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까지 오게 된 사연
나는 태생적으로 운동치다. 초등학교 때부터 제일 싫어했던 과목은 단연코 체육이었다. 매달리기 0초, 팔걸이 0회, 윗몸일으키기 0개. 20초를 훌쩍 넘는 처참한 100미터 달리기 기록. 아무리 노력해도 할 수 없는 게 있다는 걸 너무 어린 나이에 알아버렸다. (그때는 어느 정도해야 노력했다고 말할 만한 건지 알지 못했다.) 일 년 중 가장 굴욕적인 날은 체력장 테스트 날이었다. 신기할 정도로 못하는 나를 행여나 친구들이 비웃을까 봐, 눈치 없는 선생님이 한번 더 해보라고 기회를 주실까 봐 내 작았던 심장은 한껏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나마 평균이상의 실력을 뽐낼 만한 종목은 딱 두 가지. 유연성 테스트와 오래 달리기였다. 허벅지가 찢어지는 고통, 목에서 피가 나는 고통을 참아내는 것쯤은 아무리 용을 써도 한 번을 일어나지 못하고, 무기력하게 누워 있어야 하는 윗몸일으키기보다는 훨씬 할만했다.
누구나 인정하는 운동치답게 나는 마흔이 다 되도록 여태 두 발 자전거도 타지 못한다. 어디 그뿐일까. 나에게는 어디가 시작점인지 알 수 없을 만큼 깊이 박힌 운동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도 존재한다. 그 두려움은 내가 새로운 운동 (주로 장비를 사용하는 스케이트나 스키, 보드 같은 운동)을 시도해 볼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내 엉덩이를 잡아끌어 앉히면서 속삭였다.
'네가 어떻게 이런 걸 하니? 그냥 가만히 있어. 그러다 크게 다친단다.'
30대가 되고, 출산을 겪다 보니 운동을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살아갈 방편으로 이 운동치는 필라테스라는 운동을 처음 시도한다. 그냥 그게 제일 안전하고, 무난하고, 인기 있었던 운동이어서 별 다른 시장조사 없이 시작한 운동이다. 그런데 하다 보니 반전이 있었다. 나는 꽤 유연하고, 몸에 대한 인지력도 괜찮은 편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된 것이다. 칭찬 사탕을 늘 준비해 두고, 적절할 때 건네는 선생님으로 인한 착각이라 여기기엔 분명한 결괏값이 존재했다. 그다지 힘을 들이지 않고도 윗몸일으키기가 가능해졌고, 행잉이나 티저처럼 꽤 고난도 동작들도 척척 하게 된 것이다.
'뭐야, 이런 거였어?'
그때부터였나 보다. 늘 움츠리고 살았던 내 운동종자가 겁도 없이 나대기 시작한 것이. 꼬지에 둥그런 달걀을 꽂아 논거 같은 빈약하고도 통통했던 몸이 정상 근처로 돌아왔다고 느낄 때쯤, 그러니까 여러 운동을 거쳐 댄스로 넘어오기 약 2년 전쯤 바디프로필에 도전했다. 필라테스보다 강도 높은 PT로 운동 종목을 갈아탔고, 6개월 간 치열하게 운동과 식단을 병행한 끝에 난생처음 복근을 만져볼 수 있게 되었다. 종이 인형 같던 팔다리에 근육이 탄탄하게 붙었고, 달걀 같이 봉긋했던 복부에 라인이 만들어졌다. 40년 가까이 삐그덕 대던 내 몸이 2년의 재개발로 완전히 천지개벽한 것이다.
37년 만에 처음으로 태생적인 운동치 일지라도 하면 된다는 것도 그때 깨달았다. 꼭 등단해야 작가인가. 꼭 스케이트나 자전거 같은 기구 운동을 할 줄 알아야 운동을 잘 하는건가. 대표 운동치인 나는 그 이후로도 등산, 달리기, 필라테스를 계속 즐길 수 있었다. 여전히 겁도 많고, 운동신경도 없지만,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인건 분명해졌다.
꾸준한 운동으로 몸을 다지면서 10대부터 시작된 춤에 대한 열망과 흥을 다시 기억해 내기까지는 2년의 시간이 더 걸렸다. 운동을 하고 나면 개운하고, 좋았지만, 더 즐길만한 게 없을까 고민했다. 달리기를 하다 보니 무릎이 아팠고, 등산은 시간도 많이 걸릴뿐더러 봄 가을에만 적당한 운동이었다. 필라테스나 헬스를 계속하기에는 재미가 조금 없었고.
와중에 춤이 눈에 들어온 건 동네 친한 언니의 춤 영상을 본 이후부터이다. 눈이 번뜩했다. 어릴 때부터 나는 흥이 많은 아이였음을 그제야 기억해 냈다. 10대에는 가수들의 무대를 무한 반복 재생하며 따라 했고, 20대에는 술이나 남자 아닌 춤에 대한 열정만으로 클럽에 드나들지 않았는가. 서른을 출산으로 맞이하면서 내 흥은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데 모두 소진되고 있었다. '저스트 댄스'라는 닌텐도 앞에서나마 아이들 앞에서 우쭐대며 흔드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우리 동네에도 춤을 배울 수 있는 학원이 있다니. 게다가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이렇게 멋들어지게 영상도 찍어주는 곳이라니. 내가 즐길 수 있는 운동을 그제야 만나게 되었다.
나는 자석처럼 이끌려 망설임 없이 댄스학원에 등록했다. 역시 말도 못 하게 재밌었다. 이제까지 해 본 운동 중에 시간이 가장 빨리 흐르는 운동이다. 칼로리 소모는 많지 않지만, 안무를 기억해야 하기 때문에 치매 예방에도 탁월하다. 게다가 춤을 멋지게 추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근력을 보강하기 위해 매일 30분씩 집에서 홈트를 하게 됐고, 영상 찍기 전 날부터는 탑을 입기 위한 강제 식단까지 하게 되었으니. 다이어트 효과로도 이만한 게 없다.
댄스학원에 등록한 지도 1년의 시간이 흘렀다. 10곡이 넘는 내 춤영상은 이제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을 만큼 점점 나아지고 있다. K팝에 관심 많은 아이 친구들이 놀러 오면 춤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세련된 이모다. 나는 이제 누가 봐도 날렵하고, 건강한 40대다. 자전거 좀 못 타면 어때. 이렇게 잘 흔드는데!
사진: 2022년 5월의 바디프로필 #위오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