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 로스 증후군을 앓고 있을 때의 일이다. 피난처가 돼 줄 책을 찾고자도서관으로 향했다. 이를 다룬 책이 많지 않았다. 도서 검색대에서 청구 기호가 적힌 몇 장의 용지를 출력했다. 갈급한 마음으로 책 두어 권을 꺼내 들었다.그런데 꼭 읽고 싶었던 책 한 권이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 봤던 곳을 보고 또 보고여러 번 훑어본후에 사서 분께 문의를 드렸다.
"안녕하세요. 죄송하지만 이 책이 보이지 않아서요."
"도서 용지 좀 보여 주시겠어요?" 책 정보를 확인한 사서 분은 "보존 서고는 여기에 없어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도서관을 이용해 왔는데 처음 접하는 상황이었다. 보관 중인 도서와 보존 서고의 개념이 다르다는 걸 몰랐던 나는 의아했다. '본래 모든 책은 도서관에서 보관 중이지 않나?' 돌려받은 종이를 자세히 보니 '대출 가능(비치 중)이라는 문구 위에 '보존 서고'라는 네 글자가 보였다. 직원 분은 잠시만 기다려 달라하시며 홀연히 자리를 뜨셨다.
잠시 후 그녀가 책 한 권을 들고 돌아왔다. 역시 사서는 도서관에 산타 같은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보존 서고라는 게 있는지 여태 몰랐어요. 추후에 안내 데스크로 직접 가져다 드릴까요?" 어렵사리 대출한 책을 품에 안고 물었다. "네. 여기로 다시 주시면 돼요." 잘 읽겠다고 감사 인사를 드린 후 창가 자리로 와서 책을 펼쳤다.
'펫로스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의 편지' 부제만으로도 마음이 아주 따뜻해짐을 느꼈다. 기대를 품고 책을 한 장 한 장 정독했다.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내용이 너무 이상했다. 죽은 강아지의 심령을 불러서 매일 밤 침실에서 만나는 이야기. 사후 세계에 사는 개와 접선하여 환상을 경험한 사례가 줄을 이었다. 가뜩이나 내 심리 상태도 불안정한데 어찌나 오싹하던지. 이런 식의 위로는 전혀 바라지 않았다. 세계관의 충돌에 혼란을 느낀 나는 얼른 도서의 정보를 검색해 보았다. '아.심령 연구가가 쓴 책이구나.'
책을 펼친 지 몇 분이 채 되지 않아 다시 안내 데스크로 갔다. "감사합니다. 잘 봤습니다." 내가 머쓱해하며 책을 돌려 드리자 사서 분께서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표정으로 반납 처리를 도와주셨다. 괜한 수고를 끼쳐서 어찌나 죄송하던지.
얼마 후 '사서, 고생'이라는 김선영 사서 님께서 쓰신 책을 흥미롭게 읽었다. 그리고 '보존 서고'를 다룬 내용을 보고 한 번 더 뜨악하고야 말았다. 도서관 이용자들이 '보존 서고'를 찾아달라고 하면 등줄기에 땀부터 흐른다는 속사정이 적혀 있었다. 보존 서고를 찾는 일은 한양에서 김 서방 찾기처럼 어려운 일임이 분명했다. 앞으론 '보존 서고'라는 사자성어(?)를 접하거든 단박에 마음을 접겠다 다짐했다.
근거 없는 추측이다만, 한 권의 책이 쾌적한 열람실에서 보존 서고 창고로 유배를 가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지 않을까? 보존 서고에 얽힌 비밀을 알았으니 열람실에 꽂힌 책으로 만족하는 도서관쟁이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