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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Oct 15. 2023

아니, 왜 쉬질 않으세요?

그들이 말하길

 지난해 6월에 정년퇴직을 하신 직원분이 퇴직 이후 번듯한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는 퇴직 이후에도 사무실에 가끔 들렀는데 신입시절 같은 부서에서 일을 해서 그를 가까이 대했던 나는 그를 붙잡고 진심으로 물어보기에 이른다.


"아니, 왜 쉬지를 않으시는 거예요. 저는 퇴직하는 날만 기다리고 있는데. 왜 계속 일이 하고 싶으신 거예요? 정말 궁금해서 그래요... 돈도 많으시고 취미도 많으신데!"

"내가 퇴직하고 1년 쉬어봤잖아. 한 3개월까지만 좋고 그 이후에는 진짜 노는 것도 힘들어. 하루종일 집에 있을 수도 없고 맨날 나가서 놀 수도 없고. 와이프 눈치 보여."

 그는 지금까지와 전혀 새로운 일을 배우며 자리에 적응하느라 하루하루 힘들어하고 있다는 후문.


 퇴직을 앞둔 선대 직장인들은 한결같이 퇴직이 아쉬운 눈치다. 내가 회사에 입사했을 때 지금의 내 나이 정도였던 여자 부장님은 퇴직을 1년 앞둔 시점부터는 '하루하루가 아깝고 아쉬워...'라고 하시며 더욱 열정적으로 일을 하셨다. 그녀는 퇴직일 사내 게시판에 직장생활에 대한 소회가 담긴 장문의 글을 남겼는데 '월급 받는 만큼 열심히 스트레스도 받으십시오!'라는 그녀의 메시지는 많은 직원들을 울컥하게 했다. 대다수의 직장인이 하고 싶지 않지만 생계를 위해 일을 하면서 어떻게 스트레스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트레스는 자연스러운 것이고, 관리의 대상일 뿐 스트레스를 받으며 사는 삶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우리는 망해버린 것이 아니었잖아!


 돌아보면 마지막 공로연수 기간을 반납하고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 대형버스 면허증을 따시는 분들도 있고. 처음 들어보는 기사 자격증도 갑자기들 따시고. 그들은 경제적 여유가 있더라도 은퇴 이후의 '일하는 삶'을 지속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은퇴해서 아무것도 안 하는 삶을 살고 싶은 나에게 선대 직장인들의 이런 일관된 모습은 '일하지 않는 삶'에 대해 내가 가진 욕망을 무색하게 한다. 


 어떠한 것이든 그 끝에서 소중해져 버리고 마는 자연스러운 법칙 중의 하나일지도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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