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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풍뎅이 시인 Mar 31. 2018

아저씨와 아줌마랑 일하기

회사라는 Melting Pot

 일을 하다 만난 박사님과 커피 한 잔을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그녀의 자녀교육 철학에 이르게 되었다. 그녀는 오직 '여러 세대와 잘 지내는 사람'으로 자녀를 키우고 싶다고 했다. 결국 조직 속에서 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보통의 인간인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양한 연령층의 사람들과 잘 살아가는 것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 답했다. '정말 그렇네요. 전 그걸 못 배운 것 같아요.'


 명절이면 친척으로 북적거리는 집안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고 학창 시절에는 친구들과의 교류에만 충실했던 탓에 나는 나와 다른 세대의 사람을 소통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못한 것 같다. 입사하기 전까지 '아저씨나 아줌마'로 대표되는 나이의 사람들과는 이렇다 할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가 되어 본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회사라는 곳은 하루에 8시간, 주 5일을 이 아저씨, 저 아줌마는 물론이고 가끔은 할아버지, 할머니와도 진지하게 소통하며 끊임없이 부대껴야 하는 곳이었다. 그렇게 어울리는 법을 몰랐던 나에게는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이 많았다. 그러나 회사는 내가 납득에 힘을 쏟기보다는 그 속에서 적절히 조화되기를 바라는 곳.


 회사생활에서 '업무'를 매개로 하는 관계보다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동료 간에 일대일로 맺어지는 사적관계이다. 직장 내의 그러한 관계가 때로는 스트레스가 되어 동료와 일정 선 이상 가까워지는 것을 꺼리는 사람도 많다(나 포함). 하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내는 사람들과 단순히 '직장동료'로만 지낸다는 것은 되려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내가 아저씨, 아줌마와 어울리는 법을 배우지 못하고 몸을 사리며 그 부자연스러운 일을 해내고 있는 동안, 누군가는 서로 형 동생, 언니, 오빠 하는 사이들이 되었다. 차장님이 삼촌 같고 부장님을 이모나 고모 대하듯 하거나 할아버지를 대할 때처럼 살갑게 본부장님을 대하는 사람도 있다. 난 다시 직장생활을 다시 시작한다고 해도 그런 관계를 맺어갈 자신은 없지만, 그들은 분명 아재와 줌마들 틈에서의 즐거운 생활방식을 깨달은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은 든다. 

 아랫사람과 맺는 관계도 마찬가지다. 벌써 나와 열 살 차이 나는 사람들이 신입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딱히 무슨 말을 건네야 할지 벌써 모르겠다. 나에게는 그 흔한 조카도 없어 이런 소통이 생판 처음이고 낯설다. 나는 대충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던 부조리한 일들을 조목조목 따져 올바른 방향으로 바꾸는 친구들도 있다. 세대가 다르구나 하는 것을 벌써 느끼는 것이다. 앞으로는 20년, 30년이라는 시간의 간극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회의도 하고 파트너도 되어 회사살이를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어린 사람들을 내가 충분히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을 것인가를 생각하면 내 자질에 의문이 든다. 그들을 진정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회사생활은 지옥이 될텐데.

 

 회사는 내 옆에 앉은 사람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 수가 없는 곳이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을, 혹은 나보다 어린 사람을 끊임없이 이해하며 서로를 조율해야 하는 공간이다. 구식도 받아들여야 하고 새로운 것은 인정해야 한다. 조율에 실패하는 순간 회사는 지옥이 된다. 누군가를 폄하하고 무시하는 일에 온 정성을 쏟다 축이 난다. 이런 공간에서 수십 년의 시간을 보내야 하는 우리 모두에게 진짜 절실한 능력은, 이해할 수 없는 '여러 세대와 잘 지내는 것'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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