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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Oct 15. 2023

여기만 아니면

될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점심시간. 도시락 싸 오길 잘했다. 간장버터계란밥을 전자레인지에 넣어 돌려놓고 상담실 문을 열었더니 이미 배달음식을 깐 홍보팀 직원들로 만석이다. 어쩔 수 없이 사무실 한 편의 원형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창 밖의 우중충한 구름의 형상에 주목하며 고소한 밥을 한 술씩 떠서 입에 넣는데 김 과장과 이 과장이 도시락을 들고 부산하게 합류했다. 자작하게 끓인 된장 짜글이에 상추 무침에.... 야무진 어린 사람들이구만.


 "차장님도 이 업무 1년 되셨죠?"

 "어허잇! 벌써 1년 하고도 반이 넘었어요! 어서 떠나야 하는데."

 "으... 저는 올해 말이면 만 4년이에요. 이제는 진짜 보내주겠죠?"

 "가고 싶은 부서가 있어요?"

 "없어요! 근데 이제 그냥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아요."


  그녀가 일하는 부서도 업무 강도가 세기로 유명하다. 처리해야 하는 계약 건들이 전 부서에서 쉴 새 없이 밀려든다. 매일의 업무 강도에 도솔미솔 도솔미솔 리듬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듣자 하니 거기는 오전 9시 땡 하고 오후 6시까지 "쏘오오오올------"이란다. 부디 그녀에게 좋은 길이 열리기를!


  나는 입사하고 바로 기피부서(민원류)에 배치되었는데 거기서 만 5년을 근무했다. 일을 시작할 때는 그곳이 기피부서인지 뭔지도 몰랐다. 입사 후 얼마간은 여느 신입처럼 나도 해맑았던 것 같은데 분위기 파악을 하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금방 무표정해졌고, 스스로를 지켜보려는 방어기제로 어설픈 날을 세우는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경영학 시험을 보고 입사했던 나는 전통적 경영의 영역(기획, 인사, 재무, 마케팅, 인적자원관리 등등 좋은 단어)과 관련된 부서에서 일하고 싶었다. 나 정말 공부도 열심히 했고 여기만 아니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매년 희망부서를 조사할 때마다 이런 포부를 소상히 기재했지만 대체 누가 그걸 보는 건지 어쩌는 건지 아무런 변화도 생기지 않았다. 어느 해인가 이제 정말 포기하여 '그래 어디 여기서 팀장까지 한번 해보자' 하고 마음을 고쳐 먹은 해에 갑자기 마케팅 관련 부서로 발령이 났다. 그 후로 마케팅, 기획, 홍보 등 내가 그렇게 가고 싶어 하던 다양한 부서를 순환하며 일하게 되었지만 여기야! 하는 부서는 정말 없었던 것 같다. 신은 회사 안에서는 절대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도록 세상을 설계한 것인지, 일이 재미있으면 사람이 싫었고 사람이 좋으면 일이 싫었다. 이것은.. 진리다! 


 짧지 않은 직장생활을 돌아보면서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회사 안에 완벽한 곳은 없다는 사실 하나 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오히려 현재를 버티는 힘이 되기도 하고. '여기만 아니면 된다'는 맘이 들 정도면 앞으로 회사 내 어떤 업무도 사실 두렵지가 않기도 하고. 좋은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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