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ma get it done.
벌써 2주 전, 통굽 슬리퍼를 신고, 흐느적 흐느적 핸드폰에 고개를 박고 계단을 내려가다 자빠졌다. 꼬리뼈가 아스라지는 고통을 느꼈지만, 자빠진 나를 걱정하는 주변 시선에 괜찮은 척 훌훌 털고 일어나 정형외과로 직행했다. 다행히 엑스레이에 선명하게 보이는 금은 오늘 만들어 진게 아니었다.
“전에 골절 경험이 있으시죠?”
“아 네.. ”
다 큰 여자가 벌써 엉덩방아를 두 번이나 찧었다는 걸 인정하기 부끄러웠지만, 선생님 앞에선 솔직해야 했다.
“다행히 새로운 골절은 없어 보이고요, 그 자리에 염증이 생겨서 일단 약 드시면서 지켜보시죠.”
자빠져 병원에 온 것도 민망한데, 이런 질문을 해도 될까 싶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
“혹시... 이 상태에서 춤을 춰도 될까요?”
"네?? 춤이요?? "
선생님의 커진 눈을 보니 조금 놀란듯했고, 웃지 않는 입을 보니 나를 한심하게 생각하는 것 같이 느껴져 괜한 변명을 했다.
"아 네.. 뭐 격한 춤은 아니고요. 취미로 하는건데, 허리를 굽히거나 피고, 가볍게 뛸 수도 있어서요."
혹여나 전문 댄서로 오해하면 어쩌지 하는 쓸데없는 우려에 이실직고하는 마음으로 취미라는 말을 꼭 넣어 설명하는 나다.
5초 정도의 짧은 정적이 흘렀다. 그 시간동안 선생님의 빳빳한 표정에서 나를 한심하게 여기는듯한 분위기를 느꼈다. 보아하니 나이도 있는데, 고작 취미로 하는 춤을 이런 상황에서 하겠다는 의지가 우습게 보였을까 싶었다.
“흠... 일주일 정도는 쉬는게 좋긴 한데, 지켜보면서 심하게만 안 하시면 될 거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돌아와 생각해보니 선생님은 그저 나의 상황에 맞는 답변을 생각해 내시느라 뜸을 들이셨을 뿐, 내가 한심하거나 웃스웠던건 아니었던 것 같다. 그저 내 민망함이었을 뿐. 40대 아이엄마가 춤을 춘다는 사실이 심지어 그게 내 요즘 최대 관심사라는 사실이 나는 아직도 조금은 부끄러웠나보다.
일단 다행스러웠다. 산후조리 할 때나 쓰던 회음부 방석이 없으면 앉아 있지도 못했던 지난 번 골절 때 보다는 확실히 덜 한 고통이다. 아마 그랬다면 앉아서 쓰는 글도, 일어나 흔드는 춤도 멈춰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전보다 몸을 아끼기는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새벽에 글을 쓰고, 주 3회 화상영어를 하고, 주 2회 댄스 수업엘 간다. 외동 놀이 중인 둘째를 데리고 도서관이니 수영장이니 리조트니 계곡이니를 신나게 쏘다니기도 했으니 어디 가서 내가 지금 꼬리뼈를 다쳤으니 좀 쉬어야겠다 말할 처지도 못 된다.
사실 나는 뭐든 대충 때우기만 하면 괜찮은 사람이었다. 어릴 땐 대충 눈치 봐 가며 교회에 출석했고, 적당히 공부해 중견 기업에 취업할 정도의 스펙을 만들었다. 나 좋다는 남자 중에 적당히 마음 가는 사람과 사귀었고, 여러모로 괜찮아 보이는 지금의 남편을 적당한 나이에 만나 결혼까지 했다. 먹자는 거 먹고, 가자는데 가고, 하라는 거 하는 별 개성도 취향도 없는 무채색의 나였다.
왜 그러고 살았나. 가만 생각해 보니 내가 나를 잘 몰랐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경험치가 없어서이기도 했겠지만, 스스로를 믿지 못한 이유가 컸을 것이다. 반면 지금 나는 아픈 엉덩이를 부여잡고 굳이 쓰고, 추고, 나 다니는고 생각해 보니 40년 만에 하고 싶은 걸 드디어 찾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스스로를 믿게 된 이유가 가장 클 것이다.
하고 싶은 걸 하기만 하면, 되고 싶은 게 될 수 있다는 걸 어느새 깨달아버렸다. 나를 이제 내가 믿을 수 있게 됐다. 하기만 하면 되는데, 안 하기는 너무 아깝지 않는가.
내게 다가와 다가와~
Imma get it done. (I’m get it done. 내가 해낼 거야)
요즘 배우는 노래 에스파의 ‘아마겟돈’ 의 노래 가사가 딱 지금 내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녀들처럼 격하게 웨이브를 하면 꼬리뼈가 아려와 제대로 시연해내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대충할 생각은 없다. 꼬리뼈가 정신을 차릴 때까지 눈으로 많이 익혀라도 두면 되겠지 싶은 마음이다.
물론 그 되고 싶다는 게 내가 에스파처럼 현란하게 출 수 있게 된다는 건 아니다. 그저 따로 놀던 사지가 20~30초 동안 아마겟돈 박자와 리듬을 타며 움직여지고, 무리 없이 그녀들이 추는 방향대로 꿈틀할 수 있게 되는 지점을 말하는 것이다. 글쓰기와도 비슷하다. 현란한 필력은 못 되도 뿌옇던 머릿속을 정리해 백지에 리듬감 있는 글자를 채워 넣어 오늘의 숙제를 제출해 내는 바로 그 순간에 도달하는 것이다. 지지고 볶는 와중에도 매일 사랑을 속삭이는 육아와도 닮아 있으려나.
최후의 전쟁을 의미하는 아마겟돈. 사뭇 비장하게 들리지만, 이제야 나를 믿고, 매일 닥치는 고난을 극복하려 애쓰는
들을수록 볼수록 출수록 이번 노래, 참 마음에 든다. 7주차 질문의 글감까지 되어주다니
내게 다가와 다가와~
Imma get it done.
널 향해 겨눠 Get it, gone
(꼬리뼈 통증아 가라)
이젠 널 끝내 Better run
(이제 다 썼다. 걱정, 불안 안녕)
깨트려 거침없이 Done
(물리치료 받고, 격하게 춰 주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