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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성우 Jan 24. 2024

30살, 연봉 7천만원 주는 회사를 그만두다.

1년 동안 갖게 될 나만의 Gap Year 기록기 

1. 명문대 졸업

2. 대기업 인사팀

3. 30살 연봉 7천만원


3개의 이력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나라 사회가 요구하는 길을 훌륭하게 따라가고 있다는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나의 경우 스스로를 평가하면서 저 이력을 볼 때면 두가지 생각이 든다.

먼저, 나에게 참 과분한 이력이라는 것.

그리고 저 단어들로는 나를 설명할 수가 없다는 것. 




나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관심이 많은 아이였다.

일곱살 쯔음이었나, 집에서 짱구를 보다가 문득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왜 짱구를 보다가 생각이 났는지는 나도 모른다.)


나라는 존재가 無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상태가 '영원히' 지속된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았고, 엄마에게 달려가 죽기 싫다며 엉엉 울었다.

그 이후로 죽음이라는 두려움은 나의 뒤를 항상 따라다녔고 다음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어차피 죽는데 인간은 왜 사는가?" 당연하지만 당연하지 않은 질문.

니체의 영원회귀론, 인생은 부조리라는 까뮈의 철학, 불교의 윤회사상 등을 열심히 공부하며 내가 내린 결론은 "인생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 바로 허무주의이다.

그리고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라는 영화를 본 뒤 '그럼에도 그 한줌의 시간을 소중히 할거야'라는 대사로 표현되는 '낙관적 허무주의'가 내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었다.

결론적으로 우리 인생은 그 자체로 아무 의미가 없지만 내가 의미부여를 해나가야 한다는 것.

그게 내 삶의 모토다.


이런 생각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에 대해서도 의미부여가 필요했다.

어쩌면 사람이 살면서 잠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바로 '일'을 할 때인데,

아무 의미 없는 일을 한다는건 내게 절대 용납이 안되었다.

실제로 나는 졸업 후 한학기동안 자소서를 쓰지 않았다. '지원동기'를 쓸 수가 없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 때 대춘기를 쎄게 겪었던 것 같다)


고민 끝에 내가 정한 '일'에 대한 가치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자'는 것이었다.

'도움 = 봉사'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무작정 해외봉사에 갔고 그 곳에서 인생 최고의 순간들을 보내게 된다.

그 후 KOICA 인턴에 지원하여 중앙 아시아 아동 보건사업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다만 봉사와 국제협력산업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었고 높은 수준의 전문성과 희생 정신을 필요로 했다.

다른 진로를 물색한 나는 직장 내에서 구성원들의 육성을 도와주는 HRD 직무를 선택했고

어느덧 5년차가 되어 연봉 7천만원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인이 되었다.


여기서 끝난다면 해피엔딩이지만, 불행히도 나는 현재 행복하지 않다.

왤까? 스스로 가치를 정하고 그에 맞는 길을 찾아 높은 연봉을 받으며 일하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HRD라는 직무는 나와 굉장히 잘맞고 이보다 나에게 좋은 직무를 회사 내에서 찾긴 어려울 것 같다.

신입사원들 대상으로 교육을 기획/운영하는 것도 재밌고 그들의 반응 또한 매우 좋았다.

다만 내 마음속에선 계속해서 '이건 아니야'라는 외침이 들렸다. 회사를 옮기면 해결이 될까 싶어서 실제로 이직을 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변화하는 것은 없었다.


일년 동안 고민 후 그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1. 도움을 주는 방식의 한계 


먼저, 내가 주는 도움에 한계가 있었다.

도움을 주는 것에는 여러 방법이 있다. 단순하게는 직접적인 도움, 간접적인 도움으로 나눌 수 있다.

HR 관점에서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신입사원들에게 줄 수 있는 간접적인 도움은 교육과 멘토링이 있고 

직접적인 도움은 부서 재배치, 사수의 보살핌 등이 있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은 간접적인 도움이었다. 하지만 신입사원이 가진 고민은 대부분 직접적인 도움이 필요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밥을 사주며 잘 될 것이라고 위로하는 것 뿐인 경우가 많았다.


2. 너무나 광범위한 가치관


'도움을 준다'라는 가치관은 너무나 광범위하다. 영업사원도 언제든지 고객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내 인생에서 최고로 몰입했을 때의 나의 경험을 떠올리면 단순히 도움을 주는 것을 넘어

다른 사람들과 협업하며 긍정적인 시너지를 내고, 문제해결력을 통해 어려운 목표를 함께 달성하고, 

그 성과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일 때 나는 가장 행복했다.

현재의 모습은 '도움을 준다'라는 큰 범위에서만 일치하고 위 3가지 조건을 만족하지 않았다.


3. 회사라는 한계


회사는 봉사단체가 아닌 이익집단이다.

결국 '도움을 준다'는 행위도 회사의 이익과 일치했을 때 가능한 것이다.

신입사원들에게 도움을 주는 행위의 아래에는 '회사에 오래 남아 잘 다녀라'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 대한 정이 많아서 조직의 이익 실현과 사람에 대해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이 충돌했었다. 누가봐도 이 회사가 맞지 않은 신입사원에게 그래도 잘 버텨보라고 말했을 때 가슴이 아팠다.




이러한 이유가 누적되어 어느새 나 또한 매너리즘에 빠졌고,

하루하루 시간을 억지로 보내며 주말만 기다린채로 회사에 출퇴근했다. 

누가 말을 걸면 짜증부터 났고 일을 시키면 어떻게 빨리 쳐낼지를 고민했다.

어느날 신입사원의 질문에 짜증 섞인 대답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을 때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불확실성보다는 불행을 선택한다.


자신의 일을 너무 사랑하고, 빨리 일을 하고 싶어서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직장인을 본 적이 있는가? 

그런 사람이 있다면 아마 대다수는 정신이 이상하다고 욕을 할 것이다.

반대로, 출근이 너무 싫고 출근해서는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새로운 일이 생기면 한숨부터 쉬는사람이 있다. 

이 사람은 인생의 3분의 1을 '퇴근 시간'만 기다리며 보낸다. 

과연 누가 이상한 사람인걸까?


극단적인 예시이지만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설레는 일을 한다는 것은 소수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축복과 같은 일 같지만,

내게 있어서 그 차이는 용기를 내었는지 아닌지일 뿐이다.


사실 브런치에 처음 이 글을 썼을 때 퇴사 후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대략적으로 적어놨지만 지웠다.

그만큼 내가 아직 뭘 하고 싶은지 불명확하고, 단순히 회사에 대한 회피성 퇴사가 아닌지 의심이 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나는 나를 잘 안다. 상황이 주어지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임을. 그리고 답을 찾을 것임을.

마지막으로, 실행하지 않는 한 내가 느끼는 갈증은 계속 될 것임을.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를 믿고 나에게 1년간의 Gap Year를 주기로 했다. 

퇴사 후 나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동안 하고 싶었지만 회사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하지 못한 것을 하고자 한다.


1년 후 나는 어떤 사람이 되어있을까?

회사에 계속 다녔다면 승진을 하고 연봉이 천만원 정도 올랐을테고, 하는 일은 아마 비슷했을 것이다. 대충 모습이 그려진다. 1년 뿐 아니라 3년, 5년, 10년 후도 말이다.

회사에 다니지 않는 나의 1년 후는 나도 상상이 안된다. 

뜻하지 않은 기회를 맞이 했을 수도 있고, 여러번의 실패를 맛보고 좌절했을수도 있으며, 여행가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다시 회사로 돌아갈 수 도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불확실성이 나를 두근거리게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브런치에 기록하고자 한다. 

현재 시점, 퇴사 D-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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