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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랑맘 Feb 07. 2024

고구마 맛탕이 준 깨달음

가녀장의 시대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엄마로서 느낀 가장 큰 변화는 죄다 걱정스러워 보였던 아이의 거의 모든 것들 (학습적인 것 외에도 낯을 심하게 가리는 성격, 겁이 많은 기질, 깨작대는 젓가락질, 벌써 굽은 등과 거북목)이 그저 아이가 가진 개성이려니, 아니 어쩌면 이것이 '장점'이기도 하지 않나라고 생각을 전환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다.


그러다 또 어느 순간 나의 육아관에 대해 뱉어놓은 글 들이 부끄러우리만치 아이의 미운 구석들이 연이어 눈에 들어오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물을 흘린 아이를 보며 심호흡을 하고 있는 나다.)  모진 말로 이어지는 경우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이 다행스러울 뿐이다. 그저 의식적으로, 아니 더 필사적으로 예쁜 구석을 찾아내려 노력하는 평범하고, 애처로운 엄마다.



"글쓰기의 세계가 얼마나 영롱한지를.

오랫동안 그 곁에서 고구마 맛탕이나 해주고 싶다고 복희는 생각한다."


가녀장의 시대

그러다가 이슬아 작가의 '가녀장의 시대' 속에서 이런 문장을 만났다. 마침 글 쓰는 걸 꽤나 즐기는 아이가 바로 내 아이이다. 그런 아이에게 어제는 이렇게 말했다.


"그만 좀 쓰면 안 될까? 쓸 거면 끝까지 쓰던가, 모아 놓던가! 이렇게 아무 데나 두면 버리라는 거니?"


소설을 쓴다고 집중하고 앉아 몇 줄을 휘갈기고는 진전 없는 종잇장들이 거실 구석 여기저기 널려있는 꼴을 보면 그 글이 혹시나 좀 대단한 문장일까 싶어 과감히 버리지도 못하고, 아이에게 볼멘소리를 했다.


그런데 가녀장시대 속 슬아 작가의 엄마로 등장하는 복희 씨는 수강생 아이의 글을 보며 눈물짓고, 그저 쓰는 아이의 모습을 영롱하다 표현하고, 그 곁에서 아이의 글에 보탬이 될 만한 간식을 제공하는 일에 행복감을 느낀다. (정작 그녀는 글은커녕 책과 친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하물며 매일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출판까지 해냈다는 여자를 엄마로 둔 아이는 쓰던 글을 놔둔 일이 영롱은커녕 '혼날 일', '차라리 안 했으면 나았을 일'이 되고야 말았다. 심지어 그 아이가 내 아이다. 아찔했다. 


손글씨로 한 문장 이상 써보신 분들, 필사를 하시는 분들은 알 것이다. 컴퓨터가 발명되지 않았다면 과연 우리나라에 작가가 몇 명이나 나왔을까. 글을 쓴다는 엄마도 손글씨로 한 페이지 이상을 넘기지 못하는데, 아이는 그 작은 손을 꼬물거리며 자신의 문장을 정성스럽게 만들어 간다.


작가가 꿈인 아이는 내가 책을 출간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엄마, 나도 빨리 책 출판하고 싶어."


라는 말을 종종 했다. 그러면 나는 


"네가 지금 쓰는 글들을 중간에 끊지 말고, 계속 써봐. 그러면 그 글들을 출판사에 보내 볼 수 있어."


라고 응원인 듯싶게 말했지만,  이내 잊어버리고는 매일 공부할 분량을 먼저 챙겼다. 엄마 요새 꿈 찾느라 바빠. 네 일은 네가 좀? 이란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이다. 덕분에 혼자 밥도 차릴 수 있게 되었고, 방정리도 곧 잘한다. 최근에는 계획표도 혼자 짜더니 웬만한 공부는 학원 도움 없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육아의 목표는 역시 독립이야' 라며 더욱 굳건해진 나의 '방관' 비슷해진 육아 철학은 책을 읽고, 아이의 영롱함을 깨달은 순간 '꿈 응원'육아로 아니 좀 더 적극적으로 개입해 '꿈 꼬치' 육아로의 전환점을 맞이한 듯했다. 이 또한 멀리 보면 '독립'을 위한 육아임에는 변함없지만, 좀 더 아이의 꿈에 관심을 갖고, 기회를 함께 모색하고, 더 힘차게 내딛을 수 있게 용기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복희 씨의 '고구마 맛탕'이 나에게 이런 변화를 안겨 준 것이다! 


학원에 계신 할머니도 알아보는 아이의 신통한 '글쓰기'를 그 '영롱함'을, 엄마가 더 요란스럽게 응원해 보리라. 그 첫걸음으로 아이와 '그림책 공모전'에 함께 도전해 보기로 했다. 아이의 책을 출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게 된 '한국그림책출판협회'에서 진행하는 무려 1회 공모전이다. 역시 찾는 이에게 길이 보이는가 보다. 기간은 3월 31일까지. 이번 달이 방학임을 감안하면 시간도 여유 있다. 아이에게 이 소식을 알리자 아이 눈이 영롱함으로 반짝인다. '엄마도 함께'라는 말에는 그 벅찬 마음을 있는 힘껏 입을 벌려 환호성을 지르며 폴짝폴짝 뛰어오름으로 표현한다. 


우리는 당장 카페로 자리를 옮겨 '아이디어 회의'를 했다. 그래도 출판 경험이 있는 엄마라고, 어떤 어린이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를 먼저 확실히 정해 놓고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아이는 신나서 그간 생각해 둔 아이디어를 쏟아냈다. 


"나는 겁이 많고, 두려운 아이들에게 조금 웃긴 글로 용기를 줄 거야."

"아 그런데 고양이가 등장해야 하는데, 불쌍한 고양이도 열심히 하면 목표를 이루는 과정을 보여줄까."


역시 내 딸이지만, 놀랍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거침없이 초안을 써내려 가는 아이. 나는 그저 고구마 맛탕에 버금가는 딸기라테 한 잔을 시켜주고, 곁에서 따끈한 커피를 홀짝이며 감탄사를 연발하면 되었다. 그렇게 아이 옆에서 한 두 마디 보태며 여유롭게 책을 읽다가 번뜩 떠오르는 생각들을 아이와 공유하기도 했다. 


'가녀장의 시대'라는 책이 주는 메시지는 내가 느끼기로는 '주체적인 삶'이다. 그 주체는 가부장적인 환경에서 자란 여자아이가 꽤 출세한 출판사 사장님 겸 작가가 된 주인공이고, 주변인물 또한 그 각자의 주체성과 개성이 위트 있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속에 극히 일부분이 '글 쓰는 아이'였다. 책을 중심에 놓고, 나를 거기에 밀어 넣으면 또 다른 느낌의 감상문이 나온다. (블로그에 이미 게재한 것처럼) 


하지만, 엄마가 책을 읽으면 어떤 책이든 '아이'에게 시선이 멈춘다. 그리고 '사랑'에도. 내가 이 책을 읽지 않았다면 글 쓰는 아이의 영롱함을 만나지 않았다면, 아이는 글을 쓰는 대신 수학문제 한 문제를 더 풀고 있을 수도 있었겠지. 늘 아이의 영롱함을 발견하고, 조금 요란스럽게 고구마 맛탕을 챙겨주는 엄마가 돼 보리. 그렇게 오늘은 아이의 글을 넣을 만한 예쁜 틀을 찾아 검색력을 발휘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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