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아닌 열정과 함께
“와, 나는 승연 씨 곧 그만 둘 줄 알았다니까요.”
나를 댄스학원으로 이끌어준 언니가 다시 일터로 돌아가게 되면서 같이 다닐 수 없게 됐다. 그때까지도 나는 언니에게 많이 의지 했었나 보다. 언니가 복직한 이후로 내가 많이 느슨해 보였었는지 나중에야 선생님이 내게 하신 말씀이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언니가 빠진 이후로 이상하게 5분씩 지각을 하기는 했다. 언니 없이 혼자 학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내 모습이 외로워 보이기도 했는가 보다.
“선생님이랑 너랑 어떤 부분이 다른지 복습 영상을 잘 봐봐.”
“승연 씨, 가사를 좀 알면 편해~ 많이 듣고, 가사를 외워봐!”
엄마보다는 다정하고, 친구보다는 타이트했던 언니의 잔소리. 그때까지만 해도 ‘뭘 그렇게까지....’라는 마음이었다. 연습을 조금만 더 하면 잘 할거 같은데 겨우 어설프게 안무만 외워오는 내가 언니 입장에서는 좀 아쉬웠던 것 같다. 아마 언니의 잔소리가 없었다면 지금처럼 춤에 빠져 안되던 동작이 될 때까지 연습해오는 오기는 경험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열 명 남짓한 수강생 중에 성실로는 언니를 따라 올 자가 없었으니 선생님의 오른팔 역할을 제대로 담당하고 있기도 했다.
“윤이 씨, 우리 어디까지 배웠죠?”
“윤이 씨가 앞에서 좀 춰 줄까요?”
춤 뿐만이 아니다. 일찍 와서 선풍기와 에어컨을 미리 켜두기도 하고, 여행을 다녀오면 꼭 선생님과 수강생 언니들에게 선물을 다정하게 건네던 언니. 그런 언니의 존재감이 나에게 상당하긴 했다. 영상 찍기 전날엔 늘 같이 옷을 고르고, 의논했는데 그 재미가 없어졌다는 것도 슬픈 일이었다.
의지할 언니가 없어 적적하긴 했지만, 다른 수강생 언니들과 막 친해질 무렵이기도 했다. 몸을 움직이다 보면 마음이 좀 풀어지는 구석이 있다. 선생님의 농담 한 마디에 다 같이 빵 터지기도 하고, 민망함을 무릅쓰고, 돌아가며 영상을 찍는 날엔 오버스러울 정도로 서로를 응원하면서 천천히 가까워지고 있었다.
개인적으로 연락하던 사이는 아니었지만, 언제부턴가 서너 명의 언니들과는 영상을 찍고 나면 꼭 커피를 마시러 가기 시작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알게 됐다.
‘와.. 이 분들도 보통 아니네.’
그렇게 서로의 춤에 대한 열정을 확인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져 ‘노진스’라는 그룹을 탄생시키기에 이르렀다. 특히 그 사이에서 춤도 잘 추지만, 유독 스타일이 좋고, 연예계 소식에 빠삭한 언니가 있다. 지금은 우리 사이에서는 뉴진스를 디렉팅 했던 ‘민희진’으로 통하는 언니다. 우리가 편해지자 언니는 적극적으로 우리의 스타일을 챙기기 시작했다.
영상 촬영 일주일 전부터 시작되는 의상 디렉팅. 탑을 안에 입고, 셔츠를 걸치거나 묶자던지, 청바지보다는 카고바지가 어울릴 거라든지 하는 콘셉트가 무척 세심하다. 덕분에 돈을 좀 쓰기는 했지만, 춤에 더 재미를 붙일 수는 있었다. 나연 노래를 추기 전엔 스카프를 멋있게 두른 콘셉트 사진 수 십장이 톡방에 올라왔다.
"뭐, 꼭 하자는 건 아니고요.... 집에 있으면 하나씩 챙겨 와 보는 건 어때요?"
행여나 우리가 불편할까 싶어 조심스럽게 권하는 언니의 다정함에 반해버렸다. 덕분에 나는 등산할 때 메던 페이즐리 스카프를 멋지게 활용할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그 스카프도 등산멤버였던 동네언니가 사준 거였는데!
어떤 날은 큐빅과 리본을 글루건으로 직접 붙여 만든 검정 머리끈 수 십 개를 가져오기도 했다.
“불편하면 안 메도 되는데, 그냥 예쁠 거 같아서 만들어 봤어요~~~.”
이번에도 언니는 조심스럽게 직접 제작한 머리끈을 우리에게 건넸다. 행여나 누군가는 불편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언니는 ‘꼭 하라는 건 아니고~~.’라는 말을 늘 덧붙였다.
아무리 내가 춤을 좋아한다지만, 1년 동안 한 학원에서 수업은 물론 연습까지 꾸준히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떤 날은 내가 아프거나 어떤 날은 아이가 아팠다. 솔직히 그냥 집 밖을 나가기가 귀찮은 날도 있었고. 그렇게 한 두 번 수업을 빼먹으면 그때 배우고 있던 곡은 포기할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한 번 포기하면 다음곡이 시작될 때 다시 학원에 가는데는 두 배의 의지가 필요했다.
연습 좀 하라는 잔소리와 관심, 의상 콘셉트를 정하느라 하루 종일 이어지는 카톡, 배려를 잔뜩 머금은 콘셉트 디렉팅에 영상을 찍고 나서는 꼭 모여 시시덕거리게 되는 뒤풀이까지.
학교에 간다고 공부만 하는 게 아니듯, 댄스학원에 다닌다고 춤만 추는 건 아니었다. 보통 아닌 열정만큼이나 보통 아닌 다정함들에 힘입어 1년째 무사히 춤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당장 다음주가 촬영인데, 아직 톡방이 조용하다. 노크 한번 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