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가 달라졌어요
나는 3년 정도 막내 생활을 했다. 막내 업무의 달인이 되어갈 무렵 다음 기수가 입사했고 나는 하산했다. 그러고서 6년 동안 채용이 없었다. 3년 만에 신입을 받을 때도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는데 무려 6년이라니. 모든 부서에 신입이 배치될 수는 없으니 후배 기수는 물론이고 운이 나쁜 동기들은 10년 가까이 팀에서 막내로 지내온 셈이다. 사회가 늙어가는 속도보다도 빠르게 사내에서는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쭈뼛거리던 청년들은 두 아이의 아빠나 엄마가 되었다. 막내가 불혹을 맞기도 했다. 우리는 그냥 다 같이 늙어갔다.
정상적인 회사라면 말도 안 되는 상황일 테지만 생각해보면 그만큼 경제상황이 좋지 않았던 탓이기도 하다. 지금도 물론 나아졌다고 할 수는 없지만 임금피크제 실시나 청년고용과 관련된 이런저런 정책들이 실제 채용에 영향을 미치고 있긴 한 것 같다. 올해까지, 우리 회사는 3년 연속 신입사원을 채용했다.
처음에는 신입사원이 들어온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실로 오랜만에 겪어보니 신입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도 명확했다. 신입사원들은 회사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첫 변화는 서로 간의 인사에 왔다. 같이 늙어가는 사이인 우리들은 서로 대충 인사했다. '안녕하세요'를 빠르고 낮게 읊조리면 [으냐셰] 정도가 되는데, 우리는 '으냐셰'하며 눈짓으로 설렁설렁 인사해왔다. 안 그래도 피곤한 회사살이 10년 지기인 우리는 서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문을 벌컥벌컥 열어 허리를 90도로 숙이고 '안녕하십니까'하고 명확한 발음으로 인사하는 20대의 사람이 사무실에 나타나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당황하며 눈을 피하던 우리들은 어느새 '으냐셰'를 조금 더 길고 정확하게 발음하기 시작했고 다소 일그러진 것이나마 미소까지 짓기 시작했다.
두 번째, 우리는 질문이라는 것을 다시 시작했다. 이것은 정말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다. 신입이 들어오면서 그들에게 뭐라도 물어봐야 했던 것이다. 너도 나도 딱히 궁금한 것은 아니지만 호구조사를 통해서라도 신입에게 관심을 표현해야만 한다는 직장선배로서의 강박이 우리를 질문하는 인간으로 만들었다. 그동안 우리는 서로의 개인생활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10년 지기 사이에 궁금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권태로운 관계다. 그런데 'OO 씨는 어디에 살아요?' '출근할 때는 뭐 타고 와요' '아침은 먹었어요?' '퇴근하면 주로 뭐해요' 등의 직장선배 매뉴얼에나 나올 법한 질문을 신입에게 수줍게 건네는 모습들을 보고 있노라면 입에서 나오는 그 단어들의 조합이 너무나 어색하면서도 뭔가 인간의 잃었던 한 기능을 되찾은 기분이 든다.
세 번째, 우리는 다시 배우기 시작했다. 많이 늙어버린 우리에게는 보통 더 배워보려는 의지가 없다. 아는 만큼 일하고 모르는 일은 모르는 대로 내버려둔다(알면 해야 한다). 그런데 무엇이든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을 가진 너무 어린 사람이 사무실에 나타나 일에 대해 묻는 것이다. 차마 모른다고 할 수 없는 우리들은 모른 척 내버려 둔 것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신이 나서 설명하는 것이다. 배우는 기쁨보다 가르치는 기쁨이다. 물어보면 다시 몰래 배워 알려주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동반성장이다...
물론 신입의 마법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아무리 길어야 1년 정도인 것 같다. 나도 힘이 빠지고 신입도 힘이 빠져 함께 '으냐셰'로 복귀할 때쯤 또 다른 신입이 들어오면 다시 회사가 칙칙폭폭 달리기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2주 전에 입사한 신입이 책상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를 엄청나게 써내려가는 뒷모습을 보더니(그들은 뭔가를 계속 쓴다!) 작년에 입사한 신입이 '과장님, 저 등에 넘치는 열정 좀 보세요'하며 눈부셔했다. 내 눈!! 우리 회사 사람들은 이래서 회사에 정기적인 채용이 필요한 것이구나 하고 많이들 깨달았을 테지만 6개월 단위로 신입이 들어오는 좋은 회사들은 신입의 고마움을 모를 것이다. 회사는 신입이 들어오기 전과 후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