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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Feb 07. 2020

조직개편의 풍랑에 종이배를 띄우다

신대륙에 잘 도착해주겠니

 회사는 바야흐로 조직개편 시즌이다. 보통 일 년에 한 번은 조직이 바뀐다. 팀이 생겼다 사라지고 사람이 오간다. 생각해보면 쭉 같은 일을 해왔고 앞으로도 크게 다르지 않은 일을 할 회사인데, 조직은 왜 그렇게 자주 바뀌는지 모르겠다. '이번엔 이렇게 해볼까' 하다가 일 년이 지나 '과연 별로네' 하고 다시 예전의 어느 버전으로 회귀한다. 누군가 그간의 조직도 변화를 찬찬히 들여다봤다면 짧은 역사 속의 놀라운 타성에 감탄하리라. 그렇기에 우리 회사의 부단했던 조직개편은 실은 경영효율을 위한 '최적의 조직'을 찾는 대장정은 아니었던 셈이다. 그보다는 현재 있는 사람들을 업무와 직급, 그리고 회사 내 힘의 논리에 맞추어 적절히 배분할 수 있는 조직을 찾는 일에 가깝다.


 조직개편이 어떻게 되든 중요한 것은 일신의 거취다. 나의 경우 한 부서에서 3년 이상을 보내게 되면 하는 일에서 더 이상 새로운 것을 찾기가 어렵고 따분해진다. 그러나 그만큼 일이 손에 익었기에 몸이 편한 장점도 있다. 이런 시기에 새로운 부서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기면 갈등하게 된다. 잿더미에서 열정의 불씨를 다시 헤집어 호호 불어 볼 것인가, 아니면 편하게 눌러앉아 그날그날의 저녁을 알차게 보내는 일에 집중할 것인가.


 사람들은 이번 주 내내 마음이 붕 뜬 것 같다. 조직개편과 관련한 작은 소식도 삼삼오오 모여 소중히 나눈다. 긴밀히 접촉한다. 우리 팀도 분명한 변화를 앞두고 있는 터라 마음이 싱숭생숭하다가 될 대로 되라는 단계에 왔는데, 오늘 부서장으로부터 이곳에 남겠느냐, 희망하는 새로운 부서로 가겠느냐 하는 너무나 명료한 질문을 받고서, 짧은 고민 후에 네 가겠습니다! 하고 조직개편의 풍랑에 나의 작은 종이배를 띄워버렸다.


 이런 질문을 받았을 때 '정해주시는 대로 하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선택하는 일은 피하는 사람들도 많다. 선택이란 50% 이상의 확률로 어떤 형태로든 후회를 남기기 때문이다. 옮겨 갔는데 일이 너무 힘들다거나, 같이 일해야 하는 사람이 쉣이라거나 뭐 그런 것들이다. 내가 왜 그랬지, 편하게 있을 걸.


 생각해보면 나는 이러한 선택의 기로에서 항상 변화를 택했던 것 같다. 짧은 인생,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지는 못할 망정 이 좁은 틈바구니 속에서라도 새로운 일을, 새로운 사람을 하나라도 더 겪으며 살자는 주의다. 항구를 떠난 나의 배가 희망봉을 너머 신대륙까지 잘 도착해야 하는데, 마지막 뚜껑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것이 인사다. 나의 가냘픈 종이배야 종이배야, 신대륙까지 잘 도착해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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