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손발이 준 선물
어릴 적부터 생각이 많았었다. 그 많은 생각들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적으며 머릿속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왜 그리 다이어리에 집착이 있었는지 색깔펜으로 예쁘게 노트를 정리하고 나면 기분이 참 좋았다. 생각들이 너무 많아 때로는 밤을 새기도 하고 집중력이 흐려지기도 했다. 성장하면서 생각이 많은 것이 안 좋은 단점으로 보이기 시작하면서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그만 좀 생각하자. 좋은 생각들이 아닌 부정적인 생각들이 자리 잡힐 때는 나를 괴롭혔다. 나는 늘 항상 혼자 있었다. 그때는 혼자 있는 게 외롭고 슬퍼서 그 감정을 일기로 풀기도 하고 엄마에게 이야기를 하거나 기도를 하며 괴로움을 풀었다. 엄마는 내가 많이 의지한 내 유일한 친구이자 나를 잘 알고 사랑해 준 보호자였다.
막연하게 장래희망에 작가 되고 싶다. 라고 머릿속에 그림을 상상한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구체적으로 노력한 적은 없었다. 글 쓰는 것을 좋아했지만 직업과 좋아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직업으로 발전시키자고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잊고 살았던 것이 많았다. 그러던 중 이제는 다 내려놓고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그 마음의 시작이 지금 펜을잡고 있는 현재의 모습이 될 줄 꿈에도 몰랐고 그저 신기할 뿐이다.
엄마를 떠나보낸 그 빈자리는 생각보다 타격이 컸다. 내 마음속에 있고 천국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을 거라 믿지만 엄마와 애착관계가 좋았던 나는 이 땅 이제 내 옆에 없다는 현실과 엄마에게 더 많이 잘하고 함께 하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던 아쉬움들이 컸기에 더욱 그리움만 쌓이는 것 같았다. 폭풍우가 한바탕 휘몰아쳐 간 그 자리는 폐허가 된 듯 내 마음과 엄마의 자리는 재정비가 필요했고 외롭고 공허했다. 엄마의 마지막을 보내는 과정을 마친 후 나에게 다시 돌아온 일상은 가혹하기만 했다. 아무 일 없는 듯 다시 출근한 병원에 일상은 곳곳에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 장소들이 남아 있어 지나가는 모든 곳들의 흔적이 내 가슴을 더 아프게 했다.
그렇게 이 회사는 나에게 좋지 않은 추억을 많이 준 곳으로 15년 삶의 희노애락이 담겨 있는곳이기도 하다. 나에게 아직 그 상처는 다 아물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의 아픔을 겪으며 만나게 된 인연들을 통해 나와 비슷한 아픔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암과 나는 밀접한 관계가 있는듯 하다. 처음 이 병원에 입사할 때 암에 대해 깊이 들여다본 적이 없었다. 어느 직장인과 마찬가지로 내가 땀 흘려 돈 버는 곳 그 이상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암병원에 다녔어도 암환자를 보며 안타까운 마음은 있었지만 그 아픔과 고통의 무게를 실제 크게 공감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 인생에서 어쩌면 이와 같은 일이 일어날 거라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의 이야기로만 들린 게 아닌가 싶다. 그런데 내 몸의 통증과 엄마가 암환우가 되면서 암뿐만 아니라 인간의 질병에 대해 다시 한번 들여다보게 되었던 계기가 된 것 같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의 위로와 관심을 받았으며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질병에 대한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큰지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글을 쓰게 되면서도 나보다 더 힘들게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체감하며 지내고 있으며 지금 나는 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을 살면서 감당해야 하는 몫이 있는 것 같다. 정신적 신체적인 질병이 있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또 각자의 아픔과 삶은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그 아픔을 서로 위로하고 함께한다면 추운 겨울을 잘 날 수 있지 않을까? 생전 늘 장애 있었던 나를 걱정하셨던 어머니에게 장애가 있어도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또 앞으로 이 왼손으로 가치 있는 일에 쓰임받는 도구로 살아갈 수 있다면 나의 여러가지 생각들이 의미있게 사용할 수 있다면 아픔에 당당히 마주하며 조심스레 발을 딛으며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다. 고립되어 외로웠던 광야 같은 직장생활의 어두운 날 불빛을 발견하고 여기까지 온 것처럼 그것이 나의 희망이 될 것이라고 믿으며 나아가고 싶다.