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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세스쏭작가 Apr 06. 2024

부부의 사랑은 분리수거할 때 싹튼다

결혼식 말고 결혼을 잘하고 싶었던 여자

 "보통 부자를 산다고 하지만 부자는 돈이 많다는 뜻이지 산다는 뜻이 아니래요. 그리고 산다는 뜻은 사이가 좋다는 뜻이래요. 대한민국에 실제로 부부 사이가 좋은 집이 있다고 합니다." 내용이 유익하고 재미있어서 여러 번 들었김창옥 강사님 강 일부입니다.


 어려서부터 잘 산다의 기준이 물질보단 정신적 요소에 있었던 저였기에 더욱 공감이 습니다. 사는 사람, 사는 가정대해 이야기를 나눌 돈이 주인공이 되는 광경을 자주 봅니다. 부자를 통상 '잘 사는 사람'이라고들 표현하지만 '사는 삶'에 대한 자신만의 의미를 재정비할 때입니다.


 돈이 많으면 잘 사는 것이라는 주장 빈약하게 느껴지곤 했습니다. 부모님이 부자인 남자와 결혼한 지인을 보며 하객들이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우와. 결혼 한번 잘했네." 당시에 대학생이었던 저는 부러워하는 하객들 틈에서 의아했습니다. '부모님이 부자인 남자와 결혼하면 결혼을 잘한 건가?' 물질적 요소 하나만을 보고 결혼을 평가하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나 복잡한 장기 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기준은 내게 맞지 않는 상대를 걸러내는 거름망 역할을 톡톡히 했습니다. 물질적인 조건은 우수하나 인적 요소가 아쉬운 사람이라면 깊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지요.


 먹고픈 음식을 돈 걱정 않고 먹을 수 있는 소박한 재력. 기복 없는 사랑을 꾸준히 느끼게 하는 사람. 주일이면 함께 교회에 가는 배우자를 만나는 것이 저의 오랜 꿈이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이에 부합하는 배우자와 오손도손 살고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가 결혼을 잘했다고 느끼는 때가 바로 분리수거하는 날입니다. 우스울 만큼 소한 일례이지요?

 우리 아파트의 분리수거 날은 매주 월요일입니다. 귀찮은 분리수거를 마치고 나면 고된 월요일 하루를 마쳤음을 기념하며 잠깐의 산책을 즐깁니다. 입소문 난 간식을 찾기 위해 편의점 투어를 때도 있고 달빛을 따라 가는 대로 동네 바퀴를 걷기도 합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단짝친구와 거니는 발걸음에는 행복이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분리수거를 하러 나온 김에 작고 확실한 행복을 낚으러 다니는 시간을 애정합니다.


 날이 궂거나 아내가 집안일로 분주할 때면 남편은 혼자 분리수거를 하러 나갑니다. "얼른 끝내고 올게." 네 일, 내 일을 나누지 않고 솔선수범 하는 태도는 우리 부부 사이를 돈독하게 만드는 치트키입니다. 매주 한 번씩 해야 하는 번거로운 분리수거가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을 느끼게 해 줄 때도 많습니다.


 월요일 밤에 남편의 당직 일정이 잡힌 적이 있습니다. 밤을 새워야만 하는 노곤한 근무를 앞둔 남편은 연신 분리수거를 두고 걱정했습니다. 버려야 하는 물건이 많지 않았는데 말이죠. "나 혼자 해도 되니까 걱정 마."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습니다. 당직실로 가는 남편을 배웅하던 찰나에 남편이 "아!!" 하고 외쳤습니다. 놀란 저는 "왜? 뭐 빠뜨렸어?" 하고 얼른 물었습니다. 남편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내가 화요일 오전에 집으로 오잖아. 분리수거 끝나기 전에 도착하니까 혼자서 하지 말고 그냥 둬. 알았지?"

 저는 웃으며 분리수거 하나를 두고 뭘 그렇게 마음 쓰느냐고 답했습니다. 당시엔 가벼이 넘겼는데 이 일이 두고두고 고맙더군요. 밤새 혼자 집을 지키고 짝꿍 없이 외롭게 분리수거를 할 아내가 어지간히 신경 쓰였나 봅니다. 이런 마음을 오래오래 바래지 않도록 잘 간직하고 싶습니다. 멀리서 행복을 찾을 것 없이 바로 이런 순간 '결혼 한 번 오지게 잘했네.' 하는 만족감이 듭니다.


 '잘 결혼', '잘 사는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짧은 결혼식보단 긴 결혼 생활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값비싼 혼수로 집을 가득 채울 능력은 안 됐지만 정신적 혼수만큼은 두둑이 채우고자 노력했습니다. 잠든 남편의 안경을 깨끗하게 닦아 놓고 배우자를 위한 기도로 하루를 마무리하기, 내가 누리는 것들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감사함 표현하기. 소한 노력 가정에 큰 활력과 행복을 불어넣었습니다.


 사랑이 충만하면 남이 가진 것에 불필요한 관심이 쏠리지 않습니다. 한 지붕 아래 사는 내 편을 남의 편으로 등지길은 비교입니다. 타인의 시선이 아닌, 의 내면에 주파수를 맞추세요.

 부부의 사랑은 분리수거 현장에서 검증되기도 답니다. 번거로움을 즐겁게 나눌 수 있는 사람과 함께하면 인생이 제법 신바람 납다. 작은 것을 잘 챙는 사람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행복한 일상이면 잘 사는 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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