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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Mar 13. 2024

우리는 어디에 숨을 수 있을까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엄마 나 미술학원 맨날 맨날 가고 싶어!!"


라이딩이 힘들어 다니던 미술학원을 그만두고, 1년이 훌쩍 지났다. 1년 동안 10살 7살 두 아이는 계속해서 미술학원엘 다니고 싶어 했다. 어디든 상관이 없고, 그저 앉아서 마음껏 그리기와 만들기에 집중할 수 있는 장소면 오케이인 상황이었다. 반면에 당시 나는 지나치게 사교육에 의존하던 나를 돌아보고, 최대한 그에게서 멀어지리라 마음을 다잡고 있던 시기였다. 미술이야 말로 전공을 하지 않을 거라면 집에서 유튜브를 보면서 재료를 보충해 즐길 수 있는 분야 아닌가. 할 것도 챙길 것도 많아지는 초등시기에 미술학원은 사치라 느껴졌다. 


그렇게 '미술'얘기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 드로잉 유튜브를 틀어주었다. 

'제발 물감은 꺼내지 마라.'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말이다.


유튜브 드로잉으로 그림욕구를 해소하던 중 집 앞에 미술학원이 생겼다. 아이들의 미술학원 타령이 또 시작되었다. 

'엄마 저기는 정말 화가처럼 앉아서 그릴 수 있는 곳이야! 너무너무 가고 싶어! 제발 가면 안 될까?'

화가처럼 그린다는 말은 이젤에 캔버스를 놓고 그릴 수 있다는 거다.


'우리가 알아서 다닐게! 엄마가 데려다줄 필요도 없잖아~'


점점 내 마음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두 가지 마음이 계속 충돌했다. 일단 라이딩 걱정은 할 필요가 없고, 학원을 어느 정도 정리해 놓아서 재정적으로나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기는 했다. 그렇게 하고 싶다는데 혹시 숨겨져 있던 재능을 꽃피울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지만  두 딸의 미술적 재능이 전공을 권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쯤은 매우 알고 있기에 헛된 기대는 하고 싶지 않은 실망에 대한 방어감. 


그렇게 계속 미뤄오다가 눈이 오던 어느 날, 우연히 미술학원 앞에서 놀던 아이들이 미술학원 선생님께 젤리를 얻어먹었던 그날, 갑자기 내 마음이 동했다. 길 가던 아이들에게 젤리를 나눠 주는 따뜻한 선생님 때문은 아니다. 젤리를 받아먹으며 미술학원 안을 슬쩍 둘러보며 기대에 찬 아이들의 눈과 표정을 봤기 때문이다.


그렇게 아이들이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한 달이다. 


그 사이에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라는 책을 읽었다. 저자 패트릭 브링리는 형의 죽음이라는 사건으로 상실감을 느끼고,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누구도 목표로 삼지 않는 미술관 경비원을 직업으로 택한다.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내가 아닌 것 같다고 느끼며 해오던 일을 과감히 그만두고, 자신이 생각하는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선택한 이 남자는 그 일에 사랑하게 된다.


"영원히 경비원으로 일하고 싶다고, 다른 일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너무도 단순하고 직관적인 일이고, 뭔가를 계속 배울 수 있고, 무슨 생각이든 전적으로 자유로이 할 수 있는 일이라서 그렇다고 이유를 덧붙인다."



작가의 미술에 대한 조예가 남다르기는 하지만, 작품을 향한 작가의 생각은 교양과 지식만 흘러넘치지 않았다. 다빈치 같은 거장에게서 연민과 동질감을 느끼고, 작품 속에서 형과의 추억, 어린 시절의 낭만, 현재의 삶을 연관 지으며 깊이 생각한다.



미술관 경비원이라고 해서 작품에 대한 감상만 늘어놓지도 않는다. 그곳을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 함께 일하는 동료들과 부대끼며 조금씩 상실감을 채워 나가는 과정이 흥미롭다.



책을 읽고 나는 아이들의 미술학원으로 다시 옮겨와서 생각해 본다. 자기 글이 아닌 것 같은 글을 쓰며 바쁘게 살아왔다는 작가처럼 우리 아이들은 좋아하는 무언가를 항상 뒷전에 두고, 10년 후에 치를 수능을 잘 보기 위해  공부습관을 들이기 위해 노력해 오고 있었다. 물론 필요한 일이다.  아이들의 생활, 공부, 취미까지 가장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하고, 노력하던 나도 칭찬한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치열하게 아이들의 교육을 고민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는 노력은 그대로 이어갈 테지만, 뒤돌아보는 과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들도 살아가면서 실패나 상실감을 겪고, 힘들어지는 순간이 분명히 있을 테지. 그때 패트릭 브링리 작가처럼 숨을 만한 곳. 잠시 들러서 숨 쉴 만한 곳이 아이들에게 있을까. 이 책이 미술에 관한 것이라서, 아이들이 미술학원을 지금 너무 좋아하니까 그게 미술일 것이라고 단순하게 결론짓고 싶지는 않다. 다만, 아이가 현재 원하고, 집중할 수 있는 것들을 충분히 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는 것에 대한 가치를 새로운 관점에서 깨달은 순간이었다고나 할까. 


솔직히 말하면 작가의 미술 감상을 따라가다 보니 예술을 이렇게나 자유롭게 느끼고, 나아가 감정 치유의 공간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능력 자체가 부럽기는 했다. 끝까지 그 조예를 탐내고 있는 엄마 마음이란. 작가가 경비원이라는 직업을 선택한 것과 내가 아이들을 미술학원에 보내기로 결심한 것의 가치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른 일이지만, 멈추고, 생각하고, 단순하고, 편안하게 흘러가는 느낌 정도는 비슷하다고 말해도 되지 않을까.


오늘도 미술학원에 다녀와서 한껏 상기된 아이가 나에게 얘기한다.

"엄마 나는 그림 그릴 때 엄청 집중이 잘 돼. 정말 너무 좋아."

"친구들도 있어서 엄청 재밌어!"


아이가 그 공간에서 오늘 하루 있었던 작은 힘듦 들을 잊고, 새롭게 충전할 수 있다면 그 사교육에 대한 아웃풋은 어느 정도 성공 아닌가. 우아하고, 교양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은 욕심에 아이가 좋아하지도 않는 미술관 투어를 다니며 급기야는 미술관이라면 질색팔색하는 아이로 만들었던 것이 나란 엄마다.  앞으로 진격하는 일만이 인생에서 필요한 일은 아니다.  잘 숨는 능력, 예술이든 책이든 숨을 곳을 잘 마련해 두고, 멈추어 갈 수 있는 용기를 패트릭 브링리 에게서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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