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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Feb 14. 2024

수학을 대하는 자세

하루 한마디 인문학 질문의 기적

육아서에 대한 선입견이 있었다. 육아서가 지침이 되는 날도 있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죄책감만 짊어지게 되는 날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겨우 육아서에서 벗어나 내가 고른 책들을 읽으며 느꼈던 행복감과 그럼에도 그 안에서 육아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또 반성하고 있는 나를 보며 시작한 글이 '엄마의 독서'이다. 여기에 등장시키고 싶지 않았던 그 육아 냄새나는 책을 오늘 빼꼼히 인사시켜볼까 한다. 사실 육아서라기보다는 인문서에 가깝기도 하고, 육아 전문가가 아닌 작가의 글이기도 하다. 그래, 그냥 인문서라고 해둘까. 아니면 서서히 육아서도 내 독서그룹 안에 다시 끼워줘야 하는 것인가.

빌려서 봤지만, 구매할 책

사실 이 책을 읽는데 시간이 꽤 오래 걸렸다. 그도 그럴 것이 김종원 작가님도 빠르게 읽는 다독가가 아니라고 한다. 일 년에 한 권의 책만 읽는다고. 그래서인지 문장 하나하나가 아이의 인생은 물론 나의 뇌까지 번쩍 뜨여주게 해주는 말들로 가득하다.


이 책을 두고, 블로그에는 두서없이 많은 문장들을 옮겨놨고, 인스타에는 멋들어진 릴스하나를 만들어서 수단보다는 본질, 즉 책 그 자체보다는 질문이라는 메시지를 담았다. 저자가 예시로 든 스포츠경기에 꽂혀 누구나 존경하고 흠모하는 '손흥민' 선수 영상을 오려 붙여서 말이다.


아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라.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아이가 가야 할 길이 보인다.

사랑은 아이가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을 열어주는 둘만의 비밀번호니까.      


그런데 '엄마의 독서'에서는 이 문장을 꺼내보겠다. 사실 아이를 사랑하라는 메시지는 모든 육아서에 등장하는 평범한 말 아닌가. 그런데 이 책에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한다. 사랑하면 아이의 길이 보이나니 아이가 원하는 것을 모른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고. 여기에 찔리지 않을 부모가 몇이나 될까.


또 고루한 엄마의 반성이 될지 모르겠지만, 오늘도 나는 아이에게 내 기준, 세상의 기준에서 아이에게 몇 번이나 함부로 말해버렸다. 대부분 그 함부로는 공부, 특히 수학에 얽혀 있다.


"네가 싫어도 수학은 해야 하는 거야.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해야 할 건 하자"

"네가 나중에 되고 싶은 게 있을 때 수학을 못해서 못하게 되면 얼마나 후회스럽겠니."



내 딴에는 아이가 정말 수학 때문에 곤욕을 치를까 싶어 싫어하는 마음을 어르다가


"그럴 거면 하지 마! 그렇게 하기 싫으면 그냥 수학바보로 살던가! 엄마는 모르겠다."


라는 말로, 아이를 울게 만들었다. 여전히 몸을 베베꼬고, 한숨만 푹푹 쉬는 아이의 모습에 울화가 치민다. 아무리 독서로 감정을 잘 다스리게 되었다고 자부하는 나도 어쩔 수 없는 순간들이 있다. 이 또한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공감으로 이겨낼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할 건 해야지. 사랑하는 아이니까 이 정도는 부모가 이끌어줘야지 생각했다.


문제는 이끌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함부로 말하는 데에 있었다. 여기까지도 다른 육아서들에 나오는 말들과 일맥상통한다. 포커스는 대부분 '공감'이다. 하지만, 이 책의 포커스는 '질문'이다.  일상에 의미를 부여하고, 아이의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질문 말이다.


아이가 원하는 삶과 방향이 어느 길로 뻗어 갈지도 모르면서 세상의 기준에 맞춰 수학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고, 수학을 못하면 분명 아이 인생의 걸림돌이 될 거라 예견하고, 아이에게 겁을 주지 않았는가. 나는 아이를 얼마나 완벽한 아이로 만들고 싶은 걸까. 그 완벽은 아이를 위한 걸까. 나를 위한 걸까. 스스로에게도 질문을 해본다.


답을 하려니 고개가 숙여진다. 스스로 책을 읽고 많이 변했다고 말하고 다녔지만, 아직도 내 삶의 기준은 나보다는 '타인' ,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길들여져 있음을 발견한다. 40년에 가까운 내 인생을 그렇게 주입받으며 당연하게 생각해 와서인지 이제는 내 몸의 일부인 살갗처럼 그 인식을 벗겨내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또 자책하며 반성하기보다는 얼른 그 살갗에 얹힌 떼라도 벗겨내야지 싶다. 내 피부임을 인정하고, 순응하기보다는 내 피부의 세포 하나하나가 천천히 건강하게 재생할 수 있도록 자꾸 몸에 좋은 문장과 책들을 섭취해야 함을 느낀다.


안 하던 질문이 내 입에서 튀어나오길 기대하는 것은 언감생심. 앞으로 이 책을 곁에 두고, 하루하루 조금씩 필사해 가며 아이가 스스로 빛을 찾아갈 수 있도록 조력할 것이다. 아이의 빛뿐인가.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나는 40 평생 모르고 지냈던 내 안의 빛도, 남편의 빛도, 내 친구들의 빛도 밝혀줄 수 있는 소금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오늘은 문제집 안에 숨어있는 재밌는 문제 하나를 찾아서 엄마에게 설명해 주는 건 어때?."

"그 문제를 풀 때 어떤 기분이었는지 자세히 설명해 줄래?"

"누구에게나 장점이 있듯 수학에게도 좋은 점이 있지 않을까?"


아이의 수학을 대하는 질문들 몇 개를 떠올려봤다. 자기 의심이 든다. 과연 아이가 이 질문들을 받아줄까. 더 짜증만 불러일으키는 건 아닐까. 그래도 일단 으름장이나 명령이 아닌 질문이니 뭐라도 얘기해 주겠지. 아니 여전히 이렇게 꼬셔서 수학을 풀게 만들 궁리를 하는 나는 아직도 세상의 기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일까. 질문 몇 개를 만들고, 이런 생각들이 떠돌지만, 일단 물어보리라.


하브루타가 별거냐! 이 또한 습관으로 만들면 그만이려니. 새벽같이 일어나 습관적으로 글을 쓰는 내가 된 것처럼 쥐어짜지 않아도 좋은 질문들이 튀어나오는 나를 상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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