들갑 떨면서 '어머머'만 반복하다가 결국엔 딸과 함께 인류의 미래를 걱정하기에 이르렀다. 검색을 하는 동안의 전력도 아끼기 위해 북마크를 해 둘 필요가 있다는 것! 소가 뿜어내는 가스의 심각성을 깨닫고, 육류소비를 줄여보기로 아니 최소한 남기지라도 않기로 한 것! 철기시대를 지나 플라스틱시대로 온 우리 인류에 대해 걱정하다가 '오디세우스'의 달착륙 소식을 접하고, 어쩌면 정말 달에 가는 것만이 우리가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지 않을까 생각한 것까지. 그 어떤 독서토론 수업보다  3일 간 이어진 엄마의 과학책 읽기와 호들갑이 아이에게 지대한 생각거리를 던져준 것 같아 역시 책 읽기를 잘했다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1년, 2년이 시간이 더 흐를수록 더 끈끈해질, 둘째 아이까지 합류하게 될 우리의 책 호들갑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인류역사에 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철기 시대, 플라스틱 시대 이후로 새로운 시대가 올지 아니면 아무런 시대도 오지 않을지는 지금 우리 손에 달려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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