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몰랑맘 Sep 07. 2024

비틀대는 턴

계속 실패하지만, 또 계속 성공하는.

춤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치열하게 실패와 성공을 반복하면서도 여태  완전히 정복 하지 못한 동작이 있다. 바로 턴이다. 1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안에 하체의 근력에 기대어 깃털처럼 가볍고 사뿐하게 몸을 한 바퀴 돌려내야 하는 동작이다. 3곡에 1곡 꼴로 이 동작이 나오는데, 한 번에 성공한 적이 없다. 그런데 한 번도 못한 적은 없다. 참 신기하게도 같은 턴인 거 같은데 곡마다 새롭다. 아이브의 '아센디오'에서 턴을 성공했다고, 투어스의 '내가 s면 넌 나의 n이 되어줘'의 턴이 단번에 되지는 않는다.  아직도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아이브  노래 '아센디오'에서 처음 턴을 배울 때 늘 그렇듯 비틀거렸다. 매일 스쿼트를 하는데도 여전히 버텨주지 못하는 부실한 하체가 원망스럽다. 혹시 운동화가 밑창이 너무 뻑뻑해서 안 되는 건 아닐까라고 연장 탓을 해보지만, 그 때문이 아니란 걸 내가 제일 잘 안다. 얍삽한 그 마음은 빠르게 접어둔다.  나만 비틀대는 건 아니지만, 막판까지 비틀대는 건 또 나뿐이다.  선생님도 자꾸 비틀거리는 나를, 아니 우리를 위해 여러 번 반복하는 동작이기도 하다. 몸이 돌 때까지 최대한 시선을 고정한 채 앞에 둬야 한다.  몸이 도니까 어쩔 수 없이 딸려가는 느낌으로 막판에 재빨리 돌아야, 아니 돌아지는 것이다. 춤이란 게 늘 그렇지만 머리론 잘 안다. 몸이 따라주지 않을 뿐.




내가 계속 비틀거리는 이유는 단순히 부족한 하체근력 때문만은 아닌 듯하다. 어쨌든 지난한 연습의 과정을 통해  영상 속 나는 결국 턴을 모두 해냈기 때문이다. 1~2주 사이에 근력이 보강되면 얼마나 됐겠는가. 모든 일이  사실 그렇지 않을까. 공부하는 시간은 긴데 성적이 안 오르는 이유는 머리가 나빠서라기보다는 공부방법이 틀렸거나 제대로 집중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내가 여태 자전거를 타지 못하는 이유는 부족한 운동신경 탓도 있겠지만, 페달을 돌리기가 무서워 자꾸 발을 멈추기 때문에 제대로 된 연습이 안 되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계속 실패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다. 한 번에 지방을 태우겠다고 무리해서 운동을 하거나 극단적인 식단을 시도하기 때문에 빨리 무너지는 것이다.


아센디오의 턴도 결국엔 연습으로 해냈다. 생각날 때마다 돌았다. 아침에 열 번, 아이들 하원 전에 열 번, 저녁 먹고 또 열 번. 그래봐야 5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하루에 서너 번씩 돌았다. 아래층에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 계속 돌았다. 처음엔 지레 비틀거릴 나를 상상했다. 결과는 역시나 비틀 이었다. 1초도 안 되는 턴을 하면서도 실패를 예감한 걱정과 불안은 나에게만 부는 바람이 되어 나뭇가지처럼 뻣뻣한 나를 흔들어댔다. 그럴 때마다 집중하려 애썼다. 시선을 끝까지 앞에 고정한다는 생각 한 가닥만 붙잡으려 노력했다. 마침내 10번 중 5번 이상 빠르게 턴을 하고, 착지에 성공하기에 이르렀을 땐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지점에서 멈춰야 하는지. 어느 리듬에서 시선이 몸을 따라가야 하는지 말이다. 성공을 경험한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마침내 공부 요령을 터득하고, 속도를 내게 된 것이다. 걱정과 불안의 바람은 잦아들고, 공기를 일정하게 가르는 박자와 경쾌한 리듬이 살랑살랑 불기 시작한다. 그제야 나는 그 신바람에 나부끼는 깃털이 된다. 그렇다. 한 번 깃털이 되면 턴뿐만 아니라 다음, 그다음 동작들도 수월하게, 아니 그냥 내가 아이브가 될 수 있다.


"승연 씨, 연습했어요?"


요즘 영상 찍는 날마다 자주 놀라시는 선생님이다. 그런 선생님의 반응에 나는 미소로 대답한다.  힘없이 나부끼는 막대기 같던 수강생이 멋지게 리듬을 타며 턴을 하고, 가볍게 착지를 하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다음 동작을 해내는 모습에 많이 놀라기도 하셨을 거다. 난 이제 더 이상 구석진 자리를 먼저 꿰차고, 틀리는 나를 최대한 숨기기  바쁜 수강생이 아니다. 기가 바짝 살아난 나는 자신 있게 먼저 센터에 서보고 (사실 돌아가며 센터에 한 번씩 서기 때문에 먼저 서는 게 크게 의미는 없다.) 개인영상 찍을 때도 주저하지 않고 손을 든다.




스스로 느끼는 성장과 발전은 이렇게나 비약적이지만, 전문 댄서들의 영상을 보면 여전히 한없이 작아진다. 십 수년을 춤춰오신 선생님 옆에서 추는 나는 그저 조금 말랑해졌을 뿐 여전히 막대기일 뿐이다. 턴에 성공한 기쁨도 잠시 투어스 노래에 등장한 턴에서는 언제 턴을 했었냐는듯 또 다시 비틀거린다. 착지. 그거 먹는 거였나? 갑자기 착지 녀석이 매우 낯설게 느껴진다. 그래도 이제는 안다. 힘을 빼고, 그냥 연습하면 된다는 것을. 악착같은 믿음이 생겼다. 하다 보면 될 거라는. 그것도 좀 멋들어지게 말이다.


분수를 이해하는 것도 힘들어했던 아이는 이제 통분을 한다. 물속에 들어가는 것조차 무서워했던 둘째 아이는 이제  수영장 물속에서 공중회전을 돌만큼 수영을 즐기는 아이가 되었다. 지나고 보면 늘 아무것도 아니었듯이 내게 턴이 그랬다. 또 다시 턴이 어려워지더라도 묵묵히 해나가다 보면 전 보다 더 멋들어진 턴을 할 수 있게 된다.


계속 실패해도 이제는 괜찮다. 어차피 또 성공할 거니까.












이전 05화 크롭티에 찢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